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논문을 대중서로 편집해서 낸 책이다. 왜 잘 사는 집 아이들이 공부를 더 잘하나? 돈이나 인맥을 비롯해서 사교육에 투자할 수 있는 자원이 많고 엄마가 적극적으로 아이 학업에 관여하니까 그런 거다 라고 상식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저자는 여기서 질문을 한 번 더 들어간다. 자원이 많은 것은 둘째치더라도 왜 잘 사는 집 엄마가 상대적으로 덜 잘 사는 집 엄마보다 적극적으로 아이 학업에 관여하는가 라고 질문한다. 계급에 따라 부모 관여의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를 따지는 것이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두 가지 이유다. 하나는 계급 하락에 대한 위기감이, 계급적으로 낮은 위치에서보다 높은 위치에서 더 심하다. 이것이 동기가 되어 다음 세대에서도 최소한 현재 상태는 유지시키고자 아이 교육에 매진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합리적인 선택자로서의 개인과 관련된다. 교육에 투자했을 때 이득을 볼 가능성이 얼마인지를 따지게 된다는 것이다. 똑같이 교육에 1을 투자하더라도 교육에 쏟아부을 수 있는 경제적 자원 등이 적은 경우보다 많은 경우가 상대적인 손실감이 덜 할 것이다. 손실감이 덜 한 쪽, 즉 계급적으로 높은 포지션에 있는 집안이 투자에서 손을 뗄 가능성이 적은 것은 당연해 보인다. 초반에 투자 대비 손실이 좀 있다 하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장기적인 투자를 할 수 있으며 장기적인 투자는 아이의 학업성취도가 향상될 가능성을 증가시킨다. 반면 계급적으로 낮은 포지션에 있는 집안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없는 자원 끌어다가 교육에 투자했는데 아이의 학업 퍼포먼스가 좋지 않다면 투자를 철회하고 교육 이외의 다른 경로를 모색해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늘 예외는 있는 법인데, 장기적인 투자에도 불구하고 학업성취도가 낮은 경우나 아이 교육에 투자를 많이 할 수 있는 집안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학업성취도가 높게 유지되는 경우다. 이런 경우는 아이의 성격이나 동기 수준이 영향을 미친다고 봐야 한다. 지고는 못 사는 경쟁심이 강한 성격이라든지 집안살림이 한 번 크게 망해서 대오각성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된 경우라든지.
이쯤에서 개인적인 얘기를 좀 하자면, 나는 경쟁을 좋아하지 않으며 그런 상황이 되면 차라리 먼저 백기 들고 후퇴하는 편에 가깝다. 하지만 어머니가 밤새도록 일을 해도 너무나 가난한 상황을 면할 수 없는 그런 처지였기 때문에 어린 마음에도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저렇게 고생하는데 공부라도 열심히 해야겠다' 뭐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지. 하지만 일주일 정도 벼락치기 해도 반에서 2, 3 등은 할 수 있었던 중학교 생활과 달리 고등학교에서는 그런 방법이 통하지 않았다. 학원에서의 선행학습 등 아이 학습에 엄마가 많이 관여하는 친구들을 따라갈 수 없었다. 그래서 반에서 10등 정도로 밀려났던 것 같다. 거기다가 사춘기가 뒤늦게 와서 음악하겠다고 난리를 치기도 하고 공부에 흥미를 잃었던 시기가 대입 수능을 바라보며 정신을 몰두해야 할 고2 이후의 시기였다. 결국 재수를 했고, 재수할 때도 대입 전형에 맞춰서 전략을 세워서 공부하기보다 그런 정보를 얻을 생각조차 못하고 막무가내로 공부했다. (but 여름부터는 공부에서 손 놓음..) 결과적으로 내가 들어가게 된 과는 수학 점수를 안 보는 과였는데, 재수할 때는 오르지 않는 수학 점수를 만회해 보고자 수학에 시간을 쏟아붓기도 했다.
부모의 관여가 있었더라면 조금 더 전략적으로 공부해서 더 좋은 학벌의 대학을 갔을지도 모른다.(내가 다닌 대학교는 과가 아닌 학부 단위로 뽑았는데 학부 2등으로 들어갔다. 자랑질.. ㅎ) 하지만 어머니도 중학교밖에 나오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런 쪽에는 무지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상황에서 개인의 동기 수준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치열한 상황 속에서라면 당시의 내 실력으로 인서울은 불가능이다.
얘기가 샜는데, 어쨌든 이 책에는 부모나 학생 본인과의 심층 인터뷰 자료들이 적재적소에 실려 있어서 지루하지가 않다. 자신은 어떤 경우에 속할지 생각해 보며 읽으면 재미있을 것이다. 미래의 내 아이 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서도 질문을 하게 만드는 흥미로운 책이다. 박사 논문을 이렇게 재미있게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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