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루하루/일상

이번이 몇 번째 시험이더라

by 오송인 2012. 12. 21.
반응형

9번째인가 10번째인가 가물가물하다. 


시험장 가면 익숙한 얼굴들이 많다.


결국 비슷한 시기에 수련을 마칠 분들이라 인사도 하고 어느 선생님 밑에서 공부하셨는지 시험 준비는 혼자 하시는지 논문은 뭘로 쓰셨는지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지만, 나 혼자 남자라 껄떡대는 것처럼 보이는 게 싫어서 그냥 조용히 있다가 시험 끝나면 쏜살 같이 나온다. 



시험 치고 나오니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병원 앞에서 가래떡을 할머니가 맛있게 구워서 팔고 있길래 천 원에 두 개 사먹었는데


진짜 맛있었다. 



좀 걸으려고 병원 순환버스를 안 탔는데 한남역에 오니 눈이 한 웅큼 어깨와 머리에 쌓여 있었다. 


한남역 역사는 지상에 위치해 있는데, 선로 위로 눈 내리는 풍경이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주로 배달 계통의 알바를 해와서 눈 내리는 게 싫은데, 오늘은 꽤 아름답게 느껴졌다.



무급이든 유급이든 수퍼바이저 선생님 평판이 좋든 나쁘든


합격하는 데가 내 자리려니 생각하고 뼈를 묻으리. 



암튼.. 오늘 시험에서 좀 특이했던 것은, 2교시에 문장완성검사를 했는데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의 대사나 장면을 적으라, 올 한 해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뭔지 그 이유는 뭔지 설명하라, 즐거운 인생을 위해 어떤 것들을 하고 있는가, 축2 진단 중 자기랑 닮은 게 뭐냐, 수련생활 중 발병 많이 한다고 하는데 어떤 장애가 발병할 것 같으냐, 수련 생활에서 제일 힘들 것 같은 점이 뭐냐 등등 솔직한 답변을 요구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 문제는 채점자가 빵 터질 만한 유머를 적으라는 것이었다.


유머는 생각이 잘 안나서 아래 심슨 만화를 인용했는데


그림 없이 문장만으로 전달했으니 '이 XX는 뭐지'라고 생각하시지 않을까 걱정된다.



다 쓰고 보니 이 얘기 저 얘기 왔다 갔다 하는 게 연상의 이완 같다. ㅋㅋ



기왕 적은 거 관련 없는 얘기 몇자 더 적으면,


몇달 전에 학부 졸업하고 나서도 종종 만나는 후배가 책을 하나 선물해 줬는데


기독교 신앙서적이다.


이 책에 보면 이런 삽화가 있다.


낡고 초라해서 누구라도 거들떠 보지 않을 그런 바이올린이 경매에 나왔다.


사람들은 정말 거들떠도 보지 않고 빨리 다음 물건이 나오길 기다린다.


그런데 이 때 어떤 노신사가 그 악기를 한 번 줘보라고 한다.


그는 왕년에 바이올린을 좀 켜본 사람인지 먼지를 털어내고 세심하게 바이올린을 조율한다.


이후 그 노신사가 고물 같았던 바이올린으로 연주한 음악에 장내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감동한다. 어떤 이는 심지어 눈물마저 보인다.


자신이 낡고 초라한 바이올린 같다고 느껴질 때, 


그 안에 담겨진 가능성을 알아주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뿐이고 하나님의 손길을 통해서만이 우리의 가능성이 온전히 현실화될 수 있음을 은유한 삽화다.


이 글 보면서 시발 코끝이 찡했다.


논문 잘 마무리했고, 그것만으로도 족하다고 생각했지만, 시험에 계속 떨어지니 참.. 스스로가 고물 바이올린 같다고 느꼈었나 보다. 


이래저래 고난은 심령을 가난하게 만들고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게 만들고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만들며 다른 사람의 아픔을 더 잘 볼 수 있게 만든다는 측면에서 무익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