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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여행

지리산 종주 3일차

by 오송인 2013.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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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다섯 시에 세석을 출발해서 또 야간 산행을 했다. 대피소를 나오니 한겨울 칼바람이 불어대고 있었다. 옷깃을 여미고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출발했다. 이번에는 어제 야간 산행과 달리 바람이 심하게 불고, 체감 고도가 훨씬 높고, 자칫 발 잘못 디뎠다가는 황천길로 가는 수가 있었기 때문에 랜턴을 이리저리 비추며 형세를 파악하는 가운데 느릿느릿 움직였다. 한 시간쯤 지났을 때 해가 뜨기 시작했는데, 아름다웠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색감이었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긴장을 많이 한 탓이었으리라.




우주적인 고요함이랄까..


천왕봉을 앞둔 마지막 대피소인 장터목 대피소까지 3.5km를 걸어 도착했고, 하산길에 위치해 있는 로터리 대피소까지 7km 남짓은 물 받을 데가 없기 때문에 대피소에서 물도 1리터 가득 채웠다. 그리고 다시 1.7km 정도를 힘겹게 힘겹게 올라 천왕봉에 도착했다. 8시경이었다. 일출은 볼 수 없었지만 드디어 끝났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안도감이 밀려 왔다. 경치는 그간 30km 걸으면서 많이 봤기 때문에 어느 부부에게 기념 사진 한 장 부탁하고 지체없이 하산했다.





하산하면서, 걱정하고 있을 누나에게 살아서 내려간다고 카톡 하나 보내고, 빠르게 로터리 대피소까지 내려 갔다. 대피소에서 라면을 두 개 흡입하고 다시 중산리까지 내려가는데, 단풍이 끝무렵이긴 해도 붉게 물든 산세의 풍경에 자꾸 눈이 빼앗겨 자주 쉬었다. 





중산리를 3km 앞두고 버스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길래 탈까 하다가 결국 시외버스 다니는 곳까지 걸어서 내려갔는데, 단풍으로 물든 굽이굽이 도로를 전세라도 낸 양(차가 한 대 지나간 게 다였다) 유유자적하자니 이제서야 휴가 기분이 좀 나더라.





중산리에서 진주로 와서 진주에서 집으로 오니 7시다. 핸드폰 배터리가 조루라 서울 도착 두 시간 남겨 놓고 꺼지는 바람에 2박3일 산행의 풍경들과 생각들을 되짚어 봤다. 근데 집에 와서 빨래하고 씻고 밥 먹으니 아무 생각이 안 난다. ㅎ 3일 동안 씻지도 못하고 심지어 양치도 금지라 몰래 숨어서 했는데, 오랜만에 쾌적함을 만끽하며 늘어지는 중이다. 


백발 성성한 할아버지들도 노익장 과시하며 종주하는, 어렵지 않다면 어렵지 않은 것이 지리산 종주인데, 그래도 끝까지 탈 없이 36km 완주한 자신이 대견하기도 하고 그렇다. 그리고 올해 신나게 운동한 게 이번 종주에서 여지없이 빛을 발한 것 같아 뿌듯하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일출을 못 본 것인데, 다음에는 성삼재에서 출발해서 연하천 대피소에서 1박, 장터목 대피소에서 2박 하고 일출을 보면 되겠지 싶다. 첫째 날, 둘째 날 모두 너무 일찍 대피소에 도착해서 어중간했다. 소설책이라도 한 권 가져 갔으면 좋았을 것을.


한편 서치 열심히 한 만큼 배낭에 필요한 것만 챙겨 갔다는 생각이 들고, 특히 효자 노릇한 등산용 스틱과 더불어 건빵과 사탕을 각각 한 봉지씩 챙겨간 게 매우 유용했다. 그리고 집에 있는 에어베개가 살짝 아쉬웠다. 귀마개는 가져 가긴 했는데 첫째 날 노고단 대피소에서 아저씨들이 심포니 오케스트라로 협연해 대서 거의 소용이 없었다. 또.. 햇반은 큰 사이즈 가져 가면 밥 익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니(15분?) 무조건 일반적으로 사먹는 사이즈로 가져가야 한다. 


10년 전엔 국토대장정을 했었는데, 10년 후엔 뭘 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이번 여행길의 주요 배경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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