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부터 날마다 자기 전에 그 날 있었던 일 중 감사한 일 세 가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감사일기의 유용성과 과학적 근거는 이미 여러 사람이 얘기한 것이기 때문에 따로 언급할 필요를 못 느끼지만, 저는 팀 페리스가 타이탄의 도구들에서 언급했던 내용에 영감을 받았습니다. 구글 스프레드 시트를 통해 자동화하는 구체적인 방식은 피터킴님의 브런치에서 배웠고요.
처음에는 피터킴님 방식처럼 오전에 감사한 일 세 가지 오후에 감사한 일 세 가지를 적었으나 너무 번거롭다고 느껴져서 1월부터는 오후에 감사한 일만 기록 중입니다.
한 달에 한 번 모아진 기록을 훑어 보는데, 여유없이 팍팍하게 돌아간 것 같은 일상에서도 생각보다 감사할 일이 많았음에 약간 놀라게 됩니다.
1월에 감사한 일을 세 범주로 분류해 보면 개인 성장에 관한 감사가 45% 관계와 연관된 감사가 34% 먹는 즐거움에 연관된 감사가 21%입니다.
앞의 두 가지는 뭐 그렇다 하더라도, 평소 먹는 것을 그리 중요하지 않게 여겼던 저인지라 '맛있는 것'을 먹는 게 제 인생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구나 깨닫습니다. 생각과 경험의 괴리가 있는 지점이네요..;
와이프가 좋아하고 중시하는 것 가운데 하나도 '여행 가서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인지라, 앞으로 먹는 것에 더욱 신경 쓰고, 특히 여행할 일이 있을 경우 그 지방의 맛집을 탐색하는 데 주력해야겠단 생각이 드네요.
사실 감사 일기에서 감사한 일을 향유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위 구글 설문지 가장 마지막 항목의 답을 한눈에 보는 것입니다. "오늘을 어떻게 더 좋은 날로 만들었나?"
11월부터의 기록을 돌아보니 더 좋은 하루를 만들기 위한 저의 방법은 대략 네 가지 범주로 묶이네요.
1. 더 좋은 하루를 만들기 위해 일정을 잘 지키고, 이를 위해 하기 싫은 일부터 먼저 처리합니다. 고통 없이 얻는 것이 없다는 말에는 왠지 모를 거부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지만 고통을 피하려 하면 할수록 더 큰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는 말은 과학적 사실입니다. 더 큰 고통에 빠지지 않으려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을 직면하여 그것부터 처리해야 합니다. 작년에 한 달 반 동안 치과 치료하면서 이것을 새삼 느꼈고요. 업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일 부담되는 것부터 우선순위로 올리고 데드라인을 정해서 날마다 해야 할 분량을 정하고 어떤 식으로든 해야 할 분량을 해냅니다.
2. 더 좋은 하루를 만들기 위해 아내에게 고마움을 표시합니다. 제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아내입니다. 아내와의 관계가 틀어지면 나머지가 잘 굴러간다 한들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이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소중히 여기는 만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집안일과 육아 모두 알아서 척척하는 그런 남편과는 거리가 멀지만 문제의식을 늘 지니고 있고 가끔 변화를 시도하며(ex. 주말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애들 밥 차리기) 무엇보다 아내에게 늘 고맙다고 표현합니다. 사소한 행동에도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 부부관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지름길이라 여깁니다. 말로만 감사하는 게 아니 다리 마사지, 두피 마사지도 자주 해주는 편입니다. 애정 표현도 많이 하는 편이고요. (부끄)
3. 더 좋은 하루를 만들기 위한 세 번째 노력은 아이들과의 관계와 관련 있습니다. 아이와 잘 노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노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제 경우 욱하지 않는 것입니다. 열 번 잘 놀아줘도 한 번 욱하면 말짱 꽝입니다. 다행히 아이는 늘 먼저 손 내밀어 줍니다. 그러면 다시 놀 수 있죠. 하지만 아빠가 욱해서 마음에 남긴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잘 지워지지 않을 수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12월부터 욱하지 않으려고 무진장 노력하고 있습니다. 첫째와 둘째 모두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아이들이 책을 읽어달라고 하면 열일 제쳐두고 읽어주는 편이고요. 물론 자야 할 시간에 계속 책 읽어달라고 하면 안 읽어주기도 합니다.;
4. 마지막으로 더 좋은 하루를 만들기 위해 '조금 덜 해도 괜찮다'는 마인드를 잃지 않으려 애쓰는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이미 여러분도 눈치 채셨겠지만 조금 강박적으로 생산성에 몰두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비교적 잘 기능해 온 저의 마음갑옷이지만 이 갑옷이 양육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닫고 요즘에는 갑옷의 나사를 몇 개 빼려고 노력 중입니다. 올해 별다른 목표를 세우지 않은 것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입니다. 현재 스터디가 네 개 정도 진행 중인데 4월 중순까지 두 개로 줄일 생각이고요.
여러분도 구글 스프레드 시트를 활용한 감사 일기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보세요. 삶이 풍요로워진다라고까지 말하기는 좀 낯간지럽지만 삶의 디테일을 들여다 보면서 자기도 모르는 자기의 어떤 측면을 알게 되고,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 수 있는지 모색하는 계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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