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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SM-5 Insanely Simplified / Steven Buser & Leonard Cruz
    clinical psychology/심리평가 2019.07.16 18:09

    150쪽 정도 되는 비교적 얇은 원서인데 영어공부용으로 읽었습니다. 저자는 융 이론을 지향하는 정신과 의사입니다.


    DSM-5는 미국 정신의학협회에서 만든 정신장애 진단용 편람입니다. 각각의 정신장애를 진단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알려면 DSM-5를 봐야 하는데, 분량이 방대하여 전공자라 하더라도 초심자는 길을 잃기 쉽습니다.


    심리평가를 한 후 잠정적 진단명을 보고서에 적을 때 DSM-5 위주로 적습니다. 가끔 ICD-10도 쓰지만요.


    의사는 ICD-10만을 사용합니다. 정신장애는 F코드로 시작하고 보험청구시에도 이 코드가 활용되죠. DSM-5만큼 방대하진 않다고 느껴지지만 ICD-10도 적응하려면 시간이 좀 걸립니다.


    석사 학위 취득 후에 임상 수련을 위한 필기 시험과 면접을 보게 되는데 이 때 DSM-5 관련 문제가 많이 나와서 죽기살기로 외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게 억지로 외운다고 외울 수 있는 분량이 아닌지라 실의에 빠지기 쉬운데요.


    국내 번역된 책 중에 DSM-5: 임상가를 위한 진단지침(원제: DSM-5 made easy)이 비교적 입문용으로 쓸 만하지만, 이 책도 사실 너무 빡셉니다. 좀 더 가벼운 책 없을까 찾아보다가 이 책을 발견했습니다.


    이 책에는 DSM-5 코드와 함께 ICD-10 코드가 병기돼 있기 때문에 데스크 레퍼런스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쓸 만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은 DSM-5 Summary Pages인데, 코드 병기뿐만 아니라 각각의 장애가 지닌 핵심을 간명하게 설명해 놓았습니다. 과도하게 단순화시켰기 때문에 주의를 요한다고 저자가 강조하고 있지만, DSM-5나 ICD-10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정말 유용한 자료로 여겨집니다. 임상심리전문가들이 각 장애의 핵심 특성을 다시금 리마인드할 때도 도움이 됩니다.


    또한 융 이론을 지향하는 사람답게 저자는 정상과 비정상을 이분법적으로 가르는 방식에 의문을 품고 있고, DSM-IV에서 DSM-5로 넘어오면서 스펙트럼상에서 normal-abnormal 평가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증대된 것을 환영하는 입장입니다. 정상적인 기능의 밸런스가 무너져서 극단으로 치우치게 될수록 abnormality가 뚜렷해지는 것이라고 보는 입장은 제가 늘 강조하듯이 abnormality에도 정상적인 기능이 내재돼 있다는 관점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기조를 토대로 DSM-5의 주요 장애를 8가지 범주로 엮어냈다는 것이 이 저자의 독창적인 부분입니다. 8가지 범주 각각의 스펙트럼, 즉 연속선상에서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에 과도하게 주의가 할당되는 것은 OCD(강박장애)인 반면 모든 영역에서 "no focusing ability"가 나타나는 것은 ADHD입니다. 정상은 OCD와 ADHD 사이의 중간 어디쯤이 되는 것이고요. 사실 ADHD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ex. 온라인 게임)에 몰두할 땐 굉장한 집중력을 보인다는 점에서 이러한 단순화가 갖는 맹점이 있지만 어쨌든 이런 쪽으로 개념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개념 형성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성격장애를 타인 비난이 두드러지는 타입과 자기 비난이 두드러지는 타입으로 나누는 것도 꽤 쓸모 있다고 보고요. 전자의 예로 반사회성 성격장애를 들 수 있겠고 후자의 예로는 우울성 성격이나 회피성 성격을 들 수 있겠네요. 저자가 책 본문에서 이렇게 성격을 직접 매칭시키진 않습니다. 대신 Neurotic vs. Obnoxious라는 이름의 양 극단으로 성격장애 스펙트럼을 설명합니다. obnoxious를 어떻게 번역하면 좋을지 고민이 되지만 이런 분류도 어쨌든 맹점이 있습니다. 정신분석적 흐름에서 신경증(neurosis)을 말할 때는 정신병(psychosis)의 전 단계를 의미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신경증-경계선-정신병의 연속선이라는 큰 맥락에서 말입니다.). 정신병의 전 단계로서의 신경증에는 자기비난이 두드러지는 사람뿐만 아니라 타인 비난이 두드러지는 사람 또한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더 엄밀히 말하면 신경증은 이 둘이 공존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일례로, 신경증 수준의 자기애성 성격을 지닌 사람은 타인 비난을 많이 하지만 그렇다고 자기비난이 전혀 없다고 볼 수 없는 게 수치심이 이네들의 주요 정서이기 때문입니다. 수치심은 자기 존재 자체에 대한 비판의 결과죠.


    과도한 단순화의 맹점을 갖지만 이런 독창적인 구분을 통해 초심자 입문을 용이하게 한다는 점에서 저는 이 책에 아주 후한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제가 초심자용 원서를 못 찾은 걸 수도 있지만, 아마 여지껏 이런 초심자 프랜들리한 책은 없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 책의 후반부에 스펙트럼의 양 극단을 통합하는 것이 자기초월로 가는 길이라는 식의 융 학파적 언급이 있는데, 이런 추상적인 얘기는 좋아하지 않아 skip하다시피 했습니다. 잘 가다가 삼천포로 빠지는 느낌입니다. 아무튼 이 책은 영어도 쉽고 내용도 쉽고, 내용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그렸다는 삽화도 재미있습니다. 기술적 정신병리를 개념 잡는 데 도움 됩니다. 추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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