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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일상

stand by me

by 오송인 2013.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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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년에 개봉한 영화인데 어제 밤에 EBS에서 해줘서 정말 잼있게 봤다. 정서적으로 박탈된 어려운 가정 환경 속에서 자랐다는 것이 이 12살(우리나이로 하면 6학년) 꼬마들의 공통점이다. 그래서인지 죽이 잘 맞는다. 같이 모여서 담배도 피고 카드 놀음도 하고 여자 슴가 얘기도 하고 등등. 그런데 어느 날 몇 십 킬로미터 떨어진 철로 주변에서 동네 다른 꼬마가 시체로 발견됐다는 얘기를 동네 건달 형들로부터 엿듣게 되면서 이 네 꼬마의 1박2일이 시작된다. "걸어서 거기까지 가보자. 처음 시체를 발견한 사람으로서 방송 타고 유명해질 수 있어!" 이런 꼬맹이다운 동기를 가지고 철길 여행이 시작된다.

 

그 과정에서 저마다가 지닌 상처들이 하나씩 불거져 나온다. 먼저 제일 오른쪽 꼬맹이는 이름이 고르디인데 아빠가 어린 아들 귀를 난로에 지질 정도로 심각하게 unstable한 사람이라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다. 이 친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를 전쟁 영웅으로 이상화하고, 그런 아빠를 모욕하는 사람에게 크게 분개하며 울분을 삭히는 데 한참이 걸린다. 충분히 이해가 되는 대목인데 아무리 자기 남편이나 부모가 개차반이라 하더라도 자기 정체성의 일부이기 때문에 그 정체성을 훼손하려는 시도에 저항하는 건 당연해 보인다.

 

왼쪽에서 두 번째 친구는 극 중 이름이 크리스로 젊은 나이(24살?)에 요절한 배우 리버 피닉스다. 꼬맹인데 뭔가 꼬맹이 답지 않은, 인생 다 살아본 것 같은 원숙함이 묻어나는 연기가 예사롭지 않다 했더니만.. 엔드 크레딧에 리버 피닉스라고 뜨는 거 보면서 깜 놀랐다.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이 친구가 자란 환경도 매우 학대적이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가 kind한 구석이 있는 거 보면서(짓궂을 땐 정말 짓궂다) 참 탄력성 좋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 친구는 돈을 도둑질한 것을 선생님께 실토했는데, 자세한 정황은 잘 모르겠지만, 그 선생님이 돈은 먹고 아이가 돈을 도로 돌려 줬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음으로써 아이의 명예를 훼손했던 것 같다. 그로 인해 받은 상처를 테디(끝에서 두 번째 아이)에게 털어 놓으면서 서럽게 흐느낄 때.. 나 또한 마음이 짠했다. 이 친구는 테디와 함께 대학에 들어가서 변호사가 되지만 실제로 리버 피닉스가 그랬던 것처럼 극중에서도 결말이 좋지 못해서 더 마음 아팠다.

 

이 영화는 소설가가 된 테디의 회고로 시작된다. 테디 역시 잘 나가는 대학 미식축구 선수인 형한테만 부모님이 관심을 보인 까닭에 심한 정서적 박탈감을 느끼며 성장한 아이다. 부모의 관심과 이해, 경청, 안내를 받아본 적이 없는 친구인데, Sibling rivalry에서 제대로 밀려난 채 자존감이 어디까지 떨어질 수 있는지 어린 나이에 쓰라리게 경험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베프 크리스가 너는 꼭 대학에 가서 소설을 쓰라고 용기를 북돋워 줘도 자신은 그렇게까지 대단한 사람 아니라고, 부모처럼 잔소리하지 말라고 빈정거리면서 끝내 귀를 틀어 막는다.

 

뚱보 번은 말할 것도 없이 뚱뚱한 외모와 굼뜬 행동으로 인해서 동네 일진들의 시달림을 받아 왔을 것이다. 부모가 아무리 애정을 갖고 키웠어도 초딩 때 이렇게 괴롭힘을 심하게 당하게 되면 자라면서 대인관계를 기피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아무튼 이 네 친구는 여행을 통해 저마다가 지닌 고통의 깊이를 대략적으로라도 짐작할 수 있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시신을 찾고 부패한 시신의 리얼한 모습을 목도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더 이상 예전 같은 어린아이의 모습일 수 없게 된다. 테디의 회고에 의하면 돌아오는 길에는 그 누구도 말이 없었다고 하는데, 인간이 다른 인간의 심연을 들여다 본 후에 어찌 섣불리 입을 놀릴 수 있으랴. 아이들은 서로의 아픔과 인간의 죽음을 대리적으로나마 경험하게 되면서 생의 무게감이라 할 만한 어떤 것을 느꼈을 것 같다. 또 '어린 시절에는 하루가 다르게 몸이 쑥쑥 자라지만 마음 또한 그렇구나, 어린 시절에는 마음이 유연해서 삶의 폭과 깊이가 이런 에피소딕한 사건들로도 충분히 확장될 수 있는 거구나' 등의 생각이 머리 속을 맴돌았다. 최근 개봉해서 호평 받은 바 있는 성장 드라마 월플라워스가 빚졌을 법한 수작이다.


근데 제목을 왜 stand by me 로 지었을까? 참고로 원작 소설의 제목은 body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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