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홉의 사랑에 관하여 라는 단편선을 읽었다.
다른 사람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려는 시도는 대개 실패로 끝난다.
이 작품에 수록된 상자 속의 사나이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대부분은 저마다의 신념 안에서 살아간다.
그 신념은 그 사람의 인생 내내 형성돼 온 것이고 그 사람 인생에 안정성을 부여하는 보호체계 같은 것이라 다른 사람의 영향으로 변화되기가 어렵다.(물론 정서적인 교감이 선행된다면 모르겠지만.)
비근한 예로 누구는 치약을 밑에서부터 짜서 쓰는데 누구는 그렇지 않다. 밑에서부터 짜서 쓰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밑에서부터 짜서 쓰라고 부탁하면 말을 들을까? 99.9%는 안 듣게 돼 있다. so 이 둘이 같이 살면 피곤해지는 거다.
밀란쿤데라 소설에 보면 이런 예가 한 가지 더 나온다. 결혼한 커플인데, 남자는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해야 직성이 풀리는데 아내는 구두를 벗어서 내팽개치다시피 한다. 결국 이 사소한 것이 불씨가 돼 이혼하는 대목이 있다.
왜 이혼하나? 켜켜이 쌓인 앙금들이 있었겠지만 이 사소한 사건만 놓고 보자면 남자가 여자에게 기대했기 때문이다. 자기처럼 신발을 가지런히 놔주기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은 많은 부분 자신의 신념 체계를 다른 사람이 받아들이기를 원하는 데서 발생한다고 본다.
그런데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신념 체계는 다른 사람의 뇌에선 유효하지가 않은 거다. 우리 뇌가 얼마나 변화를 싫어하는데!
극단적인 상대주의를 말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일상생활에서든 상담에서든 이런 사실에 더 의식적으로 포커스를 맞출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체홉 소설 읽다가 문득..
뭐가 옳고 그르냐 하는 논쟁은 언제나 백해무익하다.
하지만 난 여자친구가 있을 때 늘 옳고 그름에 집착했고 옳다고 여기는 것을 강요했다. 그래서 여자친구가 없나 보다. (자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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