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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여행

국토종주 3일차

by 오송인 2015.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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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구미에서 경남 합천까지 134km, 9시간 33분 라이딩.


둘째날 묵었던 모텔이다. 사장님이 친절하시다는 글을 어느 블로그에서 보고 일부러 찾아간 곳이다. 모텔 나서기 전에 전날 흙탕물에 만신창이가 된 자전거를 물티슈로 닦아내고 있었는데 사장님께서 걸레 필요하냐고 물어보시더라. 이런 사소한 행동 하나에서도 충분히 친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어제 고생을 많이 해서 이 날은 늦게까지 잤다. 자전거포 문 열 시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구미보에서 빠진 앞바퀴 바람을 넣기 위해 모텔에서 3km쯤 달려 찾아간 자전거포다. 구미역 앞에 위치하고 있다. 바람도 넣고 세차도 하고 기름칠까지 했는데 2000원 받으셨다 서울이었다면 두세 배는 받았을 것이다. 여기도 강력 추천. 20km 떨어진 구미보 정도까지는 출장도 나가시는 것 같다. 그런 적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말이다. 근처에서 난처한 상황 생기거든 여기로 전화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구미역 부근에서 밥을 먹고


어제 저녁 사진 찍었던 산호대교로 와서 다시 자전거길 합류했다. 덥긴 했지만 어제 그 생고생을 하고 나니 화창한 날씨가 마냥 좋게 느껴졌다.


저 멀리 LG 디스플레이 공장이 보인다. 역시 산업 도시.


이런 길을 정말 끝도 없이 달린다. 그래서 자덕들은 이 길을 낙동사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낙동강 상류 마지막 인증센터인 칠곡보 도착. 


편의점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자장구 국토종주 하다 보면 느끼게 된다. 사진 찍게 될 정도로 소중한 보급처이다.


멋대가리 없는 칠곡보 모습. 콜라 한 캔, 커피 한 캔 원샷하고 있는데 옆에 초딩 아들과 함께 국토종주 중인 아버지가 앉는다. 작년에 종주를 하긴 했는데 아들이 일부 구간에서 퍼져버려서 그 구간만 인증하는 중이라고 했다. 아들 얼굴은 이미 새까맣게 타 있었는데 늠름한 척하려 했지만 앳된 얼굴에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그만큼 힘들어 보였고 아들 데리고 종주하는 아버지도 대단해 보였다. 왠지 미래의 내 모습 같았..


종주 3일차쯤 되면 달리면서도 사진 찍는다. 물론 이런 짓은 가급적 안 하는 게 좋다;


저 멀리 대구가 보인다. 주변이 저렇게 산으로 쌓여 있고 열기가 빠져나갈 수 없으니 더운 게 당연하다.



덥다. 둘째날 잠을 많이 자서 컨디션은 좋았으나 지루했다.


강정고령보에서 달성보 가는 길에 길이 지루해서 처음으로 엠피쓰리를 켰다. 알이엠 베스트를 듣는데 everybody hurts 듣다가 느닷없이 자신과 만나는 순간이 있었다. 이대로도 충분히 괜찮다고 위로하면서 달렸다. 정말 난데없이 울컥한 순간이어서 당황스러웠다.




달성보 찍고 나서 자전거길 따라 가지 말고 박석진교를 넘어가라는 말을 특히 가슴에 새기며 떠난 종주였다. 자전거길을 따라 가다 보면 12km MTB 길이 나오는데 로드로 통과하기에는 어려운 구간이라 한다. 아니나 다를까 길치인 나는 박석진교로 진입하는 길을 못 보고 1km쯤 지나쳤다가 후진했다. 그리고 박석진교 넘어간 것까진 좋았는데 다리 끝 사거리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한참을 검색했다. 하지만 상세한 지도나 설명을 발견하지 못해서 20~30분 가량 정체됐다. 그러던 중 일군의 자전거 무리가 나를 지나갔고 그네들 뒤를 졸졸 따라간 덕에 다시 자전거길로 진입할 수 있었다. 


박석진교 건너자마자 우회전해서 쭉 따라 내려가다 보면 달성우체국이 보일 것이다. 그러면 달성우체국을 등 뒤로 한 채 직진한다. 직진하다 보면 현풍3교라는 다리 밑을 지나게 되는데 다리 지나자마자 우회전하면 자전거길로 진입하게 된다(아래 지도 참고).





박석진교에서 얼마 안 달려 다람재 도착. 300미터밖에 안 되는 구간이지만 경사가 13도 정도라 우회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도전정신이 발동하여 우회하지 않았고 결국 끌바 없이 오르는 데 성공했다. 최고의 짜릿함과 성취감을 주는 업힐이었다. 나를 지나쳐갔던 무리는 모두 끌바하고 있었는데 그 중 대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대단하다고 말해주었다.


북악 2회전에서도 탈탈 털리던 내가 다람재 정복이라니. 종주 3일만에 멘탈과 엔진의 업그레이드가 실감이 됐다. ㅜ.ㅜ


다람재 정복 이후 신이 나서 부악부악 댄싱하며 치고 나갔다. 멀리 보이는 건 소방용 헬기.


낙동강이 대체로 지루하긴 했으나 이런 풍경은 아름다웠다. 사진에는 내가 느꼈던 아름답고 고요한 느낌을 담지 못해 아쉽다.


블로그 통해 이미 알고 있었던 무심사 우회길. 여기서도 좀 헤맸는데 네이버 지도상에서 설명해 보자면 서울연합의원을 오른쪽에 끼고 쭉 내려가다가 사거리 나오면 우회전해야 한다. 우회전한 후 1034번 국도 타고 내려가다가 우산농장 직전에 나오는 왼편 샛길로 들어가야 합천창녕보에 이를 수 있다.


길 헤매던 중 한 컷.


합천창녕보 지나 예정대로 적포교 부근에서 1박할지 조금 더 갈지 고민이 됐다. 마지막날 서울행 2시 차를 탈 생각이었는데 이래저래 계산해 보니 조금 더 가는 게 여유로울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날이 저물고 있던 상황이었고 다음 숙박지는 남지까지 30km는 더 가야 하는 상황이라 깔끔하게 포기하고 적포교 삼거리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이 날 점심 먹을 데가 마땅치 않아서 점심을 거른 터라 밥 두 공기 순식간에 해치웠다.


내 바로 앞에는 길 헤맬 때 만난 아저씨가 있었는데 부근에 살고 있고 자전거로 운동 중이라고 했다.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난 여기서 잘지 더 가서 잘지 고민이 된다고 얘기했는데 10km쯤 더 가면 민박 있다고 거기서 자라고 조언해줬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이 밤에 박진고개를 넘어가는 것은 무리니 그냥 이 근처에서 자겠다고 해도 그 고개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얘기하면서 굳이 여기저기 전화하더니만 그 민박집 전화 번호 알아내서 내게 건내주고 갔다. 민박집 사장한테 누구누구 엄마라고 호칭하는 걸 보니 아는 사이 같았다. 내가 더 안 가겠다고 여러번 말했는데도 메모지까지 주고 가는 꼰대스러움이 꽤나 불쾌했다.  


숙박은 블로그 통해 알아봐 두었던 강변모텔에서 했다. 자장구를 소중하게 다뤄주시는 사장님의 친절함은 인상적이었으나 블로그에서 봤던 이미지와는 달리 당장이라도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을씨년스러움이 압권이었다. 무서워서 밤에 잠도 좀 설쳤다. 당장이라도 누가 문 따고 들어와서 장기 빼갈 것 같은 그런 느낌이라고 말하면 설명이 될지 모르겠다. 뭔가 굉장히 피해망상을 자극하는 그런 분위기.. ㅎㅎ 


자기 전에 인생횡단이라는 SBS 스페셜 프로그램을 2부까지 봤다. 도전 정신 강한 사람들이 히말라야를 탐험하는 모습을 역동적으로 담아낸 프로그램이었는데, 사람들은 왜 그렇게까지 도전을 하는 것일까 그리고 나는 왜 종주를 하고 있는가 의문이 밀려 왔다. 재미와 성취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도전하고자 하는 동기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 뭘까 무척이나 궁금했다. 리즈 위더스푼이 주연한 와일드라는 영화에서는 단역으로 출연하는 한 기자가 이에 답한다.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누군가에게는 도전이나 모험이 심리적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겠다. 나는 어떤가? 글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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