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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심리학/상담 및 심리치료

국가 심리서비스 기관에서의 상담료는 왜 무료인가?

by 오송인 2018.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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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하고 있는 청소년상담복지센터나 구마다 설치된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의 상담은 무료입니다. 심지어 검사 비용도 무료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가에서 운영되는 상담 센터들에서 이렇게 무료 지원을 하는 것은 애석한 일입니다. 상담이 정말 필요하고 검사도 필요한데 가정 형편이 정말 좋지 않은 경우라면 몰라도, 내담자의 경제적 사정에 따라 돈을 차등하여 받는 것도 아니고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신청만 하면 무료입니다. 


이런 기관에서 상담하는 선생님들은 최소 석사 이상의 학력을 지녔지만, 무료 상담을 하는 기관에서 상담자들에게 좋은 대우를 해줄 리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기관들은 직원이 자주 바뀌는 게 태반입니다. 상담을 잘 받고 있다가도 상담자가 일을 그만 두면 그대로 종결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런 기관들이 운영되는 형태를 보면 행복주택과 비슷합니다. 보여주기 사업이라는 것이죠. 일은 벌려 놓되 예산 지원은 제대로 하지 않습니다. 하더라도 정말 기관이 망하지 않을 정도로만 박하게 지원 한다는 것이죠. 나라에서 기관에 임대료 지원을 안 해줘서 기관이 공중분해 되는 경우도 봤습니다. 직원들은 하루 아침에 실직자가 되는 거고 기관에서 치료 받고 있던 사람들은... 


어차피 예산 지원을 충분히 못 해줄 바에야 상담이나 검사에 대한 비용이라도 받을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보통 상담료가 한 회기에 7만에서 10만 원 정도로 비싼 편이기 때문에 그보다는 훨씬 낮게 책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가 기관인데 일반 사설 상담 센터와 비슷한 상담료를 책정해 놓으면 그 기관은 아무도 찾지 않는 기관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건강보험료 납입 수준에 따라 누구는 무료 누구는 1만 원 누구는 3만 원 정도로 차등을 두는 것도 방법이겠습니다.(제가 나중에 센터 개소하면 이런 식으로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지 않을 수도 있구요.)


오천 원을 받든 만 원을 받든 돈을 받게 되면 우선 1. 상담이 펑크날 가능성을 줄일 수 있습니다. 무료 상담의 폐해는 내담자가 상담을 당일에 취소해 버린다든지 내담자가 여러 이유를 대며 노쇼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돈을 상담 전에 오천 원만 받아도 노쇼 가능성은 눈에 띄게 줄어들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돈 낸 만큼 그 서비스 가치를 평가하게 마련인바 더 많은 돈을 미리 받으면 좋겠다마는, 현 상황에서 그건 실질적으로 어려울 것입니다. 돈을 조금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2. 상담이 마땅히 돈을 지불해야 하는 서비스라는 인식을 정착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노쇼 방지보다 이게 더 중요합니다. 예산에 크게 보탬이 되는 것은 아니겠으나, 3. 내담자가 사전 연락도 없이 노쇼하더라도 내담자로부터 미리 받은 돈을 상담자에게 줄 수도 있을 테구요. 제가 일하는 센터는 내담자가 노쇼할 때, 내담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상담실에 앉아 있던 상담자에게 페이가 지불되지 않습니다. 다른 지역 센터도 대동소이할 것 같습니다. 


상담료를 무료로 정해 놓은 것은 아무래도 실적 때문인 것 같습니다. 쥐꼬리만한 예산을 지원해 주면서도 나라에서는 늘 왜 이것밖에 실적이 안 되느냐고 다그칠 때가 많다는 것이죠. 생각만 해도 화딱지가.. 엑셀 표에 숫자로 환산되는 실적이 매우 중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상담 실적뿐만 아니라 '복지' 실적이 중요해집니다. 높으신 분들 모셔 놓고 사진 찍기 좋은, 혹은 높으신 분들에게 보여주기 좋은 복지 사업들을 여러 개 벌리게 됩니다. 약간 과장하면, 상담 10회기와 복지 행사 하루 해서 열 명 채운 것이 동일한 실적으로 기록됩니다. 


심리서비스를 수치로 환산하는 데 목을 맬 수밖에 없는 구조는 미국에서 보험회사들이 '경험에 근거한 치료'를 하고 치료 회기수를 줄이라고 압박하는 생리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예산 지원하는 나라의 실무자들이나 미국 보험회사들이나 사람은 안중에 없고 투자 대비 효율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문재인이 치매 사업에는 열을 올리면서도 정작 기존에 설치돼 있는 심리지원 서비스 기관들에 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CBT 시행 주체 선정과 관련하여 보건복지부 실무자들이 매우 후지고 편파적인 사고를 보여주었는데, 수장이 현명해도 실무자들이 어떤 마인드를 지녔는지에 따라 정책이 본래 방향과 달리 산으로 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심리지원 서비스에 대한 실무자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것보다 상담 서비스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변화시키려 노력하는 것이 더 빠르고 효과적일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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