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한 상황이 닥치면 사람은 책에 나오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책에서 읽은 사람들은 찾지도 못했고 보지도 못했다. 다 반대였다. 사람은 영웅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파멸의 상인이다. 크고 작은 파멸을 사고 판다. (중략) 악의 메커니즘은 세상이 파멸해도 돌아갈 것이다. 내가 알게 된 사실이다. 지금과 똑같이 서로 헐뜯고, 상사 앞에서 아부하고, 집에 있는 텔레비전과 모피 코트를 지켜낼 것이다.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사람은 지금과 똑같을 것이다. 영원히...
체르노빌의 목소리, 초판 4쇄, 173-174쪽.
핵폭발의 위험이 존재하던 때가 있었소. 용해된 우라늄과 흑연이 지하수에 들어가지 않도록 원자로 아래에서 지하수를 빼내야 했소. 우라늄과 흑연이 물과 섞이면 임계질량이 형성되기 때문이었소. 폭발력이 3~5메가톤쯤 됐을 것이오. 키예프와 민스크만 초토화될 뿐 아니라, 거의 유럽 전체가 사람이 살지 못하는 땅으로 변했을 것이오. 상상이 되오? 전 유럽적 재앙. 그 지하수에 들어가 배수 밸브의 꼭지를 틀 사람을 모집했소. 자동차, 집, 별장과 가족의 생활비를 평생 지급하겠다고 약속했소. 자원자를 구했소. 그랬더니 나타났소! 청년들이 잠수해, 그것도 여러 번 잠수해서 밸브를 열고 닫았지만, 팀 전체에 7천 루블만 지급했소. 자동차와 집에 대한 약속은 잊어버린 거요. 물론 그런 것 때문에 거기에 들어간 것은 아니오! 물질적인 것 때문은 아니오. 물질은 가장 작은 이유였소. 우리 사람들은 그렇게 쉽지 않소. 겉으로 봐서 이해하기 쉬운 사람이 아니오.
같은 책, 239쪽.
자기 텔레비전과 모피 코트를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의 생명은 안중에도 없는 게 이해가 되는가? 들어가면 얼마 안 가 죽을 게 뻔한 원자로로 들어가는 게 이해가 되는가? 피폭 당한 터전에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제 때 캐내지 못한 감자가 썪어가는 게 방사능보다 더 두렵다고 말하는 게 이해가 되는가? 세 경우 모두 이해가 안 됐다. 그건 내가 피폭된 체르노빌 현장에 있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을 이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이해가 안 되지만 왜 계속 읽고 있는 것일까. 그들의 목소리에는 알 수 없는 힘이 있다. 경청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이해할 순 없지만 그저 묵묵히 듣게 된다. 듣다가 슬퍼서 한 템포 쉬어 가야 할 때가 많았다. 예를 들어 피폭으로 인해 죽음이 가까워진 남편을 간호하는 임신한 새댁의 목소리. 사랑하는 게 왜 죄가 되는 것이냐고. 그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힘들게 읽었다.
인터뷰이 중에 이 책을 읽은 사람이 있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혹은 체르노빌 피폭 당사자지만 인터뷰이는 아니었던 사람이 이 책을 본다면 어떤 기분일까.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그런 후일담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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