전체 민간자격증이 2만 몇천 개 정도 되는데 그 중 심리상담 키워드로 검색하면 2327건이 검색됩니다.


'상담심리'로 검색을 해봅니다. 정체불명의 자격관리기관에서 발급한 상담심리전문가, 상담심리사 자격이 넘쳐납니다.


'임상심리'로 검색하면 상담심리로 검색할 때보단 훨씬 덜하지만 여전히 유사 자격증이 많습니다.

 

한국임상심리상담학회라는 기관에서 발행하는 임상심리전문가 자격도 나오네요.


자격증 등록번호가 2015-004224 입니다. 임상심리학회에서 발행하는 임상심리전문가 자격과 이름이 완전히 같습니다. 


민간자격증 신설과 관련된 법 규정이 얼마나 허술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네요.


한국임상심리상담학회는 홈페이지도 있고 나름대로 뭔가 운영이 되고 있는 것 같긴 합니다.


학회 역사를 좀 훑어 보니 주축이 되는 사람들 학위는 대체로 미술치료인 것 같습니다.


한국임상심리상담학회의 서울 수련기관이라고 나와 있는 힐마인드심리상담센터 소장 학력도 명지대 사회교육대학원 미술치료 석사입니다.

 

정통성이나 누가 '진짜'냐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해 보입니다. 저들도 저들 나름대로 소명 의식을 가지고 상담이나 치료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일 수 있죠.



대중은 자격증보다 치료 잘 하는 사람을 원합니다. 자격증은 최소한의 요건입니다. 자격증이 있다고 해서 치료를 잘 하는 것은 아니죠.


다만 기존 자격증과 똑같은 이름의 민간자격증을 신설할 수 있게 하는 법 제도는 분명 문제가 있죠.


내실 없는 민간 자격증이 남발될 수 있는 최적의 토양으로 보입니다.


더욱이 하루 이틀 혹은 삼일 교육 받고 자격증 딴 사람들이 공신력을 지닌 자격증과 똑.같.은. 이름을 걸고 심리평가나 상담 및 치료를 엉터리로 했을 때 그 부정적인 파급효과가 공신력 있는 자격증뿐만 아니라 업계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입소문이 무섭죠. '내가 심리상담 받아봤는데 돈만 날렸어', '5회기 단위로 결제하라고 해서 선결제했는데 두어 번 상담 받아보니 너무 별로인거야. 근데 환불이 안 된다고 하더라고'라는 얘기를 누군가로부터 듣게 된다면 그 사람이 향후 심리상담을 받을 가능성은 매우 낮아집니다. 


경찰 열 명 중 아홉 명이 잘하더라도 한 명이 개판치면 경찰 전체가 욕 먹는 것과 다름 없죠.



하지만 이해관계가 첨예하고 정부는 나몰라라 하는 상태에서 현실적으로 이들을 규제할 수 없다면, 임상심리전문가나 상담심리전문가들이 일선에서 적극적으로 홍보하여 심리평가나 상담을 누구에게 받아야 하는지 대중에게 각인시킬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문가 개개인의 역량 강화 노력이 필수적이겠죠.


처음부터 상담이나 평가를 잘할 수는 없습니다. '내실 있는 자격증'을 지닌 우리조차 엉터리 상담가, 엉터리 심리평가자 라는 소리를 누군가로부터 안 들을 수 없죠.


극단적으로는 내가 상담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누군가를 자살로 몰고 갈 가능성도 있습니다. 자기는 마치 그런 경우가 절대 발생하지 않을 것처럼 샤이니 종현이 정신과 의사 때문에 죽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전문가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마는 축어록이라도 봤나요? 그 속사정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죠.


누구를 비난하기보다 내가 상담하는 내담자가 나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책임감 있게 상담에 임하는 것이 최선인 것 같습니다. 


'사이비 때문에 우리가 피해를 보고 있어'라고 욕할 시간에 자기 역량을 강화하고 내담자의 심리적 및 신체적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며 상담을 해나가는 게 이 시점에서는 보다 나은 선택인 것으로 보입니다. 


사이비 욕 하는 시간도 조금은 필요할 것 같긴 합니다마는..ㅎ 

임상심리학의_창시자_라이트너_위트머_(_Lightner_Witmer_··.pdf


임상심리학자이자 중앙대 원로교수인 이현수 선생님이 쓴 글입니다. 출처는 아래와 같습니다.


<한국심리학회지 : 임상> 제7권 제1호, 1988.5, 149-157 (9 pages)


임상심리학은 실험심리 연구에 뿌리를 두고 있었네요. 대학원 입시 준비할 때 잠깐 눈여겨 보았던 것이 다인지라 임상심리학의 역사를 새롭게 알게 됩니다.


실험해서 석사 논문 쓴 저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생계형 직장인 모드가 되면 연구는 내팽개치기 쉬운데,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논문을 써야 한다'는 마음의 부담 정도는 늘 지고 살아야 되지 않나 싶습니다. 논문을 쓸 수 있는 여건과는 거리가 멀다 하더라도요.

2004년 2월 임상심리학회 동계 학술대회에서 원로 교수 초청 특강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 장소에서 발표된 내용 같습니다. 

출처는 이 곳입니다.




머릿말


   우리나라에서는 1946년에 한국심리학회의 창립과 활동, 서울대와 중앙대의 심리학과(心理學科) 개설 및 후진 양성을 통해서 한국심리학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독일 계통의 실험심리학이 지배적인 풍토였는데, 8.15 광복과 더불어 미국 계통의 응용심리학이 도입되고 있었다.즉, 심리학계에 있어서는 미군정시절(1946-1948)에 재미교포 심리학자 염광섭 박사와 미국인 임상심리장교 Dr, Jones가 국내의 심리학자들에게 임상심리학(臨床心理學) 관련 분야들을 소개하기 시작하였다. 

   국내에서 임상심리학으로서의 전문직 등장은 1960년대 초엽부터 심리학자들이 병원 신경정신과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 그 시초였다. 그리고 이들 의료계 근무 심리학자들의 임상심리수련을 위해서 1964년 11월 [한국심리학회] 산하 [임상심리분과회]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1967년부터 심리학도들이 의과대학 임상심리학 교수 부임과 공사립병원 신경정신과 진출이 활성화 되기 시작하였다. 1972년부터 심리학과에 임상심리학 교수 부임이 시작되었다. 1973년부터 한국심리학회에서 임상 및 상담심리전문가 배출과, 대학원에 임상심리학 석,박사과정 개설과 석,박사 배출이 시작되었다. 1997년부터 학회 공인 전문가는 보건복지부의 국가자격 정신보건임상심리사 1급 및 2급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임상심리학회 회원들의 가속적 증가로 2004년 2월 현재 1천 8백여 명의 대형 학회로 성장해 왔다.


   1961년부터 심리학도들의 임상 현장 진출

   심리학도들이 병원에서 활동을 시작한 1960년대 초엽과 임상심리분과회가 설립된 1964년 당시 국내 대학교 심리학과에 '임상심리학 교수'는 존재하지 않았고, 또한 대학원에도 임상심리학 전공 석사과정 및 박사과정이 개설되지 않았다(정양은, 1972, 2000). 그럼에도 우리 사회의 요청에 부응하여 심리학도들이 이미 육군 현역 임상심리장교로서 복무하고 있었고, 또한 의과대학 및 공사립병원에 심리학도들이 진출하여 임상심리학적인 활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육군 임상심리장교 

   우리나라에서 심리학자의 임상심리 활동은 육군병원에서 미육군 신경정신과 군의관과 임상심리장교 제도의 도입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즉, 1960년대 초엽에 국방부 요청으로 심리학과 및 교육학과 출신으로 선발된 육군장교들이 미국 월터-리드(Walter-Reed) 육군병원 파견 6개월간 단기교육과정(인턴과정)을 이수한 이후에 국내 육군병원에서 임상심리장교로서 복무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1호는 한명택(韓命澤, 동아대, 파견, '61.8-'62.4)은 제1육군병원('62-'67),  

   2호는 원호택(元鎬澤, 서울사대, 파견, '62.8-'63.4)은 제3육군병원('63-'65), 

   3호는 원호식(元鎬植, 서울사대, 파견, '63.8-'64.4)은 제3육군병원('64-'66),  

   4호 김철수(金哲洙, 서울대 심리학과, 파견, '64.8-'65.4)는 수도육군병원이었다(김영환, 1989 ; 원호택, 염태호, 1986 ; 이현수, 1990 ; 임상심리학회, 1996).


   의과대학 및 공사립병원 심리학자 진출 

   1960년대부터 우리나라 의료계로부터 임상심리학자를 요청해 옴으로써, 심리학도들과 전직 임상심리장교들이 병원 신경정신과에 진출하는 것을 시작으로 한국 임상심리학에 있어서 개척기가 도래하였다. 이를 구체적으로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1962년 12월 안가희(安佳熙, 이화여대)의 국립정신병원(서울) '임상심리과원', 

   1963년  3월 이현수(李鉉洙, 서울대 심리학과)의 국립정신병원 '임상심리과장', 

                   김중술(金重述, 서울대 심리학과)의 가톨릭의대 '임상심리조교', 

                   신동균(申東均, 서울대 심리학과)의 우석의대 '임상심리연구원', 

   1965년 원호택(元鎬澤)과 박상규(朴相圭, 중앙대)의 경북의대 '외래교수', 

             양원숙(梁元淑, 이화여대)의 연세의대 '외래강사', 

   1966년 원호식(元鎬植)은 청량리뇌병원 '임상심리과장', 

   1967년 한명택(韓命澤)의 대구동산병원 '임상심리학자', 

             조신웅(趙信雄, 성균관대)의 국립정신병원 '임상심리과원', 

   1968년 염태호(廉泰鎬, 서울대 심리학과)의 청량리뇌병원 '임상심리과장', 

   1969년 김영환(金榮煥, 경북대)의 가톨릭의대 '임상심리수련생' 

   이 분들이 국내 의료분야에서 활동한 임상심리학자의 선구자들이다(임상심리학회, 1996).


   1964년 11월 임상심리분과회 창설

   상기와 같이 심리학자들이 속속 정신과 임상에서 임상심리학자로서의 현장활동을 시작하면서 이들의 자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자체 교육과 훈련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이같은 필요성에 부응해서 창설된 것이 한국심리학회 산하 "임상심리분과회(臨床心理分科會)"였다(원호택, 2000). 분과회 설립 이전에 몇명의 관심있는 교수들의 집담모임이 있어 왔다. 그렇지만 설립 당시 심리학과에 임상심리학 교수는 1명도 없었기 때문에 임상심리분과회는 심리학과를 중심으로 창설되지 못하고 서울대학교의 법정기관인 학생생활연구소가 중심이 되어 1964년 11월 21일에 창립총회를 열었다. 특히, 임상심리분과회의 창립 당시 연구소 소장 김기석(金基錫) 교수(서울대 사범대학)의 적극적인 주선에 힘입은 바가 크다(임상심리학회, 1996 ; 정양은, 1972, 2000). 


   1960년대 후반부터  의과대학(醫科大學) 임상심리학 교수 부임

   1967년 가톨릭의대에 김중술(金重述, 1967-1974) 전임강사, 

             연세의대에 양원숙 외래강사(1967-1976) 

   1971년 고려의대에 신동균 교수(申東均, 1971-2002), 

             경희의대에 원호택 교수(元鎬澤, 1971-1975) 

   1974년 순천향의대에 김중술 교수(1974-1976), 

   1975년 한양의대에 원호택 교수(1975-1982), 

             경희의대에 염태호 교수(廉泰鎬, 1975-2004) 

   1976년 연세의대 양원숙 교수(梁元淑, 1976-82) 

   1979년 순천향의대 노명래 교수(盧明來, 1979-199?) 

   1980년 부산의대 김재환 교수(金在煥, 1980-82) 등이 부임하였다. 

   그후 1996년도 13개 의과대학의 임상심리학 교수, 그리고 14개 대학병원에서 임상심리학자로서 활동하였다. 이는 후학들이 대학병원 및 기타 임상현장에서 전공교육과 실습교육의 터전이 마련되었음을 의미한다(임상심리학회, 1996).


   1972년 심리학과(心理學科) 임상심리학 교수 부임

   2000년 9월 기준으로 전국 심리학과의 재직 교수는 179명이다. 국내 심리학과 중 임상심리학 교수 부임은 1972년에 중앙대의 이현수 교수(李鉉洙, 1972-97)가 1호였다. 이를 시작으로 2000년도에는 20개 심리학과에 총 26명의 임상심리학 교수들이 재직하였다. 이 중 외국 박사 교수가 8명, 국내 박사 교수가 18명이었다. 이들 26명이 앞으로 한국 임상심리학을 주도적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이외에 상담심리학 교수는 13명, 건강심리학 교수는 2명, 재활심리학 교수는 1명이다. 그러나 각 심리학과에 임상심리학 교수 거의가 1명씩일 뿐이고, 일부는 2명 또는 3명의 학과도 있으나 이들은 전국 각처에 분산되어 있는 것은 고도의 전문적 수련을 요구하는 임상심리전문가 양성에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의 현재 제도로서는 어떤 학문이든 발전하려면 대학원이 충실해야 한다. 일제 시대에는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아도 강좌 주임 교수의 승인만 얻으면 유급 또는 무급의 조수로 교실에 남아 공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식 교육을 따온 우리 대학교에서는 대학원생이 아니면 학교에 남아 공부를 계속할 명분이 없고 또 그와 같은 무적자를 학교에서 책임지고 받아들일 수도 없다. 그러므로 어떤 학문이든 발전하려면 대학원이 충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심리학의 어떤 분야이던 간에 1명 내지 2명의 전공 교수로는 충실한 대학원 과정을 운영하는 것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최근에는 어떤 특정 심리학과는 특정 심리학 분야를 집중적으로 전담하는 분업 형태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예를 들면, 어떤 특정대학 심리학과는 임상심리학을 집중적으로 강화하여 그에 따라 교수진을 재정비하여 학생들에게 충실한 임상심리학 교육을 실시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구상은 행정적인 문제가 야기됨으로 일거에 실시하기에는 어렵지만, 각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들은 고려해 볼만 하다고 생각된다(정양은, 2000).


   1973년 임상심리전문가 및 1997년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임상심리분과회는 1964년 창설된 이래  임상심리전문가와 상담심리전문가 자격증 제도를 마련하여 1971년 한국심리학회의 이름으로 공포된 이래 1973년부터 제1회 자격시험과 심사를 거쳐서 전문가 자격증을 부여하기 시작하였다. 


   1973년도 한국심리학회 제1회 "임상심리전문가" 자격 취득자 7명 

   1호는 김성태(金聖泰, 고려대 교수), 

   2호는 이현수(李鉉洙, 중앙대 교수), 

   3호는 김중술(金重述, 가톨릭의대 교수), 

   4호는 신동균(申東均, 고려의대 교수),  

   5호는 원호택(元鎬澤, 경희의대 교수), 

   6호는 한명택(韓命澤, 대구동산병원), 

   7호는 염태호(廉泰鎬, 청량리뇌병원)였다. 

   이들을 한국 임상심리학의 1세대로 본다(원호택, 2000). 그후 전문가는 1999년에 176명(김정규, 1999), 2002년에 243명(오상우, 2002 ; 임상심리학. 안창일 편저, 2002. 42-46쪽), 2003년도에 270명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임상심리학회 총회원수가 1806명(남 303명, 여 1503명)으로 폭증하였는데, 그 중 1천 5백명 정도가 수련생과 대학원생이었다(한국임상심리학회, 2004년 1월 현재). 

   2004년 9월 현재 한국심리학회 임상심리전문가는 316명과 임상심리사는 329명으로 증가, 

   보건복지부 정신보건임상심리사 1급은 326명 및 2급은 518명으로 증가되었다. 

   그리고 임상심리학회의 총회원수는 1914명으로 증가되었다고 한다.


    1973년도 제1회 "상담심리전문가" 자격증 취득자 6명 

    1호는 김기석, 2호는 이상로, 3호는 최정훈, 4호는 진위교, 5호는 홍성화, 6호는 한덕웅("임상심리학회30년사". 1996. 228쪽, <표 20> 임상 및 상담심리전문가 명단). 그 이후의 상담심리전문가 배출은 '상담 및 심리치료학회'에서 전담하고 있다.


   정신보건임상심리사 

   1995년 12월에 국회를 통과한 정신보건법이 1997년부터 발효됨에 따라서 학회 공인 임상심리전문가와 임상심리사의 신분이 건국 이래 처음으로 정신보건임상심리사 1급 및 2급 자격으로 변화되기에 이르렀다.  


   1980년대 정신의학의 변화와  임상심리학의 변화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정신의학 분야에서는 정신 역동적인 정신의학이 쇠퇴하면서 생물 정신의학 쪽으로 급격히 선회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여파로 정신과 임상에서 임상심리학자들의 자리가 위축되게 되었다. 새롭게 임상심리학자를 필요로 정신과 병원은 줄어 들었고, 그 업무기능도 많이 제한받게 되었다. 즉, 정신과 병원에서 심리치료의 선호가 사라졌고 임상심리학자에게 더 이상 심리치료를 허용하지 않는 병원이 많아졌다(원호택, 2000). 한국심리학회에서 자격증을 취득한 임상심리전문가와 보건복지부에서 자격증을 부여받은 정신보건임상심리사가 근무하는 직장들은 대략 5개 분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째는 각 대학교의 심리학과 및 관련 학과의 교수집단이다. 둘째는 의과대학 소속의 임상심리학 교수집단이다. 셋째는 의과대학 부속 병원 근무자집단이다. 넷째는 일반 정신병원이나 개인정신과 의원 근무집단이다. 다섯째는 각종 연구기관이나 봉사단 종사집단이다(정양은, 2000). 그런데, 한국심리학계는 1980년을 전후로 기존 심리학과와 새로 증설된 심리학과에서  석,박사 과정 개설이 증가했는데, 특히 임상심리학 전공 학생들의 증가가 뚜렷하며, 임상심리학의 교육과정 역시 정신 역동적 입장보다는 인지 행동적 입장의 연구기법과 치료기법에 관한 교육을 강화하는 쪽으로 선회하였다. 또한 심리평가 기법에서도  전통적인 평가 이외에도 개별 증상에 대한 인지 행동적 평가는 물론  뇌와 행동과의 관계에  대한 신경심리학적 평가를 하는 심리검사 도구의 개발과 연구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으로 바뀌어져 왔다. 그 결과로 1985-1996년 사이에 임상심리학 전공 박사학위 취득자 30여 명의 학위논문 가운데 3분의 2 이상이 심리장애의 인지 행동적 측면에 관한 연구였고, 건강심리학이나 행동의학 등의 분야로 영역을 확대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1990년대 임상심리전문가와 정신보건임상심리사 

   1990년대 초엽부터는 직업 창출의 일환으로 심리상담 서비스를 위한 개업 임상심리학자들이 생겨나는 동안에 1995년 12월 국회를 통과한 정신보건법의 시행령이 1997년부터 발효됨에 따라 임상심리학자들이 보건복지부에서 자격증을 발급하는 정신보건임상심리사 1급 및 2급 신분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자격 취득을 위한 국가공인 수련기관은 2002년에 전국적으로 56개이며, 그간에 1급 자격 취득자는 247명과 2급 자격 취득자는 384명에 이르렀다(오상우, 2002). 이같은 임상심리학도의 신분변화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학회로서는 국가정책적인 정신보건임상심리사 1급과 2급 제도를 수용하는 한편 종래와 같은 한국심리학회 공인 임상심리전문가 자격증 제도를 계속해서 병행하여 유지하고 있다(임상심리학회, 1996). 그 이유는 한국심리학회 임상심리전문가 자격의 기본 정신은 전문가들이 의사와 같은 수준으로 대우받도록 허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 방침은 석사학위가 아닌 심리학 전공 학사로서 수련기관에서 1년간안 실습수련을 거친 수료생들을 대상으로 임상심리사 2급 자격을 부여하는 양산정책을 통해서 전국 정신보건센터에 투입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정부정책은 자칫 심리학과를 자격시험 준비기관으로 타락시킬 우려가 있다. 그런 우려의 구체적 증거가 법과대학이다. 현재 전국의 법과대학들은 사법시험 준비기관이 되어 법학이란 학문이 쇠퇴하다싶이 한 반면에 산골짝에 있던 고시촌들이 이제는 대도시의 고시원들로 바뀌게 되었다. 최근의 임상심리학계에 있어서는 또 다른 중요한 변화의 조짐은 한국심리학회가 주관하는 임상심리전문가 자격규정을 국가기관에서 공인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임상심리사 자격증은 보건복지부에서 주관하는 정신보건 업무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임상심리학자의 광범위한 역할과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되는 것으로서 임상심리사의 독립적인 활동을 더욱 촉진하게 될 것이다(원호택, 2000).


   임상심리학자의 개업 활동

   정신의학 분야에서는 임상심리학자에 의한 심리치료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2000년대로 들어선 현재 정신과 임상에서 임상심리학자의 위상은 전반적으로 1970년대보다도 위축된 상태임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심리치료는 더욱 부정적으로 되고 있다. 근래에는 정신과 환자에 대한 재활심리치료와 인지행동치료를 임상심리학자를 비롯하여 정신보건요원에 의해 시술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그런데 국내 정신과에서는 이러한 추세를 외면하고 있다. 이러한 여건에서 1980년대부터 임상심리학자들이 독자적인 전문성을 살리는 길을 스스로 강구하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즉, 심리치료 및 상담연구소를 시중에 개설하기 시작한 것이다. 1990년대부터 개업활동이 눈에 띄게 늘어나는 현상이 주로 서울에서 서울인지치료상담센터 등을 비롯하여 10여 군데, 그리고 대구와 부산 등에서 개업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서서히 늘어나는 추세다(임상심리학회, 1996). 1996년 이후 정신보건임상심리사의 자격을 갖춘 전문가들이 정신재활치료센터를 개설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심리클리닉은 비록 작은 출발이지만 임상심리학의 발전이란 견지에서 보면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기관에서는 임상심리학자의 본연의 기능과 역할 수행 뿐 아니라 임상심리학자에 의한 임상심리사의 전문훈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원호택, 2000).  앞으로 임상심리학도들의 개업활동이 더욱 더 많아지는 양적인 발전은 물론이고, 그 이상으로 다양한 형태의 모든 내담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질적인 발전이 있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임상심리학의 전망


   임상심리학 석,박사 배출 

   1996년도 심리학과 대학원에 임상심리 전공 과정이 개설된 곳은 17개 학과였고, 배출된 석사는 300여 명을 넘어섰으며, 임상심리학 박사는 80여 명이었다. 그리고 임상심리학회 회원 자격을 갖추게 되는 각 대학별 임상심리 석사 및 박사를 배출한 1996년까지의 실적에서 고려대 심리학과가 압도적으로 다수인데, 임상심리학 석사는 91명과  임상심리학 박사는 18명이었다(임상심리학회, 1996). 특히 고려대에서는 안창일 교수의 지도하에 2002년 현재 배출된 임상심리학 박사가 24명, 임상심리학 석사는 70여명일 만큼 고려대는 임상심리학 인력 양성에 앞장서고 있다(안창일, 2002).   


   심리학과 임상심리학 교수실태 

   고려대 심리학과는 임상심리학 교수를 2명 두었지만 어차피 대학원 과정에서는 임상심리학을 보강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심리학과 대학원이 특성화되는 조짐이 된다면 심리학의 발전을 위하여 바람직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임상심리학 석사와 박사들은 현재 정신과 병원, 정신보건소 또는 대학의 학생상담연구소 등에서 전문 직업인으로 근무하고 있고, 그 일부는 사설 연구소를 개설하여 정신병이나 기질성 정신장애를 제외한 일반인 내담자들을 대상으로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심리상담 관련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이처럼, 임상심리전문가들이 정신건강을 해친 사람들을 도와주는 제도가 정착되면 그 만큼 우리 사회의 부정적 측면이 치유되어 건전한 사회를 이룩하는데 심리학이 공헌할 수 있을 것이다(정양은, 2000).


   임상심리학 석사, 박사, 전문가의 현저한 증가 

   1986년도 조사에서 임상심리학회 정회원이 50명 남짓, 임상심리전문가가 20명 남짓, 임상심리학 박사가 8명이었는데, 10년 후인 1996년도 조사에 의해서 임상심리학회 정회원이 400명을 넘어선 것은 회원수가 8 배로 늘어난 것이고, 임상심리전문가가 100명을 넘어선 것은 6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고, 임상심리학 박사는 10 배나 증가한 것이다. 이 숫자만 보아도 기하급수적 증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1980년대 미국심리학 현황을 이야기하면서 헬센(Hersen) 등은 미국의 경우에 임상심리학이 지난 30년 동안에 폭발적인 발전을 했다고 표현하였다. 우리의 현실을 그 정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이제 폭발적인 발전의 기틀이 마련된 상태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원호택, 2000). 이러한 예측처럼, 2004년 현재 임상심리전문가 자격 취득자는 300 명에 가까워졌다. 


   임상심리학회의 학술활동과 연구업적 

   임상심리학회 학술활동은 1960년대 "임상심리분과회" 시절 및 1970년대 "임상 및 상담심리분과회" 시절과 전혀 다르게, 1980년대 후반부터 "임상심리학회"는 임상심리학의 이론을 학습하던 단계를 벗어나서 임상 현장에서 요구되는 또는 임상장면에서 경험한 결과를 발표하는 워크숍, 심포지움, 학술 발표회 형식의 학술활동, 임상심리 수련생들을 위한 교육활동 등에 치중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였다. 뿐만 아니라 [한국심리학회지 : 임상]의 꾸준한 발간을 통해서 나타난 임상심리학회 회원들의 다양한 학술적 연구업적들은 '임상심리학의 꿈은 이루어진다'는 징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회원들은 로마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듯이 현실적 어려움들을 장기적 안목으로 극복할 저력을 함양하기 위해서 임상심리학회 활동에 적극 동참하는 것이 살아 남는 길일 것이다. 


   세대교체, 어두운 측면과 밝아보이는 측면 

   서기 2000년을 전후로 임상심리학을 독자적으로 공부해 온 이른바 제1세대들이 차츰 교육 일선에서 물러나기 시작하였다(정년퇴직 : 이현수/중앙대, 원호택/서울대, 신동균/고려의대/, 김중술/서울의대, 염태호/경희의대). 그러나 앞으로 후학들은 임상심리학자에 의해서 배우고 수련받는 임상심리 전공자들이 활동영역을 넓혀 가면서 발전을 가속화 시킬 것이다(원호택, 2000). 예컨대, 서울대는 원호택 교수의 1999년 정년퇴임 이후 권석만, 최진영 및 이훈진 3명이 합류한 것은 앞으로 우리 분야의 발전을 촉진할 것으로 기대가 된다. 반면에 불행한 일은 그간 있어 왔던 의과대학 임상심리학 교수직이 없어져간다는 사실이다(연세의대, 부산의대, 경북의대, 영남의대, 순천향의대, 이화여대). 그런가하면, 이를 보상하듯이, 2003년 5월 서울인지치료센터가 주식회사 형태(마음사랑)로 발전되어서 심리학도들의 다양한 사회봉사활동, 연구개발, 출판사업 등을 추진한다는 사실, 그밖에도 많은 임상심리학도들이 도처에서 착실한 개업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앞으로 우리들의 나아갈 길을 안내해 주는 반가운 조짐일 것이다.


   국가 기술 자격 임상심리사 1급 및 2급 신설 

   2000년대에 들어서서 임상심리학은 정신보건 분야와 관련된 활동의 계속은 물론이고, 또한 국가정책적인 요구에 부응하여 개인의 삶의 질을 향상하고 각종 사회문제의 방지 및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며, 상담을 통한 치료, 재활을 위한 전문인력의 양성이 필요하여 2002년 7월부터는 전문사무 분야로서 임상심리사 1급과 2급이 국가 기술 자격으로 신설된다. 이로써, 우리나라에서 임상심리학자들의 활동 영역이 폭넓게 확대될 것이라고 본다(원호택, 2000 : 오상우, 2002).


참고문헌

김영환(1989) : 임상심리학 원론. 서울 : 하나의학사.

대한민국학술원(2000) : 한국의 학술연구. 인문 사회과학편 제1집. 

               심리학-임상심리학회(정양은, 2000, 80-90쪽).

대한민국학술원(2000) : 한국의 학술연구. 인문 사회과학편 제1집. 

               심리학-한국 임상심리학 연구(원호택, 2000, 183-193쪽).

안창일 편저(2002) : 임상심리학. 제2장 임상심리학의 역사(오상우, 2000, 21-49쪽). 

               서울 : 시그마프레스.

염태호(1984) : 한국임상심리학의 발자취. 1984년도 제3회 심리학연수회 교재, 1-42.

원호택, 염태호(1986) : 한국임상심리학의 연혁. 고려대학교 행동과학연구. 제8권. 109-117.

이현수(1990) : 임상심리학. 서울 : 박영사.

임상심리학회(1996) : 임상심리학회 30년사. 서울 : 하나의학사. 

정양은(1972) : 한국의 학보. 인맥으로 살펴본 한국의 학계-심리학계. 대한일보.

한국심리학회 편저(1996) : 한국심리학회 50년사. 서울 : 교육과학사.

치료자는 자신이 사람에게 반응하는 전형적인 방식과 자신의 심리적 방어기제를 파악하고 있을 정도로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대상관계의 이론과 실제, 340쪽.



상담자가 자신을 잘 알기 위해서는 개인상담과 집단상담이 병행되는 것이 베스트인 것 같습니다.


특히 집단상담은 대인관계에서의 자신의 전형적인 반응 방식과 방어기제를 의식화하기에 매우 좋은 환경이죠.



아래 링크한 누다심의 집단상담 동영상은 '상담자가 왜 되려 하는가' 라는 화두를 던집니다.


'자살하겠다는 내담자가 왔을 때 끝까지 책임을 질 수 있겠느냐? 없다면 상담 하지 말아라'라고 집단 구성원들이 상담 대학원 입학을 앞둔 한 집단원에게 관심어린 비난(?)을 날립니다. 


순화해서 표현했는데 영상 직접 보면 아시겠지만, 개새끼 소새끼 난무합니다.


사실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집단 상담은 본 적이 없어서 꽤나 충격적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욕설 이면에 담긴 정서적 메시지는 다분히 애정어립니다. 비난 받는 입장에서도 그게 단순히 자기를 깔아뭉개려고 하는 말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3자 입장에서는 그게 느껴집니다만 스스로의 정서를 인식하는 것 자체가 다소 어려워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 영상을 보면서 저 집단에 참여하여 심리적으로 수술대에 올려지는 것을 감당할 재간이 내게 있을까 묻게 됩니다.


언젠가는 집단에 참여하여 그런 경험을 해야 할 테지요.


상담자가 되려는 사람은 개인상담뿐만 아니라 집단상담을 통해 반드시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동영상 안에서 누군가가 말하는 것처럼, 집단 안에서 관계 맺지 못 하고 뛰쳐 나온다면 그런 사람이 무슨 상담을 하겠습니다. 


하지만 두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취약한 자기 모습을 직면하는 것은 세상 무엇보다 공포스러운 일이고 so 다른 사람의 도움 + 스스로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무심코 클릭했다가 저도 마치 집단의 한 구성원이 된 것마냥 같이 분노하고 같이 울었습니다.


상담자가 되고자 하는 분은 한 번 꼭 보시기 바랍니다. 누다심이 상담에서 강조하는 것이 무엇인지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상담자가 내담자를 어떻게 책임지는지 누다심이 언어적 및 비언어적 메시지를 통해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집단 안에서 욕조차 치유적인 메시지로 승화시킬 수 있는 것은 누다심의 역량 때문인 것 같고, 초심자는 섣불리 따라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배울 것은 배우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하겠습니다.



클릭



다 보기 어려우실 테니 1시간 8분쯤부터 약 5분간이라도 보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집단 리더 혹은 상담자의 태도와 관련하여 제가 제일 핵심적이라 여기는 부분입니다.

[대상관계 이론과 실제]의 번역자이자 대상관계 이론 관련하여 국내 권위자라 할 수 있는 김진숙 교수님의 강의가 3월17일 10시 서초구에 위치한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에서 잡혀 있습니다.


수강료 45000원이 아깝지 않을 좋은 기회로 여겨지네요. 


자세한 정보는 아래 링크를 참조하세요.


클릭



전 직장에서 공개사례발표를 한 번 했는데, 학회원 7인 이상이라는 기준이 충족이 안 돼 공개사례발표에 포함시킬 수 없네요. 당시에는 상담심리사 자격이 필요할지에 대해 갈팡질팡하던 때라 세세한 요건을 보지 못 했습니다. 큰 돈을 세이브할 수 있었는데 안타깝습니다. ㅜ


상담심리전문가 자격 심사 시 제출해야 하는 서류를 잘 챙겨서 불상사가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꼼꼼함을 발휘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아래는 공개사례발표와 관련된 어떤 상담사의 질문에 대한 학회 답변입니다. 다른 분들도 도움이 되실까 싶어 퍼옵니다. 온라인 수련수첩 쓰는 발표자에 해당될 경우 참가자들 학회 아이디를 잘 받고, 내가 참가자이고 발표자가 수기수첩 사용자라면 참가자 확인서 사본을 잘 받아놓으면 되겠네요.


(1) 분회 이외의 기타 모임에서 공개사례발표회에 참가한 것이고 발표자가 온라인 수련수첩 사용자일 경우 발표자가 기록입력서 참관자의 아이디를 입력하여 수퍼바이저 확인을 받으면 자동적으로 - 공개사례발표기록에 확인 가능 함.


(2) 분회 이외의 기타 모임에서 공개사례발표회에 참가한 것이고 발표자가 수기수련수첩을 사용한 경우, 후의 자격검정 응시 시 참가자 확인서 사본 제출


(3) 분회에서 참석하였을 시 상담사례연구활동 - 분회참가기록에 직접 입력 후 확인요청 하면 분회간사님이 이를 확인 후 승인 


학회 심포지엄 6회 포함해서 상담심리사 1급이 되기 위해 분회 및 공개사례발표를 총 30번 참가해야 하는군요. 없는 시간 쪼개 열심히 다녀야 할 것 같아요.


#


임상심리전문가이자 공처가이자 한 아이의 아빠입니다.



십대 때부터 Rock을 비롯한 영미권 팝을 꾸준히 즐겨 들어온 편입니다. 


스무 살 이후로 책을 즐겨 읽어 왔고, 서른 살 이후로는 산에서 오래 걷는 것을 즐기게 됐습니다.


불혹이 몇 년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 이후에는 어떤 새로운 취미가 생길지 궁금하네요. 



현재 정신과에서 심리평가 업무 위주로 상근직 근무 중이며, 경기도 모 청소년 상담복지센터에서 상담자로 근무하고 있기도 합니다. 


상담심리전문가가 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언젠가 심리학 서적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서점 겸 상담소를 운영해야겠다며 즐거운 공상에 빠지기도 합니다.



어디서 본 말인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좋은 인생은 좋은 습관들이 모여 이뤄진다는 말에 동감합니다.


마음이나 몸에 이로우면서 종종 재미있기도 한 습관이 좋은 습관일 테죠.



#


이 블로그는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하지만 블로그에 신경을 지속적으로 쏟지 못하다 보니 방치되었던 때도 있습니다. 


개인정보가 너무 노출되었다고 판단해 글들을 모두 비공개로 돌린 적도 있습니다. 보여지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글이 여전히 비공개입니다.


자체적인 수위 조절이 있을 테지만, 개인정보 노출이 우려되는 경우 어느 순간 다시 문이 닫힐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담심리전문가가 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게 되는 것들을 기록으로 남겨두고자 앞으로는 블로그에 좀 더 신경을 쓸 예정입니다.


아울러 다른 블로거들처럼 양질의 컨텐츠를 생산해 내기에는 역량이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노력은 해보고자 합니다.



끝으로, 소통을 목적으로 이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개인적인 기록의 성격이 큽니다.


하지만 입시나 상담 관련 질문에 답을 달지 않겠다던 원칙을 더이상 유지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혹시나 궁금한 것들이 있는 경우 질문 주시면 답변을 드리기도 할 생각입니다. 


다만 제 개인적인 기준에 의해 답을 달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미리 양해 바랍니다.


부끄럽지만 자기소개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 )



보통 지적장애 1급 판정이 나간 경우에 원자료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죠. 국민연금공단에서 원자료 제출을 요구하더라도 법적으로 원자료를 제출할 의무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출하지 않으면 환자분이 나라로부터 무상으로 서비스 받던 것을 못 받는 피해를 볼 수 있으니 가급적 주는 경우가 많죠. 처음에는 잘 알지도 못 하는 공무원들이 전문가 판정에 이의를 다는 것 같아 화가 났습니다. 하지만 공무원들도 속사정이 있겠죠. 그들도 감사를 받기 때문에 트집 잡히기 싫으니 어쩔 수 없이 준비를 해둬야 하는 경우일 수 있습니다. 원자료가 필요한지 여부는 대학병원 등에서 일하는 정신과 전문의가 국민연금공단에 자문해 준다고 하네요. 즉 공무원들 자체 판단은 아니라는 것이죠. 좋게 보면, 나랏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제대로 가고 있는지 그들도 나름 애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작년에 신보 나왔을 때 기대가 너무 컸는지 좀 별로라고 생각했어요. 반 년 정도 지나 다시 들어보니 이전 작품들만큼이나 좋네요. Alison 같은 주옥 같은 멜로디를 지닌 곡이 다시 나올지 모르겠으나 조금은 소박해진 지금 모습도 나쁘지 않습니다. 이번 달에 RIDE가 내한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같은 시대를 풍미했던 슬로우다이브도 한국에 한 번 와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제 블로그 아이디도 이 밴드 이름을 차용한 것이지요. 요즘 아이들 말(?)로 하면 최애 밴드입니다. 숫자 14는 일본에서 슬로우다이브를 봤던 해가 2014년이기 때문이에요. 예나 지금이나 이 밴드 음악을 듣고 있으면 마음의 안정이 찾아옵니다. 삶을 조금은 더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무엇입니다.



정보 출처는 상담심리학회 구인 게시판입니다.

상담심리전문가 자격을 요하는 곳은 제외하였습니다.

아래 학교는 모두 1년 계약직이고, 추가로 1년 정도 더 연장 가능한 듯합니다.

연봉이 거지라 다들 시원시원하게 공개하는군요(?). '우리는 이것밖에 못 줘요. 그래도 오실래요?' 느낌입니다. 

물론 그럼에도 자리가 없어서 문제죠. 

학교에 따라 상담보다 행정적인 처리나 윗분들이 요구하는 실적 맞추기에 들어가는 에너지가 클 수 있겠는데 이건 어느 조직이나 비슷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셋팅에서 '준비된 내담자'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 같습니다. 

상담자로서 첫 발을 내딛은 사람들에게 심적인 부담을 덜 주는 최적의 환경이죠.


고려대 

경인교대 

서울시립대 

인천대 

건국대 

숭실대 


월급 정보가 공개된 위 여섯 개 대학의 평균은 230만 원입니다. 세후냐고요? 당연히 세전입니다. 실수령액은 204만 원에서 211만 원 사이 어딘가가 되겠네요. (한숨...)


서밤님 리서치에서 심리학과 대학원 졸업자 평균 월급이 219만 원이었죠. 석사 졸업한 이십대 후반 여성이 받는 임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열악하죠? 네 열악합니다. 슬프게도. 상담심리 전공으로 대학원 진학하기를 희망하시는 분들은 꼭 참고 하길 바랍니다. 사기를 꺾자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할 수 있어야 대학원 들어가도 버팁니다.

출처: https://blog.naver.com/leeojsh/221152034499 


참고로 한국방송통신대학교는 박사학위 이상 + 상담심리전문가일 때 340만 준다고 나와 있네요. 박사에다 상담심리전문가까지 있는데 340에 이력서를 낼까 싶지만.. 여기 돌아가는 사정을 잘 모르니 속단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서울대는 300만 원 이상입니다(임상심리전문가 지원 가능). 

- 필수 요건으로 대학생 및 성인 상담 경력 3년 이상인자, 상담 슈퍼비전 3년 이상

- 상담 슈퍼비전 3년 이상이라는 요건은 실상 상담심리전문가로 자격 요건을 제한하는 것일 수 있겠네요.


그나마 괜찮은 자리라는 대학교 상담센터 전임상담원 자리도 이 정도니 다른 곳이 어떨지 감을 잡을 수 있겠죠.


상담심리사 2급 트랙을 밟으려고 하는데 그냥 처음부터 상담심리전문가(상담심리사 1급) 트랙을 밟을지 고민하게 됩니다. 상담심리학회 피라미드[각주:1] 상층부에 있는 사람들이 임상심리전문가에 대해서는 더 엄격하게 기준을 적용한다고 하고, 그래서 보통 2급 취득 후 1급으로 간다고 하는데.. 발달심리 전공한 지인은 2급 없이 1급을 바로 준비하고 있고, 온라인에서 알게 된 어떤 분도 임상심리전문가 자격 취득 후 바로 상담심리전문가 자격 취득했네요. 1급 트랙으로 갈지 2급으로 갈지에 대한 고민은 한동안 계속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상담심리전문가 면접에서 모든 면접관이 임상심리전문가에게 까다로운 것은 아닐 가능성이 높죠. 설령 그렇다 한들 그렇게 제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에 따라 코스를 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입니다. 근본적으로는 2급을 취득해서 대학교 상담센터에서 내공을 좀 쌓으며 1급을 딸 것인지 아니면 최소한 상담센터보다는 수입이 많고 안정적인 병원에서 일하면서 1급 취득을 바로 할 것인지의 문제라 할 수 있겠네요.  


임상심리전문가 자격이 있다 하더라도 상담 현장에서 일하게 되면 페이가 낮아질 가능성이 커보이고, 가족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그런 위험은 감수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마도 바로 1급을 준비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지금 논문 퍼블리쉬할 것도 하나 있고 하니 겸사겸사 1급 자격 취득용 논문으로 제출하면 타이밍도 맞을 것 같구요. 논문 다시 쓰는 것도 상당한 부담이니까요. 다만 어느 세월에 1급을 취득할지.. 최소 5년 정도를 생각하고 있어요. 하기 나름이라고 더 짧아질 수도 있겠죠. 마흔 되기 전에만 취득하면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1. 얼마나 수련생들이 노동 및 돈 착취에 시달렸으면 다들 대놓고 여기는 '피라미드'라고 하는 분위기입니다. 말이야 바른 말이죠. 상담심리전문가가 됐을 때 수퍼비전 페이를 어떻게 받아야 덜 착취적일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됩니다. 네 아직 뭣도 아닌데 김치국이죠.상담심리전문가라 해서 아무나 수퍼바이저가 되는 것은 아닐 테니까요. [본문으로]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