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과학: 학교폭력 피해자에서 예일대 감정지능센터 소장이 되기까지
에디터 노트
이전 뉴스레터에서도 몇 번 언급한 리사 펠드먼 배럿의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읽고 감정에 얼마나 무지했는지 깨닫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래서 감정 관련 책을 몇 권 더 보던 차에 마크 브래킷이 쓴 감정의 발견을 읽게 됐습니다. 이 책의 원제는 Permission to Feel 입니다. 감정에는 좋고 나쁜 게 없고 각각의 감정 자체가 인간의 생존과 적응에 중요한 정보가를 지닙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감정은 수동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물론 그게 진실에 더 가까워 보이지만) 능동적인 구성에 가깝고, 특히 얼마나 다양한 감정 어휘와 감정조절 전략을 지녔는지에 따라 상황에 더 적합한 대처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지속적인 학습이 필요한 영역이기도 합니다.
상담을 하다 보면 자신의 감정을 언어화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분이 많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런 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자각을 한 뒤로는 의식적으로 감정에 주의를 기울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감정을 기록하는 앱을 만들어서 일주일 동안 기록을 했습니다. 기록한 감정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주간의 감정 현저도를 시각화해 보기도 합니다. 감정 기록 및 모니터링은 감정지능 향상을 위해 마크 브래킷이 권장하는 방법이기도 한데요. 평소 잘 쓰지 않는 감정 단어들이 익숙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식으로 감정 자각을 위한 실천을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지속적인 감정 모니터링의 노하우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감정을 이해하면 삶이 바뀐다
12살의 마크 브라켓이 자신의 방에서 깊은 절망감에 빠져 삶을 포기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만 해도, 단 한 번의 대화가 그의 미래뿐 아니라 수백만 명의 감정적 삶을 바꿔놓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학교에서 끊임없는 괴롭힘을 당하고 학대의 상처를 안고 있던 어린 마크는, 사랑이 넘치지만 감정을 다루는 데 서툴렀던 부모님조차 다가갈 수 없을 만큼 자신의 마음을 닫아버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여름 가족과 함께 지내던 중학교 교사인 마빈 삼촌이 다른 사람들은 전부 놓쳤던 마크의 표정 속 무언가를 발견했습니다.
"마크, 지금 기분이 어떠니?" 마빈 삼촌은 진실된 대답을 이끌어낼 수 있는 특별한 어조와 태도로 물었습니다. 처음으로 마크는 자신의 고통과 두려움, 수치심에 대해 털어놓았습니다. 부모님처럼 "강해져야 한다"거나 "신경 쓰지 말라"는 말 대신, 마빈 삼촌은 간단히 말했습니다. "우리가 함께 이겨낼 거야. 내가 있잖니. 네 곁에 있을게."
이 진정한 감정적 교감의 순간은 이후 마크 브라켓 박사의 평생의 사명이 되었습니다. 현재 예일대학교 감정지능센터의 소장으로서, 그는 학교와 직장,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감정을 이해하고 다루는 방식을 혁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심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감정지능의 심리학
브라켓 박사의 연구 핵심에는 중대한 발견이 있습니다: 감정지능은 단일 기술이 아니라, 개발하고 강화할 수 있는 상호 연결된 능력들의 집합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RULER라는 약어를 통해 이러한 핵심 요소들을 설명합니다:
감정 인식(Recognizing Emotions): 이는 단순히 누군가의 표정이나 행동을 관찰하는 것을 넘어, 우리 자신의 해석 편향을 인식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다른 사람의 몸짓, 어조, 표정을 볼 때 우리는 종종 자신의 감정 상태를 투영하여 잘못 해석하기 쉽습니다. 브라켓 박사는 이러한 '귀인 편향(attribution bias)'을 피하기 위해 무드 미터(Mood Meter)를 활용한 유연한 접근을 제안합니다. 상대방의 감정을 무드미터 상에서 대략적으로 가늠해보되, 우리의 해석이 틀릴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열어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너무 많이 생각하고 있다면 잘못하고 있다는 뜻"이라는 브라켓 박사의 말처럼, 정확한 판단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상대의 감정에 다가가는 것이 핵심입니다.
감정 이해(Understanding Emotions): 발표 전에 늘 긴장되거나 일요일 저녁이면 우울해지는 것을 경험해 보셨나요? 이런 패턴은 우연이 아닙니다. 브라켓 박사는 감정이 항상 맥락 속에서 발생한다고 강조합니다 - 감정은 특정 상황, 관계, 환경에 대한 반응입니다.
"감정지능의 핵심은 단순히 자신의 감정을 아는 것이 아니라, 특정 상황에서 그러한 감정이 왜 생기는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라고 그는 자신의 합기도 노란 띠 승급 심사 경험을 예로 들며 설명합니다. "당시 내가 느낀 감정이 단순한 실망이나 불안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심사에서 떨어진 후 옷을 갈아입는데 평소 나를 괴롭히던 아이가 다가와 '내일 아침 버스에서 보자. 네 노란 띠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줘야겠어'라고 위협했을 때의 두려움과 수치심... 이런 복잡한 감정들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니까, 부모님은 내가 왜 갑자기 화부터 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죠. 그때 내 진짜 감정이 두려움과 수치심이었다는 걸 알았더라면, 그리고 그걸 표현할 수 있었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 거예요." 이렇게 우리의 감정은 겉보기와 달리 여러 층위를 가지고 있으며, 그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감정에 이름 붙이기(Labeling Emotions): 이러한 패턴을 인식했다면, 다음 과제는 자신이 느끼는 것에 정확한 이름을 붙이는 것입니다. "감정을 이해하고 이름 붙일 때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브라켓 박사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설명합니다. "감정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변화의 동력이 생깁니다."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하는 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이는 마치 복잡한 그림을 하나의 크레용으로 그리는 것과 같죠. 더 정확한 감정 어휘를 사용하면, 실제로는 "여러 마감일이 한꺼번에 몰려와 압도되었다" "기대치를 맞출 수 있을지 불안하다" 또는 "불명확한 지시에 좌절감을 느낀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정확한 표현을 사용할 때마다 각각 다른 해결책이 보입니다.
이러한 명명의 힘에는 과학적 근거가 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감정에 정확한 단어를 붙이는 단순한 행위만으로도 뇌의 실행 통제 시스템(executive control systems)이 활성화됩니다. 마치 어두운 방에서 불을 켜는 것과 같아서, 갑자기 자신이 무엇을 다루고 있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볼 수 있게 됩니다.
브라켓 박사는 이 교훈을 연구실이 아닌 아버지와의 커피숍에서 배웠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재혼한 배우자가 장애가 있는 자신의 손주들을 돌보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 불만이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불평하고 화를 내며, 결혼 생활에 긴장을 만들어냈습니다. 깊은 대화 중에 브라켓은 아버지의 불평 속에 더 깊은 무언가가 숨어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아버지, 질투하시는 것 같네요," 그가 조심스럽게 제안했습니다. 아버지의 첫 반응은 "내가 질투한다고? 말도 안 돼!"였습니다. 하지만 곧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강한 겉모습이 깨지며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단지 실제 감정인 질투를 이름 붙이는 것만으로도 깊은 무언가가 풀린 것입니다. "아버지가 앉아서 이 경험을 이해하기 시작했을 때," 브라켓은 회상합니다. "아내가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것, 그리고 아내가 손주들과 시간을 보낼 때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불편함 - 그것이 질투였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 순간 우리는 아버지를 도울 수 있는 길을 찾았죠."
이 이야기는 감정지능에 관한 중요한 점을 보여줍니다: 맥락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감정은 결코 진공 상태에서 존재하지 않습니다," 브라켓은 강조합니다. "감정은 항상 상황, 관계, 그리고 우리의 개인적 역사와 연결되어 있죠." 이러한 연결을 이해하면 "스트레스 받는다"와 같은 모호한 감정에서 "파트너의 관심이 다른 곳에 있을 때 소외감을 느낀다"와 같은 더 정확한 통찰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감정을 정확하게 명명하는 것은 단순히 풍부한 감정 어휘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 이는 자신의 감정 이야기의 작가가 되는 것입니다. 브라켓 박사가 강조하듯이, "감정을 설명할 단어를 모르는 것은 그것을 설명할 능력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의 '작가'가 될 능력이 부족한 것입니다." 감정 어휘를 확장할 때, 우리는 자신을 이해하고 삶의 도전에 어떻게 반응할지 선택하는 능력도 확장하게 됩니다.
감정 표출(Expressing Emotions): 이는 서로 다른 상황과 문화에서 감정을 언제, 어떻게 표현할지 아는 것입니다. 감정을 억누르는 것과 부적절하게 표현하는 것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 관건입니다. 브라켓 박사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표정, 목소리 톤, 몸짓을 통해 끊임없이 서로의 감정을 함께 조절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것을 얼마나 능숙하게 하고 있느냐는 것이죠."
감정 조절(Regulating Emotions): 마지막이자 가장 복잡한 기술은 감정을 효과적으로 다루는 전략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제 불안과 다른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브라켓 박사는 말합니다. "불안이 찾아올 때면 '안녕 불안아, 오늘은 어떠니?'라고 말한 뒤 결정합니다: 이 감정에 지금 당장 주의를 기울여야 할까, 아니면 중요한 일에 집중하는 동안 잠시 뒷자리에 둬도 될까?"
이론에서 실천으로: 당신의 감정지능 도구상자
감정지능에 대해 주목할 점은 이것이 단순한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오늘부터 바로 개발할 수 있는 기술의 집합이라는 것입니다. 브라켓 박사가 수천 명의 학생, 교사, 기업 리더들과 함께한 연구는 실제 생활에서 효과가 있는 구체적인 전략들을 밝혀냈습니다. 까다로운 동료를 대할 때든, 가족 관계를 다룰 때든, 혹은 단순히 자신의 감정 패턴을 이해하려 할 때든, 이러한 실용적인 도구들은 "그저 스트레스 받는다"는 상태에서 "내가 무엇을 느끼고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안다"는 상태로 나아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감정지능 근육을 키울 준비가 되셨나요? 다음은 지금 바로 시작할 수 있는 네 가지 연구 기반 전략입니다:
- 감정 지도 만들기
- "무드 미터"를 사용해 자신의 감정을 두 가지 축으로 표시해보세요: 에너지(높음에서 낮음)와 유쾌함(유쾌에서 불쾌)
- 하루 동안의 감정 상태 패턴을 추적해보세요
- 참고 인용구: "우리는 아침에 깨어나는 순간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감정적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알아차리고 있는가입니다."
- 맥락 속에서 감정의 세밀함 발달시키기
- '좋다' 또는 '나쁘다'와 같은 기본적인 표현을 넘어서세요
- 감정을 유발하는 요인과 상황을 탐색하면서 구체적인 감정 단어를 사용하는 연습을 하세요
- 자문해보세요: "이런 감정을 느끼기 직전에 무슨 일이 있었나? 어떤 상황이었나?"
- 흔한 장애물: 많은 사람들이 맥락을 살펴보지 않고 '스트레스'라는 말을 만병통치약처럼 사용합니다. 구체적인 감정과 그것을 유발하는 상황을 모두 파악하도록 노력해보세요(예: "여러 마감시한이 겹칠 때 압도감을 느낀다" 또는 "기대치가 명확하지 않을 때 불안감을 느낀다")
- 감정을 인정하는 환경 조성하기
- 감정을 안전하게 인정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세요
- 다른 사람의 감정을 판단하지 않고 경청하는 연습을 하세요
- 핵심 인용구: "어린 시절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느낄 수 있도록 해준 누군가가 있었다고 느끼는 성인은 겨우 3분의 1에 불과합니다."
- 전략 도구상자 구축하기
- 서로 다른 감정에는 서로 다른 조절 전략이 필요합니다
- 불안에 대해: '열기구' 조망법을 활용하세요 - 마치 열기구를 타고 높이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듯이, 현재의 불안한 상황에서 한 걸음 물러나 더 넓은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리를 두고 보면 당장의 불안이 전체 삶에서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지 객관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 분노에 대해: 브라켓 박사는 아버지와의 긴장된 저녁 식사 자리를 예로 듭니다. "아버지가 매우 불쾌한 말을 했을 때, 저는 선택해야 했습니다. 식사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릴 것인가? 아버지에게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나갈 것인가? 대신 저는 거리두기 기법을 사용하기로 했죠. 그 상황을 하나의 TV 쇼처럼 바라보기로 한 겁니다. 감정적으로 휘말리는 대신 마치 흥미로운 드라마를 관찰하듯이요. 이것은 특히 부정적 에너지를 가진 사람을 대할 때 제게 가장 강력한 전략이 되었습니다. 학교폭력을 경험한 아이로서 저는 이런 상황에 더 민감했거든요. 하지만 상황을 액자 속 장면처럼 거리를 두고 관찰하면서, '와, 이것 참 흥미로운데'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심리적 거리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 기억하세요: 목표는 불쾌한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효과적으로 다루는 것입니다
감정지능의 미래
브라켓 박사의 비전은 개인의 변화를 훨씬 넘어섭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학교에서 체계적인 감정 교육을 실시할 때 괴롭힘이 줄어들고, 학업 성과가 향상되며, 학생들은 성인기까지 이어지는 중요한 삶의 기술을 발달시키게 됩니다.
브라켓 박사의 연구는 우리 교육의 중요한 맹점을 드러냅니다. 감정지능은 부가적 기술이 아닌, 읽기나 수학만큼이나 필수적인 생존 능력입니다. 하지만 공교육에서 이 부분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점점 더 복잡해지는 사회에서 감정을 이해하고 다루는 능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감정교육을 각 가정에 일임하기보다 공교육 커리큘럼으로 적극 도입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브라켓 박사가 자신의 어린 시절 상처에서 시작해 평생을 바쳐 이루고자 했던 변화입니다.
참고 자료
- Main Source: Dr. Marc Brackett: How to Increase Your Emotional Intelligence - YouTube
- 예일대 마크 브래킷 교수와 정목스님의 만남 (통역:이주성) - YouTube
- 마크 브래킷은 대구에서 합기도를 배웠다고 하네요. 강연차 종종 한국에 오는 것 같습니다.
- Dealing with Feelings 라는 제목으로 두 번째 책 준비 중이라고 하네요.
- Parenting Without Fixing: Dr. Becky Kennedy on Raising Resilient Kids | Dealing With Feelings - YouTube
- 마크 브래킷의 개인 유튜브 팟캐스트입니다. 제게 작년 최고의 책 중 하나였던 아이도 부모도 기분좋은 원칙 연결 육아의 저자 Becky Kennedy와의 인터뷰 가져옵니다.
- [심리학 영어 콘텐츠 요약 #38] 풍부한 감정 생활이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드는 이유
- 건강한 생태계는 다양성에 기반합니다.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양하고 풍부한 감정을 느낄수록 우리의 적응력도 높아진다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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