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걸었다. 산이 타고 싶었으나 아직은 무리인 듯. 제주도 다녀온 이후로 거의 2주째 허리통증이 극심하다. 2월 초에 많이 아프다가 멀쩡해진 게 불과 2월 말인데 제주도에서 너무 무리한 게 화근이다. 후회해도 이미 늦었기 때문에 어떻게 이겨낼지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다행히 낮엔 좀 괜찮아서 도서관에서 책도 보고 오늘처럼 오래 걷기도 하고 있다. 이렇게 아플 땐 걸을 수 있다는 것조차 감사하게 된다. 고통은 삶의 본질에 다가가게 만드는 힘이 있다. 고통이 극심할 땐 죽음을 실감하게 되는데, 죽음 앞에선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다.
죽음 앞에선 돈이 많든 적든,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직장이 있든 없든 이런 것들 모두가 그리 중요치 않은 것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신을 찾게 된다. 예전에 알코올중독자를 위한 집단치료 세션을 할 때 리더였던 주치의가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추락하는 비행기 안에서 신을 찾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대학 3~4학년 무렵에 향후 진로나 개인적인 고민들 때문에 밤낮을 가릴 것 없이 눈물로 기도할 때가 많았는데, 대학원 때부터 최근까지 5년 넘는 시간 동안 모든 일이 순탄하게 흘러갔고 순탄한 만큼 철저하게 무신론자적인 생활을 살아 온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다시 하나님을 찾고 있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설령 내일 죽는다 하더라도 후회가 없다고 느낄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고통을 통해 본의 아니게 자신과 조금 더 가까워지게 된 것 같다. 해외 자장구 여행을 가느냐 안 가느냐, ABC 트래킹을 가느냐 안 가느냐 같은 건 사실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던 것 같다. 몸이 보내는 적색 신호에 민감해진 것처럼 내면의 목소리를 잘 듣고 그것이 가리키는 방향에 매진할 준비를 해야 하는 시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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