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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심리학/상담 및 심리치료

신체화를 통해 바라보는 통증: 몸으로 표현되는 마음의 어려움

by 오송인 2020.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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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은 그 실제적인 원인이 존재하든 하지 않든 간에 통증에 대한 심리적 해석이 통증의 강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통증의 원인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질 때조차, 그 통증의 organic한 원인이 존재한다고 믿으면 통증은 사라지지 않는다. organic한 원인을 얼마나 심대하고 치명적인 손상으로 여기는지에 따라 통증의 빈도와 강도는 모두 증가한다.

나는 MRI를 통해 척추 세 군데 디스크가 돌출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중 어느 것이 과도한 운동에 따른 손상이고 어느 것이 기존에 지니고 있던 손상의 악화인지 판별해낼 수는 없었지만, 뭐가 됐든 간에 구조적 손상에 기인하는 극심한 통증은 3~4개월만에  자연스레 사라졌다. 대학병원에서 처방받은 소염진통제 복용 3개월만에 사라졌는데, 사라지자마자 공연장에서 오래 서 있었던 것이 화근이 돼 1개월 정도 더 고생했다. 그리고는 통증은 완전히 사라졌다.

하지만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허리 통증에 시달린다. 일상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에 심한 수준은 아니라 하더라도, 충분히 불쾌할 만한 그런 수준의 통증이다. 

통증 기록을 보니 12월에 한 번, 1월에 세 번, 2월에 두 번이다. 여기 상세히 적기는 어렵지만, 통증을 경험하기 전에 어떤 일이나 상황에 대한 걱정이나 염려가 커지는 패턴을 알 수 있고, 이런 불쾌기분(dysphoric mood)이 허리 통증에 영향을 미쳤을 개연성을 충분히 고려해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신체 증상으로 인한 통증은 통증에 대한 심리적 해석의 영향을 받을 뿐만 아니라, 이처럼 부정적 정서의 영향을 받는다. 

신체 증상 염려 및 통증이 부정적 정서와 관계가 있다는 아이디어는 프로이트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실제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80년대 무렵인 것 같다. 몸과 마음이 동전의 이면 같은 것임이 널리 받아들여지는 오늘날에는 이러한 관계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확히 말해 부인되거나 억압돼 무의식의 영역에 존재하는 부정적 정서가 신체 증상에 대한 염려나 신체 증상으로 인한 통증에 영향을 미친다. 알아차리지 못 한 감정이 몸을 통해 표현된다. 감정은 반드시 몸을 통해 표현되기 마련인데 이 감정이 의식의 영역에 들어오지 않다 보니 몸 어디가 아픈 것으로 경험되기 쉽다. 

정서(혹은 일상적인 언어로 감정)을 왜 알아차릴 수 없는가? 이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과학자/임상가들이 썰을 풀었기 때문에 여기서 또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요점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렇게 하는 것이 인생에 도움이 됐던 순간들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라는 것이고, 상황이 바뀌어서 정서를 무의식에 가두는 것이 도움이 안 될 때조차 이 낡은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자기 몸이나 자기 능력, 외부 환경 등에 대한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자기와 환경에 대한 판단을 제대로 하기 어렵게 만드니 학문적으로는 '역기능적'이라고 부른다.

요통뿐만 아니라 한국 사람(특히 어머니들)이 많이 경험하는 홧병, 공황장애, PTSD 등도 부인되고 억압된 감정이 몸으로 표현되는 과정을 포함한다. 이런 현상을 신체화라고 부른다. 예전에 신체화는 의학적인 원인을 찾을 수 없고 아마도 억압된 무엇으로 인해 유발될 가능성이 높은 신체 증상을 가리켰으나 이제는 의학적 원인이 있든 없든 알아차려지지 못 한 심리적 어려움이(가령 억압된 정서라든지) 신체 증상으로 표현되고 있을 개연성이 높을 때 신체화라고 부른다.

신체화를 보이는 환자가 심리적 어려움과 신체 증상 간의 상관이 있을 가능성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교과서적으로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신체화는 일종의 성격 특질로서 잘 변하지 않는 특성이 있고, 그 성격 특성 가운데는 자신의 문제를 다각도에서 바라보도록 돕는 psychological mindedness의 미흡함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신체화가 역기능적인 특성이 크다 하더라도 알게 모르게 개인의 삶에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기에 현 상황과 맞지 않는 방어기제라 하더라도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몇가지 더 짚고 넘어갈 것들이 있지만 퇴근 시간이 임박하여 이쯤에서 마무리한다. 생각나는 대로 적다보니 장황한 감이 있는데, 요점은 일단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병원에서도 딱히 문제를 찾아내지 못 하거나 문제를 지녔다 하더라도 평소 경험하던 것보다 훨씬 더 심한 신체 증상을 경험한다면 내게 심리적인 어려움이 없는지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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