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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심리학/상담 및 심리치료

내담자에게 해가 될 것 같으면 말하지 말라

by 오송인 2018.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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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정직성이 점진적으로 심화되는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심리치료의 핵심이라고 낸시 맥윌리엄스가 말했다. 그런데 솔직하게 말한다며 상대에게 상처를 줄 때가 종종 있다. 


여기서 말하는 심리적 정직성이란 것은 생각이나 감정을 모두 표현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상담자의 반응이 내담자에게 해가 될 거라고 느낀다면 표현하지 않는 게 낫다. 


때로는 생각과 반응이 불일치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내담자가 다른 사람에게 여러모로 너무 의존적이고 책임감 없다고 느껴도 이런 것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큰 해악이 된다. 심리를 배워서 심리를 잘못 사용하는 예이다. 


이런 특성이 내담자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내담자가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언젠가 이런 의존성을 직면시키는 것이 필요하지만, 당장은 반응하지 않는 것이 낫다. 


직면의 시점이 중요하고(라포가 충분히 강해야) 직면의 방식이 지지적이어야 한다. 상담자가 의존성에 대해 언급하는 자신의 동기와 이유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이런 말을 듣고 내담자가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도 충분히 들어야 한다. 상담자의 심리적 정직성이란 것은 이런 면에서 본다면, 상담자로서의 나의 생각과 행동과 느낌의 표현이 때때로 일치하지 않음을 자각하고 이런 불일치를 적절한 시점에 지지적인 방식으로 전달하는 능력일 것이다.  


상담에서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주로 엄마 아빠, 혹은 배우자, 자식)를 비난하는 경우가 흔하다. 책임 소재가 모두 그 누군가에게 있다고 말한다. 이럴 때 마음 속으로 드는 생각은 '그러니까 치료 받으러 온 거네'이다. 그 내담자를 다시 안 보고 싶으면 '그렇게 전적으로 책임을 돌리는 것 자체가 문제고 치료가 필요하다는 증거다'라고 말하면 된다. 내담자가 그랬듯이 상담자도 타인 비난하는 것은 쉽다. 그게 내담자라 하더라도. 


사실 그렇게 비난하고 있을 때 내담자의 마음 한켠에는 '나도 조금은 문제가 있을지 몰라'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의식적으로 이런 생각이 안 들 수 있어도, 신경증에 속한다면 뭔가 타인을 비난하면서도 찝찝한 느낌을 마음 한구석에 지닐 확률이 높다(성격장애나 정신병에서는 어려울 수 있다). 이 찝찝한 느낌이 커지면 내담자 머릿속에 물음표가 생긴다. '나는 대체 왜 계속 가족(친구 혹은 기타 등등의 다른 누군가)과 부딪히는 걸까..' 


이 물음표가 생기고 그게 입밖으로 나오면 그 때가 상담자가 진실해질 순간이다. 계속 비난하다 보면 내 비난이 지나친 것은 아닌지 점검하는 시간이 오게 마련이다. 마음의 여유가 좀 생기는 그 시점이 상담자가 자기노출할 시점이다. 


솔직하게 여과없이 말하는 게 아니라 지지적으로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 이런 게 내게는 꽤 어렵게 느껴지지만 아무튼 교과서적으로는 그렇다. '그렇게 다른 사람 비난을 계속하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아 힘들다. 무력하게 느껴진다. 다른 사람과 계속 부딪히는 데 자신이 기여하는 부분은 얼마나 되는지? 우리가 얘기 나눠봐야 할 것은 그 부분이 아닌가 싶다. 내 얘기가 어떻게 다가오나?' 나의 답안이다. 여러분의 답안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솔직하게 자기노출하는 것이 해가 될 것 같다면, 땀구멍을 통해서라도 드러날 것은 드러난다 한들, 아무말도 안 하는 게 낫다.


ref)

상담 및 심리치료의 기본기법 제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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