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미국 심리학회 소속의 심리학자인 Michael Otto와 Jasper Smits가 쓴 Exercise for Mood and Anxiety: Proven Strategies for Overcoming Depression and Enhancing Well-Being(2011)의 번역서입니다. 심리학자, 운동을 말하다 라는 제목으로 2014년에 국내 출판이 됐습니다.
오토는 보스턴 대학의 교수고 스미츠는 오스틴에 있는 텍사스 대학의 교수이자 임상심리학자입니다. 쟁쟁한 사람들이 쓴 책이고 아마존에도 별 다섯 개짜리 좋은 평만 올라와 있는데, 개인적으로 큰 임팩트는 없었습니다.
2016년 가을쯤에 한 번 읽었고, 지금 프로미스팀 때문에 한 번 더 읽었는데 별로 새로운 내용이 없네요. 제가 전공자라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이미 운동이 일상의 일부로 녹아든 지 오래인 만성요통 환자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 책에 실전 적용 가능한 현실적인 운동 가이드라인이 많이 있는데, 새로운 부분도 있지만 익숙한 부분이 더 많습니다.
그럼에도 이 책을 다시 읽은 것은 습관 형성이라는 포괄적 주제에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인생은 매일의 좋은 습관이 모여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주제를 심리학적으로 접근하는 텍스트에 흥미가 생기는데요.
이 책은 초반 챕터에서 우울감이 빈번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운동의 치료 효과를 서술합니다. 운동도 습관이죠.
운동할 기운이 있었으면 우울에 빠지지도 않았겠지요 라고 반박하기 쉬운데, 매우 심각한 우울증을 지닌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행동활성화(behavioral activation)의 효과를 검증한 논문이 있는 것을 보면, 단순히 우울을 단순한 동기 저하나 에너지 수준의 감소로 설명하기 어려움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이 심한 우울증 환자를 대상으로 씌어진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이 책에서 제시하는 방법들은 우울증 환자에게 적용 가능한 원리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내적인 동기를 강조하기보다 환경 배치에서의 변화를 강조하여 원하는 행동이 지속되도록, 궁극적으로는 습관이 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그렇죠. 행동주의적인 원리를 적용하는 것입니다.
동기가 행동을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행동에 뒤따라오는 것이 동기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p. 65
운동을 촉진하는 환경적 요인을 부각시키고 저해하는 요인은 시야에서 치우는 전략인데요. 많이들 사용하는 부각 전략으로 즐거움을 주는 어떤 행동을 형성하고자 하는 습관에 결부시키는 것이 한 예입니다. 운동을 하며 좋아하는 팟캐스트를 듣는다거나 좋아하는 저자의 영어 강연을 유투브로 보면서 리스닝 연습을 하는 것이죠. 시야에서 치우는 전략으로 아이들의 TV 사용 시간을 줄이고 싶을 때, TV를 온 가족이 보는 거실에서 안방으로 옮겨 놓는 것을 들 수 있겠습니다. 그에 더해, 부각 전략으로서 거실에 책장을 들여놓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겠죠.[물론 엄빠가 책을 자주 읽는 사람들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아이들의 반발감이나 부모의 노력에 대한 외면(ex 더 많은 핸드폰 사용)이 적을 테죠..;]
환경 배치의 또다른 일환으로서 진입장벽이 낮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입장벽이 낮아야 한다는 것은 습관 형성에 들이는 매일의 노력이 너무 크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책에 제시된 예로서, 소파에서 일어나 조깅을 하러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치면 엉덩이 떼기까지 너무 많은 노력이 듭니다. 이 겨울에 따뜻한 집안에서 재미있는 넷플릭스 미드 보는 게 상대적으로 훨씬 쉽고 대비가 명확하니 더 하기 싫어지죠. '조깅해야 하는데.. 하는데.. 하는데..' 하다가 안 갈 확률이 높아집니다.
반면에 소파에서 '옷이나 입자'고 생각하면 엉덩이 떼기가 한결 수월합니다. 시작이 반이라고 옷 입으면 밖으로 나가는 게 더 수월해지죠. 밖에 나가면 걷기가 수월해지고 걷다 보면 뛰는 게 수월해집니다. 이렇게 개울물에 징검다리를 놓으면 노력을 덜 들이면서도 조깅이라는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쉬워집니다.
운동이 주는 최적의 즐거움을 잘 반영해서 운동에 접근하는 과정을 최대한 편하게 해야 한다. p. 89
책에서 잠시 벗어나자면, 이런 징검다리 전략은 거창한 목표에도 적용이 됩니다. 기타를 배워서 밴드를 해보겠다, 상담심리전문가가 되겠다, 뭐 이런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목표들 말이죠.
보통 새해에 거창한 계획을 세우지만 그 계획을 달성하는 사람은 10명 중 1명이라고 합니다. 10%죠. 90%가 실패하는 데는 저마다의 사정이 있을 테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목표만 거창하게 세우고 거기 도달하기까지의 징검다리 과정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그려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 과정을 미리 세부적으로 그려 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뿐더러, 당장 하루 살기도 바쁘고 신경 써야 할 게 태산인데 그 정도의 노력을 쏟기란 쉽지 않죠. 아무리 어떤 좋은 습관 형성에 대한 관심이 있다 하더라도.
저는 그래서 목표를 세우지 않습니다. 습관이 형성될 때까지만요. 목표를 세우고 또 하위 목표를 세워서 그것들을 달성하는 것이 매우 효율적이긴 하지만 직업이나 공부 외적인 부분에 인지적인 노력을 많이 들이고 싶지 않은 인지적 구두쇠 경향이 있기 때문에 대략적인 청사진만 머릿 속에 그려 놓고 일단 습관 형성에 주력합니다. 그 습관을 왜 형성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이해만 분명하다면 습관이 형성된 다음에 장단기 목표를 설정해도 늦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작게 시작하되 습관에 힘을 더하라. p. 162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일전에 말한 적 있는 실행의도 역시 운동이라는 습관 형성에 도움이 되는데요. 운동을 하기 싫을 때 어떻게 할지 미리 계획해 놓는 것입니다. 비가 오는 날 외부에서 운동할 수 없을 때 저는 집에서 푸쉬업을 합니다. 요즘에는 턱걸이에 밀려서 잘 하지 않는 운동이지만 20대 때 운동 습관 형성에 막대한 기여를 한 종목입니다. 직장일에 치여 너무 피곤해서 운동이고 뭐고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는 8000보라도 채우려고 노력합니다(피곤하지 않은 날에는 만 보 정도 걸으려고 살짝 노력합니다). 저의 경우 기본적으로 5500보 정도는 걸으니 8000보 채우는 게 그리 큰 노력이 드는 일은 아닙니다. 이렇게 실행의도를 생각해 놓으면 운동을 지속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목표로 했던 행동을 지속하는 데 애로사항이 생길 때를 대비하여 실행의도를 활용하는 게 포인트입니다.
이 책의 part 1에서 운동의 효과, 운동 지속의 어려움을 초래하는 요인, 운동을 지속하기 위한 전략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고 있다면 part 2에서는 본론으로 들어가서 실제로 '어떻게 운동하면 좋은가'를 다룹니다.
아무래도 미국 심리학의 대세가 인지행동적인 입장인지라 이 책에서도 인지적인 부분을 다룹니다. 5장이 그런데요. 기분을 가라앉게 만들면서 운동을 저해하거나 그 자체로 운동을 저해할 수 있는 부정적인 사고에 한 챕터를 할애했습니다. "그냥 잠이나 잘 거야. 내일 뛰어야겠어.", "알게 뭐야! 난 이미 기분이 나쁘다고. 운동하면 더 나빠질 게 뻔해."와 같은 생각들에 말려들지 않는 방법으로서 self-talk를 수정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를 테면,
그래 운동이 나한테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지. 침대에서 뒹굴고 텔레비전이나 보는 게 좋을 것 같기도 해. 하지만 지금은 운동 시간이라고. 난 기분이 좋아지고 싶고, 운동은 그렇게 되도록 도와주지. 문밖을 나가서 운동하고 나서 기분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보자고. p. 113
제 생각에 이런 방식은 별로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self-talk를 변화시키려하기보다는 저자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or 보다 and로 생각하는 게 필요합니다. 운동을 하거나 하지 않는 or의 방식, 이분법적 방식보다 운동을 하기 싫지만 그래도(and) 운동을 한다는 양가적 방식이 중요해 보입니다. 이런 생각은 꼭 운동뿐만 아니라 삶에서 많은 도움이 됩니다. 와이프가 밉지만 그래도 와이프를 사랑한다. 직장 상사가 *같지만 그래도 일은 즐겁다와 같은 사고 틀이 실제 현상을 더 잘 반영하고 적응력을 상승시키기 때문입니다.
6장 7장은 어떻게 개인에게 맞는 루틴을 정하는지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으니 각자가 쉽고 재미있고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게 루틴을 짜라는 것이 핵심입니다. 개인 경험을 하나 풀어 보자면 2013년부터 2016년 여름까지 기타를 정말 열심히 쳤고 2015년부터 밴드도 했습니다. 루틴한 연습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마음은 지미 핸드릭스인데 손가락은 학교종이 땡땡땡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나마 제가 쉽게 재미있게 칠 수 있는 곡이 오아시스였습니다. 유명한 브릿팝 밴드죠. 오아시스 곡들이 대체로 코드 잡기가 쉽고 노래 따라부르는 것도 재미있어서 오아시스 노래를 기타 코드로 쳐보면서 자연스러운 코드 체인지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코드 체인지가 좀 부자연스러웠는데 한 계단을 넘어선 것이죠. 오아시스 곡들은 지금도 가끔 일요일 오전에 와이프와 딸 앞에서 열창하곤 합니다. 다들 못 들어주겠다는 표정이지만. ㅎ 다시 한 번 핵심을 강조하면, 어떤 행동을 습관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쉽고 재미있고 오래 지속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달리 말해 "내적인 노력을 최소화"(p. 235)시켜야 합니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에 더해, 누차 강조하지만, 행동을 달력 등에 표시하며 모니터링하고 행동 과정이나 결과를 이런 소셜미디어에 공유하는 것이 매우 파워풀합니다. 제가 스팀잇에 중독된 이유이기도 하죠. 티스토리 블로그 백날 해봐야 한 달에 덧글 하나 달리는 꼴인데 여기는 그래도.. (갑자기 눈물이..) 저는 스팀잇 시작할 때 공부 도구로 활용하려 했고 지금은 습관 형성의 장으로 활용하는 중입니다. 모니터링도 되고 사회적 보상도 얻고 여러모로 유익해서 와이프가 스팀잇 중독자라고 핀잔을 줘도 계속 하게 됩니다. ㅎ
아.. 그리고 제가 인지하지 못 하고 있었는데 이 책 9장 읽어보니 영어 공부 기록이나 전공 관련 연재는 성취 경험의 향유로서도 기능하고 있었네요. 비단 모니터링 및 사회적 보상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단지 운동 내용을 기록했다는 측면보다는 운동 경험에 담긴 즐거움과 성취를 기념한다는 의미가 더 크다. p. 205
운동의 긍정적인 경험들을 기록하여 되새기면서 향유하는 것의 중요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습관 형성에서 행동 결과의 긍정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라는 메시지는 참신하게 다가오네요. 보통 그 순간의 즐거움으로 끝날 때가 많은데 메아리 울리듯 습관 형성 과정에서의 긍정적 기억을 의식적으로 반복하라는 주문입니다. 사실 성취 목표에만 집착하다 보면 과정에서 오는 즐거움을 놓치기 쉽습니다. 성취 자체가 큰 즐거움이긴 하지만 설령 원하는 바를 기한 내에 달성하지 못 했다 하더라도 과정 안에서 더 많은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이 훨씬 중요해 보입니다. 어떻게 보면 목표는 과정에 대한 향유를 거들 뿐이죠. 습관 형성을 위해서는 상식의 본말전도가 필요해 보입니다.
다 읽고 나니 왜 원제와 다르게 제목을 붙였는지 이해가 됩니다. 이 책은 기분 문제를 지닌 사람뿐만 아니라 운동이라고 하는 좋은 습관을 형성하려고 애쓰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많습니다. 전공자나 저처럼 운동이 일상인 사람에게는 비추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이 형성하려고 하는 어떤 습관을 떠올리며 이 책을 읽는다면 새롭게 환기되는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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