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시점은 기억 안 나는데 아마도 2011년 초 혹은 2010년 말에 피터 포나기가 서울에 방한해서 강연한 적이 있습니다. 대학원 다닐 때였는데 그 때 애착과 심리치료를 임상심리전문가 선생님과 읽던 가운데 피터 포나기를 알게 돼 무작정 강연장을 찾았습니다. 동시 통역이 되고 있었는데 지각해서 통역이 있는 줄 모르고 쌩귀로 들었습니다. 물론 거의 들리지 않았고 PPT 내용 보며 아주 대략적인 내용만 유추할 뿐이었습니다.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 애착과 심리치료를 원서로 읽다가 Fonagy 챕터를 보니 당시 기억도 나고 괜히 반갑네요.
이번 챕터의 내용은 정신화와 관련 있습니다. 정신화는 피터 포나기가 마음이론을 애착이론과 접목시켜서 치료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변형시키는 과정에서 탄생한 개념입니다.
제가 이해한 정신화는 자기 및 타인의 생각이나 감정을 성찰하는 능력입니다. 생각이나 감정에 매몰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과 감정을 약간 거리두고 성찰하는 능력으로 이해했습니다(reflective function). 책에 나와 있는 예를 들자면, 아버지가 자신에게 적대감이 있었다기보다 그가 지닌 우울증이 자신에 대한 rejection을 야기했을지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는 딸의 능력입니다. 행동 그 자체를 통해 아버지의 감정을 추론하는 게 아니라 아버지의 내적 경험을 통해 아버지가 보인 행동을 이해하려는 노력이죠.
이런 강력한 성찰 능력이 애착 유형의 대물림을 막을 수 있는 보호요인입니다.
Clearly, the strength of the capacity to mentalize was a protective factor that buffered the impact of difficult early experience and diminished the probability of the intergenerational transmission of insecurity. 46쪽.
정신화는 부모-자녀 초기 상호작용, 즉 애착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포나기에 따르면 부모가 자녀의 감정을 언어/비언어적 방법 모두를 통해 적절히 반영해주고 조절해줄 때 자녀의 안정적인 애착 능력과 함께 정신화 능력이 공고해집니다.
정서적 반영이 거의 되지 않을 때 psychic equivalence mode가 되는데, 내적 경험과 외부 현실을 동일시하기 쉬운 상태로 이해했습니다(borderline pathology). 정서적 반영이 되지만 아이가 경험하는 것과 잘 맞지 않을 때는 pretend mode가 됩니다. 공허감을 느끼고 거짓자기를 내세우기 쉬운 상태로 이해했습니다(narcissistic pathology).
정서적 반영과 조절의 토대라 할 수 있는 부모의 정신화 능력은 제가 이해하기로는 영유아를 자신과는 분리된 고유의 인격체로 대하는 것입니다. 말 못 하는 아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느낄 수 있고 생각할 수 있고 소망할 수 있는 동등한 인격체로 보는 것이며, 아이는 부모의 이러한 지각 속에서 자기에 대한 통합된 감각을 발달시킬 수 있게 됩니다. 통합된 자기라 할 만한 어떤 것이 출현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앞 챕터에서 메리 메인은 내가 믿는 그 진실이 타인에게는 진실이 아닐 수도 있음을 이해하는 능력으로 메타인지적 앎(metacognitive knowledge)을 정의했습니다. 아이를 자기와는 다른 고유의 인격으로 존중한다는 것은 결국, 부모인 내 주관적 경험을 통해 아이의 경험을 이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메타인지적 앎에 연관되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이의 경험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며 세밀하게 관찰하는 능력인 메타인지적 감찰(metacognitive monitoring) 능력에 연관됩니다. 이런 것들이 바로 포나기가 말하는 정신화 능력이기도 합니다.
심리치료는 내담자의 정신화 능력 함양을 목표로 하게 됩니다. 생애 초기 부모-자녀 안정 애착 발달에서처럼 치료자-내담자 안정 애착 발달을 도모하게 되는데, 전이-역전이에서 발생하는 감정을 메타인지적으로 감찰할 수 있게 치료자와 내담자가 서로 협력하는 가운데, 어디까지가 나의 투사이고 어디까지가 실제인지 구분하며 치료자를 투사 대상이 아닌 나와는 분리된 인격으로 경험하는 과정이 수반되는 것 아닐까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부모-자녀 안정 애착 형성에서처럼 내담자를 고유의 인격체로 경험할 수 있는 치료자의 정신화 능력이 필수적이겠죠.
In this view, psychotherapy “works” by generating a relationship of secure attachment within which the patient’s mentalizing and affect regulating capacities can develop. For Fonagy, such a relationship must be an intersubjective one in which the patient comes to know him- or herself in the process of being known by another. 57쪽.
이 모든 치료 과정은 언어적이라기보다 비언어적인 커뮤니케이션에 가깝습니다. 언어는 거들 뿐이죠. 그래서 상담이 참 어려운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상담에서 불안정 애착이 재연되는 것은 정말 부지불식간이고, 치료자가 정신화 능력을 발휘하지 못 한 채 이러한 일을 거듭 알아차리지 못 할 때 상담이 조기종결됩니다.
덧.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이 이번 챕터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인데 영어 실력이 부족하여 잘 이해하지 못 한 것이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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