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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서평

모던 팝 스토리

by 오송인 2019.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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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과 인덱스 빼고 865페이지에 달하는 팝 역사서이다. 무겁기도 꽤나 무거워서 출퇴근할 때 들고 다니며 읽기 버겁다.


2017년 6월 5일에 샀다고 적혀 있는데, 아직도 다 못 읽었다. 678쪽까지 왔고, 블랙사바스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 책은 정말 방대한 팝 인명 사전이다.


블루스, 록, funk, 메탈, punk, 포스트펑크, 일렉트로니카, 소울 등 뉴욕과 런던을 중심으로 펼쳐진 팝의 연대기가 대략적인 시간 흐름에 따라 정리돼 있다. 그 가운데 정말 수많은 뮤지션이 언급된다.


시대적, 사회적 상황에 대한 언급이라든지 이런 얘기는 거의 없다. 오로지 음악 얘기만으로 이렇게 백과사전을 써낸 인물이 누군가 하면 세인트 에띠엔이란 밴드의 멤버인 밥 스탠리이다.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 중반에 음악을 정말 열심히 찾아 들었는데, 그 때 한 번쯤 들어봤던 밴드가 세인트 에띠엔이다.


내 취향은 아닌 별 특색 없는 인디팝.


세인트 에띠엔은 주류 음악과는 거리가 있는 인디 음악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도 분명 메인스트림 음악 위주로 다루고 있는데 왠지 인디스럽다.


어떤 말인가 하면 요새 한국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퀸은 모던팝 스토리에서 반 페이지도 다뤄지지 않는다. 한문단 정도였던 것 같다. 핑크 플로이드 같은 밴드가 세 장인가 다뤄지는데 이 정도면 이 책에서는 꽤 융숭한 대접이다. 팝의 왕이라 일컬어지는 마이클 잭슨이 네 장이기 때문이다.


저자인 밥 스탠리의 호불호에 의해 과감하게 삭제되었을 밴드 중에는 딥 퍼플 같은 밴드도 있다. 방대한 역사를 다루다 보니 오래 활동한 메인스트림 뮤지션 중에 주마간산 식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있고, 반대로 덕들도 잘 모를 법한 초기 레게 사운드나 초기 힙합 사운드가 비중 있게 다뤄지기도 한다. 어떻게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들을 다 알게 됐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나 역시 중딩 때부터 락키드로 자라 왔다. 중2 때 친구 누나가 듣던 Bush와 Rage Against The Machine 테잎을 빌려와 카피해서 늘어날 때까지 듣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유툽으로나마 음악을 찾아서 들어본다. 딸에게 틈날 때마다 락 음악(딸은 Talking Heads 같은 아프리칸 리듬을 좋아한다 ㅎ)을 들려주며 또 다른 락키드로 성장해 주길 바라는 아빠이다.(와이프가 꽤나 싫어한다.)


락 음악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팝의 역사라든지 장르가 발달돼 온 계보에 대해서도 꽤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 읽으면서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아는 건 정말 극히 일부였다.


밥 스탠리는 그가 '모던팝'이라고 명명한 음악의 기원을 1955년으로 보고 있다. 빌 헤일리가 Rock Around the Clock이라는 싱글을 내놓은 해가 1955년이다.(들으면 누구나 다 아는 노래다.)


이 때 이후로 엘비스 프레슬리, 비틀즈, 롤링 스톤즈, 밥 딜런 등 록의 역사가 이어지게 되는데, 록을 아무리 좋아해도 롤링 스톤즈나 밥 딜런 같은 유명한 뮤지션조차 안 찾아 듣게 되는 경우가 많다. 정말 유명한 곡들은 한두 번쯤 들어보게 마련이지만 구닥다리로 여겨지는 것이다.


이 책 덕분에 구닥다리로 여겼던 음악들의 진가를 확인하는 때가 종종 있었다. 거의 1년 반을 틈틈이 읽었는데, 속도가 이렇게 느렸던 것은 한 쪽에는 책이 다른 한 쪽에는 핸드폰에 띄워진 유툽이 있었기 때문이다. 궁금한 것은 참을 수가 없기에 호기심이 생기는 음악들, 특히 저자가 극찬하는 밴드나 음악은 꼭 들어봤다.


그러던 가운데 건진 밴드가 피트 타운젠드라는 걸출한 기타리스트를 보유한 The Who이다. 이 밴드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미드 CSI 나오는 이네들 노래를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비치보이스도 이 책을 통해 재발견했다. 17년에 불광천 워킹하며 앨범 단위로 듣던 기억이 있다. 1966년작인 Pet Sounds를 쭉 들어보니, 음악 좀 듣는다 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빨아대는지 이해가 됐다. 기발하고 전위적인 음악적 구성을 대중친화적으로 풀어냈다고 해야 하나.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갖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치보이스의 브레인인 브라이언 윌슨은 매우 순수한 영혼을 지닌 사람이며 정신장애를 오랜 기간 앓았다고 한다.


70년대 funk 밴드 Parliament, 필라델피아의 R&B 밴드 Stylistics, 뉴욕 punk 밴드 Ramones, 미시건의 프로토펑크 밴드 Stooges, 그리고 슈프림스를 비롯한 모타운 레코드의 밴드들, 조이 디비전 같은 70년대 말 80년대 초의 포스트 펑크까지.. 잘 모르던 장르나 밴드를 섭렵하는 계기가 됐다.


음악을 설명하는 저자의 수사도 꽤나 시적이고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를 테면..


"Dancing Queen은 순식간에 폭포처럼 쏟아지는 인트로로 시작돼서는 단 1초도 낭비하지 않는 곡이었다. 대위법에 기반을 둔 선율은 아바의 가장 큰 장기였고, 스트링 라인으로 펼쳐지든 활강 주법으로 표현되든, 그것은 곡의 가능한 구석구석 모두에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Dancing Queen은 또한 티렉스의 위대한 싱글들이 그랬던 것처럼 급경사로 뚝 떨어지는 지점이 있는 곡이었다. 보컬이 나타나자마자 메이저에서 마이너로 키가 전환되고, 그러면서 활력 넘치는 코러스가, you can dance, you can jive를 노래하는 주요 멜로디로 당신의 심장을 타격하기 바로 직전에, 듣는 이의 귀 속으로 활강하며 진입하는 식이었다."


지금처럼 음악을 마음대로 찾아 들을 수 없는 시대에 이 책을 봤다면 어떤 소설 책보다도 흥미진진했을 법하다. 고딩 때 핫뮤직에서 뽑은 백대 락명반 같은 걸 보면서 앨범 표지나 글을 통해 음악을 상상하던 기억도 났다.


방대한 분량에 압도되기 쉬운 책이고, 백과사전식으로 나열을 해놓으니 잘 모르는 밴드나 이야기가 나올 때는 지루해서 거의 글자 자체만을 읽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바나나 사운드가든, 그리고 나의 최애 밴드인 스매싱 펌킨스를 위시한 구십년대 얼터너티브 이전의 팝 히스토리에 무지했던 내게 1년 반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이 책을 읽는 것이 꽤 의미가 있었다.


논문이 그렇듯이 음악에도 레퍼런스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그것이 아이돌 음악이든 전위적인 실험 음악이든 간에 말이다. 듣고 좋으면 그만이라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어떤 곡이나 앨범의 레퍼런스를 스스로 조금이라도 귀로 읽어낼 수 있다면 음악을 듣는 일이 한층 더 즐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예술의 모든 분야에 해당된다. 조금 더 깊이 있게 팝 음악을 듣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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