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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서평

이동진 독서법

by 오송인 2019.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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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 통증으로 고생하던 2016년 봄 무렵에 빨간책방을 자주 들었습니다. 꽃들이 만발하던 3년 전 이맘 때 운동요법 삼아 뒷산을 천천히 거닐며 빨간책방을 3개월 정도 집중적으로 들었는데, 그 때 이동진이라는 사람에게 흠뻑 취해 버렸습니다.

 

약간 탁한 이 사람의 목소리도 좋고 무엇보다 청산유수 같은 화법과 종종 구사하는 개그가 좋습니다(빨간책방 고정 게스트 김중혁 소설가와의 만담도 딱 제 코드네요 ㅎ). 언어적인 능력이 정말 탁월한 사람으로 여겨지는데, 아마 서울대 갈 정도의 타고난 지능도 지능이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책덕후였던 것이 이 사람의 언어적 능력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이 책에 보면 남들 프라모델에 눈독 들이던 초딩 시절에 자기는 책에 더 관심이 갔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 때도 말을 워낙 잘해서 선생님이 40분 동안 읽었던 책에 관해 급우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따로 마련해 줄 정도였다고 하니 말 다했죠. 형과 누나의 영향을 받아서 중학생 때부터 알베르 까뮈 같은 실존주의 관련 책을 많이 봤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현재 서가에 17000권 정도의 책이 있다고 하니 얼마나 책 사랑이 심한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사람에게 책 소개 팟캐스트인 빨간책방은 일이 아니라 일상 그 자체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동진이 책 읽기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는 것이 재미라고 하는데 저도 동감합니다. 뭐든 재미가 없으면 지속하기 어렵죠. 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일이 항상 재미있을 수야 없겠지만 때때로 재미 포인트가 있어야 그 일을 지속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동진이 빨간책방이라는 팟캐스트를 5년 넘게 지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에서 책의 재미가 차지하는 비중도 상당할 것 같습니다.

 

약속 시간에 먼저 도착하게 되는 경우나 출퇴근할 때, 심지어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이동진입니다. 욕조에 몸을 담그고 몇 시간 동안 책을 읽는 것이 이 사람 삶의 중요한 부분 중 하나라고 합니다. 늘 책이 손에 들려 있을 것 같은 사람이 이동진인데, 저 역시 그에 비할 바는 못 되겠지만 대학생이 된 이후로는 가방에 늘 책 한 권 가지고 다닐 때가 많고, 요즘에는 이북리더기에 여러 권을 넣어 틈틈이 책을 읽습니다. 이동진 독서법도 금요일 출퇴근 길과 점심시간 쉬는 시간 등을 활용하여 하루만에 다 읽었습니다. 얇고 잘 읽히는 책이기도 하지만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하면 책 한 권 끝내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 것도 있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취미 중 하나가 등산인데 등산처럼 책이라는 취미는 가성비가 좋습니다. 돈이 별로 안 드는데 반해 얻는 즐거움이 크죠. 머리를 계속 써야 하니 뇌의 건강도 얻습니다. 이런 가성비 좋은 취미가 20대 이후로 습관이 되어 제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낮 동안에 일하느라 힘들었으니까 오늘 저녁은 한 번도 안 가본 곳에 간다거나 그런 게 우리는 행복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습관 부분에서 재미를 느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머지는 오히려 쩔쩔매는 시간이에요.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거죠. 그런데 패턴화되어 있는, 습관화된 부분이 행복한 사람이 있다고 해보세요. 그러면 그 인생은 너무 행복한 거죠.

 

좋은 습관이 좋은 삶을 만든다는 게 아마 이동진과 제가 공유하는 철학일 텐데, 책 읽기처럼 좋은 습관이 제 삶에 어떻게 자리잡게 되었는지 곰곰 생각해 보면, 세상을 알고 싶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알고 싶다는 강렬한 바람이 스무 살 이후로 지속되어 책 읽기 습관으로까지 이어진 것 같습니다. 호기심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책을 펼치다 보면 더 많은 질문이 이어지고 그래서 그 질문에 대한 일말의 답이라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책을 찾아 읽다 보니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책이 답을 주진 않지만 "일종의 방향성이나 지향성 같은 것을" 준다는 작가의 말에 동의합니다. 대단한 책을 읽어야 그런 게 생기는 게 아니라 어떤 시 한 구절에 어떤 수필 한 문장에 내 눈이 사로잡히는 경험이 반복되며 내 시선이 닿아야 할 방향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는 것에 가깝지 않을까요. 20대 초중반에는 푸코나 레비나스처럼 어려운 철학책을 거의 이해하지 못 한 상태에서 게걸스럽게 읽어댔는데 그런 경험들도 지금 제 정체성의 어딘가에서 앞으로 내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한 촉으로 작용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편 책을 읽은 후에 글이나 내뱉는 말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임에도 이동진의 입을 통해 들으니 새롭습니다. 책을 한 번 읽고 기억이 안 나는 것이 당연한데 부족한 기억력을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글로 적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꼭 장문이 아니어도 SNS 등에 서너 문장 정도로 기록하는 것이 지식을 머릿속에 체계화하는 데 상당히 중요해 보입니다. 처음부터 글 잘 쓰는 사람은 없지요. 읽고 생각하고 쓰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글 실력도 느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전부터 블로그를 하긴 했지만 독서 기록을 제대로 남긴 게 저도 얼마 되지 않아 아쉬운 부분입니다. 지금부터라도 한 권 한 권 기록해 나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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