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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심리학/정신병리

경계선 성격장애에 대한 이해

by 오송인 2013.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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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의 분리 개별화 단계 중 16~24개월에 해당하는 재접근기에 아기들은 엄마가 자신을 보살펴 주기를 바라면서도 막상 엄마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고 신경을 쏟으면 엄마를 밀어내고 거부하는 행동을 반복한다고 한다. 연습기(10~16개월)의 의기양양함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도 세상에 많다는 것을 체감하게 되면서부터 누그러지기 시작하고, 이 때 엄마와의 공생관계 속으로 퇴행하려는 욕구가 생겨나게 되는데, 연습기의 과대성을 완전히 포기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항상 내 뜻대로 움직이는 것만은 아닌 엄마에게 완전히 의존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혼자서 세상 속으로 나가기에는 두려운 마음이 크기 때문에 이런 양가적인 태도가 나타나게 되는 것으로 이해했다.

 

이런 양상은 경계선 성격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 BPD)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이다. BPD에서도 이런 양가적 태도가 두드러지기 때문에 인지, 행동, 정서상의 변덕스러움이 나타나게 된다. 예를 들어, BPD의 핵심 진단기준이 상대방으로부터 버림받는 것에 대한 공포를 느끼고 그런 상황을 회피하려는 광적인 행동을 한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극도로 의존적이다. 그래서 몇 번 만나지도 않은 사람에게 자신이 늘 되고자 하지만 도달하지는 못하는 자아이상을 투사하고는 그 사람에게 보호와 안심과 격려를 과도하게 요구하게 된다(ex. 상대방의 스케줄은 안중에 없이 수시로 전화를 하거나 카톡을 날리는 등의 행동). 내 엄마가 되어 달라고 떼를 쓰는 것이다. 엄마처럼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나를 이해해 주길 바라고 엄마처럼 내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나를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필연적으로 실패와 좌절로 끝나게 마련이다. 즉 상대방이 BPD가 바라는 바를 충족시키려 애쓴다 해도 버림받는 것에 대한 공포가 너무 큰 나머지 상대방을 불신하고 밀어내는 행동을 보이게 되고, 이것이 실제로 상대방의 거부 반응을 유도하면서 BPD가 예상했던 불신의 내용(ex. “난 쓸모 없는 인간이고 저 사람은 날 정말 좋아하는 게 아냐)을 확증하게 된다(투사적 동일시). 더욱이 자아이상은 그야말로 이상일 뿐이기에 결코 현실에서 달성될 수 없고, 자아이상에 부합되지 않는 상대방에 대한 실망감이 상대방에 대한 분노와 폄하를 유발하게 되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전적으로 의존할 수 없지만 외롭고 공허하고 사회적으로 무능한 자신도 믿을 수 없는 이들은 이후 자기비난과 자살사고, 알코올 의존 등으로 표현될 수 있는 정서적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

 

이런 것들이 BPD를 이해하는 한 틀인데, BPD 환자들을 두세 사례 정도 평가해 보고 차트상의 경과도 지켜 보면서 느끼는 건, 입원을 통해 이 환자들이 자해 행동이나 정신증적 증상들에서의 일시적인 개선을 보일 수 있다 하더라도 이런 개선은 표면적인 것일 뿐이고 입원을 통해서 자신의 의존적인 측면과 자기 폄하적인 측면을 자각할 수 있게 돕지 못하면 퇴원하더라도 재입원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입원 후에 어떤 점이 좋아진 것 같느냐는 물음에 편하게 쉴 수 있어서 좋다 나가면 신경 써야 될 일도 많은데,라는 식으로 대답하는 것은 입원을 통해 개선된 게 하나도 없다는 얘기의 다름이 아니다. 병동이 또 다른 의존대상이 된 것이다.

 

증상 개선을 넘어 주체적인 한 명의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기 위해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주관적으로 느끼는 우울이나 분노, 수치심 등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한다. 못나고 초라하고 찌질하고 나약한 자신의 모습도 자기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BPD뿐만 아니라 모든 성격장애 환자들, 모든 정신장애 환자들에게 지난한 과정이지만 이 애도 과정을 통과하지 못하면 대인관계는 늘 지옥이 될 뿐이다. 자기 못난 부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을 믿을 준비가 된 것이고, 자신을 믿으면 다른 사람을 이상화하여 과도하게 다른 사람에게 의존할 필요가 없게 될뿐더러 다른 사람이 가끔 XX로 보일 때가 있다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인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어, 불필요하게 상대방을 폄하하는 양상도 사라지게 된다. 지나친 투사와 공상의 보호막이 제거되고 현실 속에서 호흡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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