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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심리학/상담 및 심리치료

심리치료에서의 평가 과정: 왜 지금 왔고 어떤 증상을 경험하고 있으며 어디서부터 심리치료를 시작해야 하는가?

by 오송인 2018.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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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평가나 심리치료 장면에서는 어떻게 해서 병원 혹은 상담실까지 오게 됐는지 내담자에게 직접 물어보게 됩니다. 내담자나 환자의 입으로 직접 들어보는 것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문제를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자발적으로 오게 된 경우는 대개 숙고전(precontemplation) 단계에 있어서 자신은 별 문제가 없다고 말하거나 대답 자체를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기 쉽죠.


상담소는 차치하더라도 최소한 정신과까지 왔을 때는 별 문제가 없다는 환자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정신과에 와서 나는 별 문제가 없는 사람이다 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음을 반증하는 경우가 대다수죠.


이런 경우라면 이 환자를 정신과로 오게 한 사람(ex 부모, 학교 관계자 등)의 말을 들어보고, 환자 면담도 지속하고, 심리평가도 해보면서 증상의 역사에 관한 가설을 세우게 됩니다.


증상의 기원과 유지 요인, 그리고 현재 정신과 내원을 야기한 요인 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는 것이죠.


상담소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상담 장면에서는 셋팅에 따라서 숙고전 단계보다 숙고 단계에 위치한 문제를 지닌 사람이 더 많이 오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ex 대학교 부설 상담소).


숙고 단계에 위치한 사람은 자신이 문제 상황에 봉착했음을 알지만, 그 문제가 개선될 수 있는 것인지에 관해 답답함을 느끼며 상담실을 찾기 쉬울 것입니다.


흔한 예로, '자존감이 너무 낮아서 사람 만날 때마다 불안해져요'라고 말하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내담자가 호소하는 주요 증상은 불안이고 내담자 스스로가 불안을 야기하는 원인으로 자존감을 꼽고 있습니다.


그럼 상담자는 다시 한 번 묻게 되죠. '그런데 어떻게 지금 상담소를 찾게 되셨나요?', '혹시 지금 상담소를 찾게 된 이유를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남자친구를 사귀게 됐어요. 남친이 제게 너무 잘해주는데도 이 사람이 곧 내 못난 모습을 알게 되고 떠나가버리는 건 아닌지 불안해요. 데이트 하면 즐거운데 즐거우면서도 불안하고 우울해요.'


가상의 답변인데요. 왜 지금 상담소를 찾게 됐는지 이유가 나왔죠. 이 내담자는 남자친구가 떠나갈까봐 두렵습니다. 내담자가 가장 염려하는 부분이죠.


그런데 내담자의 염려에는 인지적 왜곡이 들어가 있습니다. the fortune teller error라고 하는데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갈 것이라고 상상하고 그 상상이 마치 진실인 것처럼 믿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힘들어지는 상황인 거죠. 이 내담자가 대학생이라면 10회기 정도의 인지치료로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내담자도 쉽게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는 없죠. 구체성이 빠진 대략적 이야기에서나 가능한 혹은 대학원에서 읽는 상담 교과서에서나 가능한 해피엔딩입니다. ㅎ


조금 더 복잡한 케이스를 가정해 봅시다. 약혼자가 다른 여자 차 수리하러 가는 데 동행하는 등 이래저래 약혼녀 입장에서 볼 때 몹쓸 행동을 많이 합니다. 약혼녀는 질투심 때문에 상담실을 찾습니다. 왜 지금 왔느냐? 질투심에 불타버릴 것 같은데 약혼자에게 다른 여자 만나지 말라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이 어렵고, 원인을 자기에게로 돌려 자기 자존감이 낮아서 과잉 반응하게 되는 것인가 생각합니다. 질투심 때문에 고통스러운데 약혼자가 죽일놈인지 아니면 자기가 문제인지 원인이 불분명하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몰라서 상담소를 찾게 됐다는 것이죠.


현재 질투심 말고 또 어떤 어려움을 경험하는지 상담자가 탐색합니다. 내담자는 수면문제, 피로감, 주의집중의 어려움, 일의 효율 저하, 짜증 증가 등 다양한 증상을 말합니다. 그리고 밥은 잘 먹는지 물어봅니다. 잠은 잘 자는지,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반드시 물어봐야 하거든요. 무지방 우유 오백미리와 삶은 달걀 2~3개, 바나나 1~2개로 세 끼 식사를 대체한다고 말합니다. 다이어트 중인데 덜 먹는 것으로는 모자라서 하루에 두 번 헬스장을 찾는다고 얘기합니다. 상담자가 보기에 이 내담자는 상당히 마른 편에 가깝습니다.


상담자는 신경성 식욕부진증(Anorexia nervosa)과 주요우울장애의 가능성을 동시에 고려하기 시작합니다. 내담자의 주호소는 질투심이고 내담자가 변화되길 바라는 부분도 이 질투심이지만, 상담자는 섭식장애와 우울장애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 사례개념화를 하기 시작합니다. 내담자가 말한 문제의 내외부 원인이 모두 타당할 수 있겠다고 어렴풋하게 생각합니다.


내담자가 낮은 자존감이라고 표현했듯이 자기 자신에 대해 좋게 느끼기 어려운 마음의 렌즈를 쓴 채 자기를 바라봤을 수도 있고, 실제로 비판이나 거절 등의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해 왔을 수 있고, 이런 상황에서 최근에 약혼까지 진행된 남자 역시 다른 사람과 안정적인 친밀감을 형성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사람이었을 수 있다는 것이죠.


3~4회기에 걸쳐 섭식 문제가 내담자의 일상을 힘들게 하는 주원인일 수 있다는 데 대한 내담자와의 합의가 이루어져 이 부분을 최우선의 상담목표로 잡고 상담이 전개됩니다. 상담자는 이 상담이 20회기 이상 진행되는 것이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지각의 기원과 유지요인 등에 대한 가설을 보다 생생하게 짜려고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사족으로, '낮은 자존감'이라는 단어는 아무 의미 없고 치료적인 쓸모도 없는 말이지만 낮은 자존감이 어떻게 해서 생기게 되었을까 구체적으로 살을 입히는 과정은 치료적으로 의미가 있습니다.) 상담이 오래 진행되고 사례개념화(case formulation)의 거듭된 수정을 통해 내담자 이해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상담의 목표도 보다 근본적인 수준으로 변화하게 되겠죠.


자발적으로 정신과나 상담소를 찾은 사람인 경우, 이 사람이 왜 지금 치료를 찾게 됐는지 그 이유를 잘 들어봐야 합니다. 가려운 부분을 긁어줘야 상담에 또 오겠죠. 하지만 대체로 환자나 내담자가 호소하는 일차적인 문제는 표면적이거나 부차적으로 파생된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상담 받으러 갔을 때 제일 처음 얘기했던 제 문제도 상담이 40회기가 넘어가면서는 논의의 중심에서 멀어졌지요. 아니 이미 5회기 넘어가면서부터 논의의 중심에서 멀어졌던 것 같습니다. 그게 제가 변화시키고자 하는 주요한 문제는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상담자가 제 아무리 사례개념화를 잘하고 내담자 파악을 잘한다 하더라도 내담자의 의식이 거기까지 따라오지 못했다면 내담자 스텝에 맞추어서 상담을 진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상담은 상담자를 위한 상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내담자가 밥 먹는 것에는 아무 문제가 없고 헬스장 가서 날씬해지고 건강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면 섭식문제는 전략적으로 뒤로 제껴 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 건강의 위협이 초래될 정도로 밥 먹는 데 문제가 있는데 이걸 직시를 못 하는 것은 그만큼 당신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일 뿐이다 라고 말한다면 그 내담자가 상담자를 신뢰할까요? 욕이나 안 하면 다행이겠습니다.


인지행동치료에서 말하는 협력적 경험주의에서 방점은 협력에 있습니다 협력이 일단 되고 내담자가 상담자를 신뢰해야 그 다음 수순인 경험주의 즉 상담자의 사례개념화가 타당한지 가설 검증해보는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죠. 치료효과의 절반은 이 협력, 즉 라포형성이 좌지우지 합니다.


왜 지금 상담소를 찾았는지 들었고, 내담자에게 현재 무엇이 문제인지 잘 들었고, 어떻게 내담자를 도와야 할지 감을 잡았다 하더라도, 무엇에 대해 작업을 해야 하는지 최종 결정하는 것은 상담자가 아니라 내담자 아닐까 합니다. 작업을 해야 하는 부분에 대한 시야를 좀 더 확장할 수 있도록 상담자가 촉진할 수는 있을 테지만 채근하면 될 일도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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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및 심리치료의 기본 기법 제2장_ 내담자에 대한 평가



스팀잇에 동시 게재된 글입니다.

url: https://steemit.com/kr/@slowdive14/6mvy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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