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과 양극성 장애를 감별하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양극성 장애는 DSM-IV까지는 기분장애라는 카테고리 안에 주요우울장애와 함께 묶여 있었으나 DSM-5부터는 독자적인 카테고리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양극성 장애는 주요우울장애보다 조현병과 유전적으로 더 밀접한 관련을 지닙니다. 조현병과 양극성 장애가 사촌지간이라면 양극성 장애와 주요우울장애는 오륙촌 정도 되겠네요.
조증 삽화가 심하면 망상이나 환청이 뚜렷해질 수 있고, 사고의 비약이 심해 언어가 와해돼 있다고 보기 쉽습니다. 망상에 따라 행동하기 쉽기 때문에 현실판단력을 상실한 행동이 와해돼 보이기도 쉽고요. 망상, 환청, 와해된 언어, 와해된 행동, 정서 표현의 감소가 조현병 진단기준 A에 속하는 증상인데 조증 삽화가 심할 때의 증상과도 겹치죠?
정신과를 처음 찾은 환자나 이전 정신과 병력 및 가족의 보고를 참고할 수 없는 재발 환자의 경우 조현병과 양극성 장애를 감별하는 것이 매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조현병의 경과나 조증 삽화에 대한 지식에 근거하여 감별의 정확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대인관계 및 직업적 기능이 비교적 양호하던 사람이었는데 한두 달 전부터 잠을 한두 시간밖에 자지 않고 남들 보기에 허황된 생각에 몰두해 그 생각을 실현하겠다고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날들이 많아지면 그럴 땐 조증 삽화를 의심해 봐야겠죠. 반면에 가랑비에 옷 젖듯이 청소년기부터 서서히 사회적 관계로부터 멀어지고 방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잘 씻지 않고 감정도 단조로워진 경우라면 조현병에 가까울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교과서에 나오듯이 딱 맞아 떨어지는 경우가 실제 임상 장면에서는 거의 없기 때문에 퇴원 후의 경과를 잘 팔로우업하는 것이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조현병의 경우 1/3 혹은 그보다 더 적은 비율(10~20%)의 환자가 기능 수준을 어느 정도까지 회복하는 데 반해 양극성 장애는 치료를 잘 따르기만 한다면 조현병의 경우보다 더 많은 비율이 양호한 기능 수준으로 회복합니다. 정확한 데이터를 찾아보진 않았으나 제가 생각하기에 예후가 상대적으로 더 좋습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양극성 장애 환자(특히 진단 받은 지 얼마 안 된 경우)가 치료를 잘 따르는 비율은 조현병의 경우보다 체감상 더 낮습니다. 그래서 재발이 잦고, 그러다 보니 결과적으로 조현병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예후와 다를 것 없어지는 경우도 생기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사회적 고립 속에 정신과를 늦게서야 찾은 양극성 장애 환자는 실상 만성 조현병 환자와 잘 구분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조현병과 양극성 장애 감별뿐만 아니라 정신장애 진단 자체가 상당히 까다롭고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정신장애라는 게 확실한 인과적/물리적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기에 증상을 토대로 정신장애 유형을 추론할 수밖에 없는 방법론적인 한계 때문입니다. 이에 정신과를 처음 찾은 날로부터 정확한 정신장애 진단을 받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 수 있습니다. 짧으면 2~3년 길면 7~8년 정도는 생각하셔야 합니다. 임상가마다 환자를 보는 깊이가 다를 수밖에 없고 전문적인 영역도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오진단 가능성이 늘 있습니다. 더욱이 진단이 정확하더라도 증상 재발이 잦고 환자의 기능 수준이 더 안 좋아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정신과를 바꾸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1~2년 정도 치료했음에도 별 차도가 없을 때 특히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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