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이 없고 소심하면 결정을 하거나 행동할 때 눈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혼자서 무엇인가를 하려면 겁부터 나서, 다른 사람의 힘과 판단을 빌려야 비로소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자신의 행동이나 태도, 생각은 상대가 옳다고 해야 옳은 것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틀린 것이 된다.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로서의 자신은 사라져버린다. 무엇이든 남들이 바라는 것이 더 좋은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태도가 심해지면 자신의 내면마저도 타인과 같아야 정상이라고 여기고, 자신의 느낌과 바람까지도 다른 사람이 확인해주길 바란다. 다른 사람이 보증해주지 않는 자신의 감정은 불량한 감정 혹은 불량한 욕구라고 여기고 누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스스로 폐기한다. 그러다가 자신의 느낌이나 바람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까지 이를 수도 있다.
이러한 성격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수동의존성passive dependent이다."
박근영 선생님이 쓴 왜 나는 늘 눈치를 보는 걸까 중에서 발췌. 사진 않았는데 좋은 책인 듯. 한 권 사 볼 생각이다.
어떤 상황에서 판단을 잘 내리지 못하고 우유부단해지는 면은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고 좋게 보면 신중한 태도라고도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우유부단해진다 하더라도 그 우유부단함의 시간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견해를 참고하는 시간으로 사용되는 경우에는 장점이 된다. 하지만 수동의존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의 견해를 참고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따르려 한다는 것이 문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사고상의 우유부단함은 보통 감정의 우유부단함과 직결된다는 점이다. 둘은 동전의 양면인데 굳이 선후 관계를 따지자면 감정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판단에 자신이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인간이 내리는 판단의 대부분은 이성보다는 감정을 따르는데 감정이 명확하지 않으니 판단에 자신이 없을 수밖에.
베일런트 책 읽으면서 정신건강도 지능처럼 연속선상에서 척도화 할 수 있다는 견해에 동조하게 된다. 신체적으로 더 건강한 사람이 있고 덜 건강한 사람이 있듯이 정신적으로 더 건강한 사람이 있고 덜 건강한 사람이 있다(물론 개인력상에서 정신건강 수준은 변화하고 가역성이 있다). 그리고 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정신건강의 정도를 가늠하는 핵심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일례로 투사 같은 미숙한 방어 기제는 근본적으로 감정의 투사다. 즉 인식되지 못한 불편한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가함으로써 심리적인 균형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수동의존적 성격 특성 역시 자신의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확인 받아야 안심이 될 정도로 감정 인식이 잘 되지 않는 데 상당 부분 기인하는 것이 아닐지.
요약하면 정신건강 성숙도의 지표는 정서 인식 및 표현 능력이고, 정서 인식 및 표현 능력 부족은 수동 의존 성격 특성을 비롯해서 정신병리 일반에 걸친 특징이라는 것이다.
사족을 하나 더 달자면 결국 정신건강의 성숙도가 비슷한 사람끼리 친구가 되고 커플이 되게 마련이다. 그러니까 상대를 원망할 시간에 자신을 들여다 보는 것이 이롭다. 원망하게 되는 그 부분이 자신에게도 있을 테니까. #점심시간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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