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 올라탔는데 마스크를 쓰지 않은 어떤 중년 남성이 제 근처에 앉습니다. 이후 누군가와 큰 소리로 통화를 합니다.
영어 팟캐스트 리스닝 중이었는데 이어폰을 뚫고 그 남성의 목소리가 들릴 정도였던지라 볼륨을 더 높여 봅니다. 하지만 목소리가 커서 신경이 계속 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최선은 자리를 피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을 해서 들을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버스 안에서 저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았겠지요.
버스 뒤쪽 좌석에서 가장 앞좌석으로 피합니다. 버스운전사께서 버스 뒤쪽을 보시더니 그 중년 남성에게 마스크를 쓰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상대로 말을 듣지 않고 통화를 이어갑니다. 버스운전사께서도 화가 났는지 운전 중에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버스를 길 한편에 세운 뒤 중년 남성을 버스에서 내리게 합니다.
상황을 지켜보는 내내 몸이 긴장되고 불편한 감정이 계속 됐습니다.
내 힘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을 수 있습니다. 특히나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이 그렇죠. 행동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사람은 누구나 자율성을 침해당하고 통제당한다고 느낄 때 직접적으로든 우회적으로든 반발하게 돼 있습니다. 그 중년 남성분도 어쩔 수 없이 하차해야 했지만, 버스운전사에게 온갖 욕을 퍼부으며 자신이 생각과 감정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더군요.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자신의 원치 않는 생각과 감정도 상당 부분 내 통제를 벗어나 있을 때가 많습니다. 없애고 싶다고 해서 없앨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몸 바깥에서는 '그것을 원치 않으면, 그것을 없애는 방법을 파악해서 없애라.'라는 법칙이 성립한다. 그러나 몸 안에서는 이 법칙이 아주 다른 듯하다. 그 법칙은 '그것을 기꺼이 소유하지 않으려 하면, 소유하게 될 것이다.'에 더 가깝다. 좀 더 실제적인 말로 예를 들어 표현하면, 당신이 기꺼이 불안을 느끼려 하지 않는다면 더 불안해질 것이며, 따라서 더 좁고 제한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 < 마음에서 빠져나와 삶 속으로 들어가라>
생각이나 감정은 내 통제하에 있는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는 통제하려 한다고 해서 통제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하지 않으려 하면 더 생각하게 되고, 억누른 감정은 어떤 식으로든 돌아오게 돼 있습니다. 특히 분노의 경우 그것을 꾹꾹 누른다 하더라도 스프링처럼 다시 튀어오르게 마련입니다.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이 우세해질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그러한 생각과 감정을 비판단적으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어린 아기가 계속 우는 상황에서 그 울음을 그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지만 모두 실패한 어떤 엄마의 이야기가 뜻 깊습니다. 아기의 울음을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아기가 그저 고통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관점을 바꾸자 엄마도 마음이 편해지는 놀라운 경험을 합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통제하되 내려놓아야 할 것은 내려놓을 수 있는 마음이 분별 있는 마음이자 유연한 마음입니다.
버스운전사께서 중년 남성 승객을 내리게 한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우리 마음 안에서 시도 때도 없이 불편함을 자아내는 생각이나 감정은 근본적으로 우리의 통제 범위를 벗어납니다. 이것은 우리의 일부라 하차시킬 수도 없을 뿐더러 통제하려 할수록 괴로움이 커지기 십상입니다. 가령 걱정이 큰 상황에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되뇌면 걱정이 더 커지게 마련입니다. 그게 마음이 작동하는 원리입니다.
이럴 때는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 마음에 이롭습니다. 붙들지 않으면 흘러가는 것이 생각과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이 우리 마음에서 진상 짓을 하더라도, 거기 어떤 대처를 하려 하기보다 단순히 그런 생각과 감정이 있음을 알아차리고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버스를 몰고 가면 됩니다. 아무리 위협적으로 보이는 생각과 감정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없애려 하지 않으면 결코 우리에게 힘을 못 쓰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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