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앞부분을 읽고 있는데 지금까지 읽은 것 중 머리 속에 남는 것은 심리치료 장면에서 이차적 정서의 근간이 되는 일차적 정서를 파악하여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대상의 상실에 대한 분노 반응(이차적 정서)이 사실 슬픔과 외로움(일차적 정서)의 다른 표현인 경우 이런 일차적 정서를 자각하고 충분히 표현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슬픔에서 분노가 나올 수도 있고 슬픔에서 절망감이 싹틀 수도 있는데 그 중간고리는 인지인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이런 생각이 지나치게 단순한 것이라 보고 있다.
"인간의 현실 경험은 개념적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언어적 사고뿐만 아니라 지각적, 감각운동적, 동기적 수준의 정보처리와 기억 정보들이 통합됨으로써 구성된다. 그리고 이때 사고보다는 사고가 개입되지 않은 이미지, 언어가 없는 자동적인 감각운동반응, 누군가를 보거나 만지면서 느꼈던 의미 그리고 그 사람의 목소리가 정서 반응을 지배하고 있다. 이처럼 의식적 사고에 의해 중재되지 않은 정서와 감정들이 사고와 행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치료 장면에서는 다른 무엇보다 내담자의 세계에 대한 정서적 감각과 반응을 촉발하고, 이를 새로운 상황에 노출시켜 의미 구조를 재구성하며, 나쁜 감정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101쪽)
상당히 모호한 설명이다. 다른 건 차치하더라도 정서적 감각과 반응을 새로운 상황에 노출시켜 의미 구조를 재구성한다는 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고 싶다.
아래 단서가 될 만한 문단.
"나쁜 감정을 변화시키는 과정에는 단순히 감정을 허락하고 수용하는 것, 통찰이나 새로운 이해, 다른 사람의 지지, 혹은 단순한 신념의 변화만이 포함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욕구와 목표, 정서적 반응에 기초한 자기 조직화가 필요하며, 이는 다시 누군가에 의해 지지되어 확증되고 강화될 필요가 있다. 나쁜 감정을 다룰 때는 이런 새로운 경험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자기 조직화 및 자기의 새로운 측면들을 경험하고 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증가시켜야 한다. 이것이 바로 결정적인 변화의 열쇠가 된다. 이러한 과정을 정서적 재구성이라고 한다."(pp. 134-135)
이하 그냥 발췌
"치료 회기에서 고통을 다루고 새로운 경험을 하려면 두 가지 자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첫째, 안전감을 제공하고 정당성을 승인해 주는 치료자의 존재로, 이런 치료자의 기능이 부분적으로 내담자 안에 내재화된다. 둘째, 새로운 관점이 창조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치료자의 지지와 내적 관점의 변화라는 두 가지 도움에 힘입어 이전의 압도적이었던 경험에서 벗어나 일정한 거리를 설정하게 되고, 자기 양육적이며 자기 긍정적인 기능이 점차 발전하게 된다."(143쪽.)
'내'가 '이것을' 느낀다고 말할 때, 이것은 나로부터 분리되어 존재한다. 그리고 이때 자기를 감정의 수동적인 희생자가 아닌 책임지는 '주체'로, 즉 응집력 있는 자기(coherent self)로 경험하게 된다. 감정과 자기 간의 관계가 확립됨으로써 응집력과 주체성이 확보되는 것이다. 따라서 내담자가 고통에도 불구하고 "나는 실패한 것 같이 느껴져요."라고 상징화할 수 있다면 그 내담자는 자기가 견고해지며 대응 능력이 촉진되는 과정을 밟아 나갈 수 있다. // 자기 비난에서 자기 지지로 넘어가는 변화에는 이렇게 나쁜 감정을 먼저 경험하고, 감정을 상징화하며, 그런 다음 자신의 관점을 반성적으로 재검토하는 과정이 수반된다."(148-149쪽)
"과거 외상이나 고통스러운 경험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도 이를 언어로 전환하면서 외상을 자기 안에 동화해 가는 재구성 과정을 밟아 가게 된다. 정서적인 외상 경험을 상징화하면서 이전에는 말로 분명하게 표현할 수 없었던 경험들에 명세화가 허락되고 의미가 부여된다. 외상적인 기억들은 안전한 환경에서 활성화하고 상징화함으로써 통제력을 회복하고 희생자가 아닌 주체가 되어 가는 것이다."(1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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