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독보다 한 권을 읽더라도 여러 번 읽는 것이 유익하다는 배라톤의 철학에 따라 두 번 이상 읽기를 실행하고 있다. 20살 이후로 많은 책을 읽어 왔으나 그것들 중 어느 하나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만들었고, 무엇보다 학부 때 몇몇 사람들과 반 년 이상 철학스터디를 하였으나 역시나 머리 속에 뭐가 남은 건지 도대체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배라톤의 철학을 따르기로 한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
그 첫 번째 타깃이 소립자였고 두 번째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그리고 세 번째가 힐쉬베르거의 서양철학사다. 그 중 밀란 쿤데라의 대표작이라 일컬어지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가 오늘 내 머리 속을 사로잡았다. 이 소설은 토마시, 테레자, 사비나, 프란츠라고 하는 네 인물의 얼키고 설킨 사랑이야기다. 말이 좋아 사랑이야기지 정확히 말하면 불륜이 테마다. 하지만 이건 다분히 외피적인 것일 따름이고 이 네 인물 각각이 인생 여정에서 택하는 선택이 메인 테마인 것 같다.
내가 가장 눈 여겨 본 인물은 사비나다. 이 여자의 모티프는 배신이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무엇보다 이념에 얽매이지 않는다. 이념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이 무슨 말일까? 사비나는 기독교나 공산주의, 그리고 민주주의, 가족주의 등등 어떤 이데올로기든지 간에 그것이 보편성 하에 개별성을 지워 버리려고 한다면 그것을 키치라 명명하고 키치에 저항한다. 사비나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둔다는 것도 결국 타인들이 바라는 보편적 기대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마누라까지 내팽개치고 왔던 정부 프란츠를 거침없이 차버리는 태도도 이런 몸부림의 일환이었다고 본다. 그녀가 원했던 것은 자기 존재의 개별성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모든 키치들은 이 개별성을 억누른다. 그래서 그녀는 키치들에 대한 배신을 선택했던 것이다.
프란츠는 어떤가. 이 사람은 사실 사비나가 제일 싫어하는 유형이었다. 그가 서 있는 강단 속 현실보다는 거리에서의 투쟁 대열 같은 이상이 자신을 살아 있게 한다고 느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결국 프란츠가 바랐던 것은 사비나의 시선이었다. 그 시선은 직접적인 것이 아닌 상상 속의 것이어도 상관이 없었다. 상상 속 사비나가 이상을 좇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해 주길 바랐던 것이다. 이 사람의 선택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시선 속에 사는 것이었다.
다음으로 토마시. 토마시는 체코의 유명한 외과의사지만 68년 소련의 체코 점령과 그러한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외과의사직에서 밀려나 유리창 닦는 청소부로 전락한다. 이 사람은 돈 주앙 같은 불륜 왕자다. 첫 번째 부인과의 이혼 이후 테레자를 알게 되고 그녀와 사랑에 빠지지만 수많은 정부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테레자에게 사랑과 섹스는 별개라고 말도 안 되는 주지화를 펼치면서 말이다.(테레자는 토마시를 원망하면서도 이런 것들을 다 받아준다. 이 여자도 정상은 아니다.) 토마시가 불륜에 집착했던 것은 그가 다른 여자들의 개별성이 섹스하는 가운데 나타나는 그녀들만의 독특한 행동에 있다고 믿었고 그것을 확인함으로써 그 여자들을 정복하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무엇보다 이것은 테레자와 사랑에 빠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래야만 한다"라는 당위성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하지만 테레자가 자신의 머리카락에서 나는 다른 여자의 성기 냄새를 오랫동안 참아 왔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대오각성하고 도시를 떠나 테레자와 함께 시골로 이사를 가게 된다. 그는 "그래야만 한다"라고 하는 당위로부터 벗어나기로 선택한다.
마지막으로 테레자.. 사실 이 테레자가 선택한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그녀는 끊임없이 자신의 육체보다 고귀한 자신의 영혼을 찬미했다. 그녀가 토마시를 선택한 것도 육체의 저 깊은 어딘가에 꽁꽁 감춰져 있는 자신의 본질, 즉 자신의 고귀한 영혼을 그가 육체의 표면으로 끌어올려 줄 수 있을 거라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토마시의 불륜 행각으로 인해 그녀의 영혼은 끌어올려졌다 추락했다가를 반복하게 된다. 그녀가 평온을 찾는 건 시골로 이사를 하고 죽기 전까지의 몇년 뿐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평온은 결과적으로 보면 그녀에 대한 토마시의 사랑이 아니라 그녀가 애지중지 키워온 카레닌이라는 개에 대한 사랑 속에서 얻어지는 것 같다. 개들은 그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주인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한다. 약간 희극적이기도 하지만 테레자는 카레닌이 보여주었던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한 찬미를 선택한다.
앞서 살짝 얘기했지만 이들이 속했던 시대 상황 자체가 모순의 연속이었다. 공산주의를 찬양하던 체코인들은 스탈린 치하의 소련 공산주의가 보여주는 잔혹함 앞에서 공산주의를 포기하거나(즉 자기 인생의 상당 부분을 부정하거나) 공산주의를 버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에 심각한 결함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즉, 절대적인 가치라고 할 만한 것이 순식간에 허물어져 버리는 가치의 혼란을 겪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들이 믿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선택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책임의 무게감이 어떠했을지는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짐작컨대 말 한마디, 행동 한 번 잘못했다가는 자기나 자기와 관련된 사람들이 비밀경찰들에 의해 쥐도새도 모르게 끌려가는 그런 상황 속에서 제정신으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노릇일 시대였을 것이다.
사진 출처: http://blog.daum.net/007happy/13393466
바츨라프 광장: 격동의 체코 근대사를 지켜본 역사적 장소라고 함. 프라하는 꼭 가보고 싶은 도시다. 수련 끝나면 가나..
네 인물의 선택은 이러한 시대적 맥락 속에서 단순히 개인의 선택을 넘어서는 어떤 성격을 갖게 된다. 오늘 어떤 옷을 입을까 이런 수준의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고 자기 존재의 근거를 어디에다 두는가의 문제에 직결되는 선택인 것이다. 이런 까닭에, 예를 들어 토마시가 머리에서 나는 정부의 성기 냄새를 오랫 동안 참아온 마누라에게 속죄하는 심정으로 시골로의 이사를 감행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당위로부터의 탈출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형이상학적 사건으로 질적 비약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토마시는 수많은 정부들을 포함하여 자기 존재의 토대가 되었던 모든 must와 결별하기로 작심한다. 그는 그런 식으로 새로운 어떤 것(자유?)을 자기 존재의 기반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 소설이 고전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내가 글을 잘 못 쓴 것이 쿤데라에게 죄송할 정도로 질적 비약의 개연성을 흡인력 있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 있다. 쿤데라의 문체 속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시대 상황을 걸머지고, 하늘로 올라가기보다 땅 속 깊은 곳으로 추락한다.
덧: 토마시 머리카락에서 어떻게 여자 성기 냄새가 날 수 있었을까? 각자의 상상에 맡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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