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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서평

은유로서의 질병

by 오송인 2016.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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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을 일종의 인과응보로 여기는 관념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특히 암의 경우에 이런 관념이 기승을 부렸다. 암에 관한 한, 우리는 '투쟁'을 하거나 '성전'을 벌인다. 암은 '살인마' 같은 질병이며, 암을 앓고 있는 사람은 '암의 희생양'이다. 표면적으로 이 질병은 범죄자나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암 환자 또한 범죄자 취급을 받는다.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질병에 관한 심리학적 이론에 따르자면, 질병에 걸리는 것이나 질병을 극복하는 것이나 전부 불행한 환자에게 책임이 달려 있는 것이다. 또한, 암을 질병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악마 같은 적으로 취급하는 관습 때문에, 암은 치명적인 질병이 아니라 수치스러운 질병이 되어버린다."


5쇄, 88쪽.


디스크가 오랫동안 잘못된 습관을 유지해온 결과라는 통념은 근거가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디스크의 원인이 전적으로 한 개인에게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이런 건 상대방이 말을 하지 않아도 표정 같은 것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인데, 상대의 반응을 보면서 나는 내가 정말 오랫동안 뭔가 잘못해 와서 척추가 이렇게 고로운 파열음을 내는 것일까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분명하다. 저자는 다양한 사회문화적 텍스트들을 동원하여 결핵, 암, 에이즈 같은 병이 도덕적인 판단의 대상이 되고 도덕적 판단의 은유로서 질병과 무관한 어떤 현상에 형용사처럼 사용되는 현상("뼛속까지 스며드는 매독처럼, 공화주의라는 정신이 우리 모두의 핏줄 속까지 스며들어 있다" 보들레르의 말, 90쪽)을 설명한다. 심장병 같은 건 도덕적 판단의 대상이 되지 않는데, 왜 이런 질병에는 도덕적인 판단이 개입되는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대체로 원인이 불분명하고(혹은 이와 같은 말이지만, 원인이 너무 많고) 완치가 어려운 병일수록 도덕적 판단의 대상이 된다고 보는 것 같다. 


왜일까. 책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고 있다는 느낌이나 그 이유를 생각해 본다. 인간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마련이다. 이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것이 도덕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하는데, 대부분의 SF 영화에서 외계인이 호전적인 존재로 그려지는 것도 한가지 예라 할 수 있다. 미지의 어떤 존재는 사악하게 마련이고, 도덕적으로 우월한 우리가 그 사악한 무리들을 제거해서 평화를 지켜내야 한다는 식의 논리는 외계인까지 가지 않더라도 특히 여러 종교전쟁에서 분명하게 나타났던 것이고 지금도 테러를 통해 반복되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인지적으로 구두쇠인 인간의 근본 경향과 결합하여 나타나는 비극이랄까.


질병에도 마찬가지 기제가 작동하는 것 아닐지. 결핵의 원인이 밝혀지고 치료될 수 있게 되면서부터 결핵은 은유의 기능을 상실했다. 암도 조만간 그렇게 될 것 같다.(발췌문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암 역시도 도덕적인 판단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두 권의 책을 합친 것이며, 두 권 중 나중에 씌어진 것의 출판 시점이 80년대 후반이라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에이즈처럼 '정복'이 요원해 보이는 질병은 여전히 사악한 어떤 것으로 여겨진다. 더 나쁜 것은, 위 발췌문에서도 언급되고 있듯이 에이즈뿐만 아니라 에이즈 걸린 사람까지 사악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되는 것일까? 에이즈는 원인을 알 수 없고 완치도 불가하여 인간에게 큰 공포를 안겨주는데, 에이즈 걸린 사람의 도덕적 타락(이를 테면 '추잡한 성행위') 따위를 운운하게 되면 적어도 예방은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니 두려움이 감소되고 무엇보다 나의 선함이 스스로에게 입증된다. 꿩 먹고 알 먹고.


디스크는 사람들에게 공포를 주는 질병은 아니다. 죽음과 직접적으로 결부되는 병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어떤 질병의 원인을 그 질병을 지닌 개인에게로 돌린다는 점에서는 결핵, 암, 에이즈와 일치한다.(저자는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데에 심리학이 일조하고 있다는 식으로 얘기해서 상당히 불편하긴 하지만..  잘 알지도 못하면서. ㅎ) 뉴스에서도 이런 걸 쉽게 접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전문가라는 사람들이랍시고 나와서는 잔인하게 시체를 훼손한 범죄자에게 싸이코패스 같은 진부한 진단들을 가져다 붙이는 경우다. 다만 이 경우는 뭔가 '잘못된 짓을 했기 때문에 병에 걸린 것이다'의 역전된 버전이다. '병이 있기 때문에 잘못된 짓을 한 것이다.' 두 경우 모두 질병에 도덕적 판단이 개입되고 있고, 현상을 이해하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순환논리로 귀결되기 쉽다('병이 있기 때문에 잘못된 짓을 한 것입니다.' '그럼 왜 병에 걸렸나요?' '어렸을 때부터 잘못된 짓을 했기 때문입니다' 와 같은).


병은 병일 뿐 도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디스크 발병 원인이 전적으로 한 개인에게 있지 않고 도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듯이, 알코올중독이나 정신분열증을 비롯한 정신장애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가 쓰는 말에는 도덕적인 판단이 비일비재하다. 이해하고 싶지 않은 누군가는 언제나 '미친년놈'이 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이해할 수 없는(혹은 이해하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 얼마나 쉽게 도덕적 평가절하라는 방식으로 해소될 수 있는지에 관하여 질병을 통해 언어학/고고학적으로 논증한 책이라 볼 수 있다. 


끝으로, 서술 방식이 뭔가 아귀가 잘 안 맞고 산만하다는 느낌을 받아서 집중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저자가 유방암으로 인해 경험해야 했던 자기 감정(이를 테면 수치심)의 실체를 파헤치려는 끈질긴 노력은 과학자의 그것과 닮아 있다. 암 완치를 위해 기울였던 저자 자신의 노력과도 궤를 같이 하는 책일 것이다. 


이하 2016.06.22 추가


"에이즈는 자신들의 정치적 의제를 집단 심리의 문제, 즉 국가적 자부심과 자신감의 문제로 해석하려드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건이다. 이런 추악한 감정을 다루는 전문가 나리들이 에이즈는 비정상적인 성 관계에 내려진 천벌이라고 제아무리 우긴다 할지라도, 이들을 움직이는 것은 전혀, 또는 특히 동성애 공포증이 아니다. 이들에게는 에이즈를 활용해 이른바 신보수주의자들의 주요 활동 가운데 하나를 추진하는 것 즉 (좀 부정확한 표현이긴 하지만) 1960년대부터 진행되어 왔다고 말해지는 '만인에 대한 문화전쟁'을 추진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


201쪽.


몇몇 질병에 대한 은유와 그 은유에 깔려 있는 도덕적 판단은 단순히 이해불가한 것에 대한 통제감 획득과 나의 안전, 나의 선함을 입증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병을 지니고 있거나 그 질병의 은유가 가리키고 있는 대상을 배제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적시하고 있음.


"나치즘과 파시즘 같은 전체주의 운동이 질병의 은유를 그토록 많이 사용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도 바로 이것이었다. 전체주의 운동의 지도자들은 자신을 외과의사와 동일시했다. 사회의 무질서나 정치적 적수가 무찔러야 할 질병이라면, 자신들은 이 질병을 발본적으로 수술해낼 의사라는 것이었다."


2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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