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찮게 낮비라는 만화책을 접하게 됐다. 완결까지 여섯 권밖에 안 돼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몰입도가 있었다. 이 만화에는 세 가지 캐릭터가 등장한다 오카다, 안도, 모리타. 오카다는 25살 정도 됐는에 모태솔로에 친구도 없고 빌딩청소일을 한다. 오카다가 바라는 것은 남들처럼 평범하게 애인도 만들고 닭살 짓도 하고 뭐 그런 거다. 그런 오카다에게 안도라는 친구가 생긴다. 안도는 오카다와 같이 빌딩청소일을 하는데 안도가 먼저 말을 걸기 전까진 다른 사람과 교류가 거의 없다시피 한 생활을 해 온 31살 모태솔로다. 이 안도라는 캐릭터는 만나는 여자마다 다 들이대다가 제풀에 지쳐 여자를 멀리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하고.. 좌우지간 아주 좌충우돌 순진남이다. 이 만화의 또 다른 축을 이루는 건 모리타의 얘기다. 모리타는 학창시절에 아주 심한 괴롭힘을 당했고, 정신적으로도 심각한 문제가 있는데 사람을, 특히 여자를 목 졸라 죽이는 것에서 성적 쾌감을 느낀다.
작가는 오카다의 첫 여자친구를 모리타가 죽이려는 상황을 설정해 놓고 꽤 긴장감 있게 스토리를 전개시켜 나간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몰입도가 있었고 킬링타임용으로 그만이었다. 하지만 기승전결에서 기승까지 끌고가다가 만화가 끝나버리는 느낌이라 허탈했다. 전결이 없으니 책장 덮은 뒤엔 '이건 뭐지'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하지만..
사회에는 언제나 아웃사이더 혹은 마이너리티라 불리우는 정서 같은 게 존재한다. 외부에서 그렇게 규정하든 내부적으로 내세우든 간에 이 작가는 그런 정서를 잘 포착해서 공감대를 형성시킬 수 있는 재능이 있다고 느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애인도 사귀고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집도 사고 뭐 그렇게 살고 싶은데 현실은 늘 외부 관찰자적인 관점으로 그런 주류 인생을 갈망하게 되는 위치에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이 만화 보고 일종의 안도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만 그렇게 홀로 외로이 변방에서 살아가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달까. 반대로 이미 마이너리티로부터 벗어나 주류 인생에 편입됐다고 느끼는 사람도 이 만화보면서 똑같이 안도감을 느낄 것 같다. 내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 참 다행이다. 솔직히 난 후자와 같은 생각을 했다.
또 다른 한편으로, 심리사회적 발달 과정상에서 보면 이런 정서, 자신이 마이너리티고 아웃사이더라고 여기는 건 청소년기 혹은 이른 성인기에 누구나 한 번쯤은 거치게 마련인 과정이 아닌가 싶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정서랄까. 중고등학교 때는 그야말로 정체성 확립이 중요해지는 시기라 자신만의 취향을 갖는 게 중요한데 이 자신만의 취향이라는 건 다른 사람과 차별되는 자기 고유의 무언가를 찾으려는 시도가 쌓이고 쌓인 결과물이다(ex, 팬덤). 그런데 자기만의 취향을 찾은 결과 다른 사람과의 연결점들이 많이 끊어져 버리는 사태가 발생하고, 이에 다시 다른 사람과의 친밀감을 복구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대학교 신입생 OT 때 죽어라고 술 퍼마시는 동기도 다른 사람과 친해지고 싶다는 바람 아닌가. 만화에서 사회적 고립감을 경험하던 안도 역시 (참으로 개연성 없게) 미녀로부터 고백을 받게 되고 그러면서 친밀감 형성이라는 심리사회적 과업을 달성하게 된다. 사실 그 전에 이미 오카다는 안도와의 친밀감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했고 친밀감 형성에 성공하게 되지만 에릭슨이 말한 친밀감은 이성과의 친밀감이었다는 점에서 여자친구를 사귀게 된 그 시점이 처음 심리사회적 과업을 달성한 시점이 아닐까 한다. 반면 모리타는 자신의 정체성에 심한 혼란감을 느끼며 살인의 굴레로부터 벗어나질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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