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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여행

남해 바다길 1박2일 트래킹(거제도 쌍근마을 ~ 다대마을)

by 오송인 2013.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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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동적으로 떠난 여행이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당일에 버스 예약을 했는데 행선지를 잘못 입력해서 출발 3시간 전에 취소하고 표를 다시 끊었다는. 목요일 저녁, 쓰던 보고서를 마무리하고 짐을 챙겨서 남부터미널로 향했다.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저녁 12시 차에 올랐다. 거제 고현에 도착하니 새벽 네 시였는데, 4시간밖에 안 걸렸다는 게 좀 놀라웠다. 


내려서 어디로 가야할지 꽤 방황했다. 모텔 가서 좀 잘까. 찜질방을 갈까. 그냥 걸어서 쌍근마을까지 갈까. 그러기에는 너무 먼 곳인데(고현 터미널에서 20km).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남녀노소 불문하고 꽐라된 사람들이 많은 터미널 근처에서 순대 1인분을 시켜 먹으면서 그냥 6시 반 첫 차를 타기로 마음 먹었다.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갔고, 터미널에서 시내 버스 타고 쌍근 마을을 향했다. 바깥 풍경 좀 보다가 꾸벅꾸벅 졸다가를 반복하며 4~50분 가량 달리니 쌍근마을이었다. 아침 7시20분.


무지개길이라고 이름까지 붙여 놨길래 북한산 둘레길 정도의 장거리 트레킹 코스를 상상하며 갔는데, 퍽이나. 이정표도 없고 보이는 건 물안개 피어오르는 바다와 생뚱맞다 싶게 바다 한가운데 높이 솟아 있는 섬산들과 2차선 아스팔트 도로뿐이었다. 그 때쯤에서야 내가 너무 준비를 안 하고 막 왔구나 싶었다. 그래도 몇가지 키워드에 근거해서 동네 주민 두 분께 길을 물었고, 친절하게 가르쳐 주셨지만, 버스 타고 가야 되는 그 먼 길을 왜 걸어가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체력 되시면 걸어 가셔도 되는데 2시간쯤 걸릴 거예요."


여기까지는 참 좋았다. 바다 구경도 하고 추수 직전의 논을 끼고 있는 마을 구경도 하면서 느릿느릿 걸었다. 하지만 갓길이 거의 없는 도로를 걸어야 할 거라곤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바보 같다. 그래도 뭐 걸어가야 하니까 막무가내로 걸었다. 지방 of 지방의 국도였고 아침 시간이었기 때문에 달리는 차가 거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을까. 해가 솟아 오르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난 긴 팔을 벗은 채였고 이마에선 송글송글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구름 한 점 없는 높은 가을 하늘의 따가운 햇볕이 예상됐지만, 20대 초반에 썬크림 따위 없이 온 국토를 걸어다녔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별로 개의치 않고 계속 걸었다.


그렇게 한 3~4km 걸었고, 뭔가 '이 길이 아닌가벼' 하고 소리내 말할 뻔할 때쯤 왕좌산으로 가는 이정표가 보였다. 여기서부터 검색한 대로라면 푹신푹신한 흙길, 산길이어야 했다. 하지만 검색했던 것과 다르게 산길에 도로를 까는 공사를 하는 중인지 순 자갈밭이었다. 운동화를 신었지만 걷기에 매우 불편할 정도였고, 운동화에 구멍이 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될 정도로 길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렇게 또 한 3~4km를 걸었을까. 이놈의 조루 옵쥐 핸폰 배터리는 이미 간당간당한 상태였고, 햇볕에 얼굴이 타는 게 느껴졌고, 자갈길은 끝도 없이 이어져 있는 것만 같고, 사람은커녕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는 유사-지구 행성에 버려진 것 같고, 다시 한 번 '이 길이 아닌가' 싶을 무렵, 기적적으로 저구 방면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나타났다. 그리고 이정표의 다른 한 끝은 쌍근까지 1km 를 가리키고 있었다. 엄청 돌아온 것임을 알고 다소 망연자실해졌지만, 애초에 어떤 목적지에 도달하는 여행이 아니었음을 상기하고 가볍게 발걸음을 저구 방향으로 틀었다.


저구로 가는 길 역시 아스팔트 길이어서 무릎이 아파야 될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아껴뒀던 샌드위치와 캔커피를 꺼내 흡입하고 심기일전해서 다시 걷는데, 한참을 걷다가 발견한 뷰포인트에서 넋을 잃었다.




와 이거 보려고 여기까지 왔구나 싶었다. 코딱지만한 사진에 담을 수 없는 남해바다의 심대함과 경이로움이 있었다.


오른쪽에 펼쳐진 섬들을 벗삼아 3km를 더 걸었을 때, 햇볕이 너무 뜨겁고 강렬해서 다 죽어가면서 하나님을 찾았던 것 같다. 남색 반팔에는 이미 소금기가 뚜렷해져 있었다. 그리고 청바지 차림이었는데, 안 되겠다 싶어서 길 한가운데서 누가 보든 말든 과감하게 청바지를 탈의하고 반바지로 갈아 입었다. 한결 편했다. 물이 없어도 버틸 만했지만, 혹시나 탈수돼 퍼질까 싶어서 그늘에서 반바지 차림으로 배낭 깔고 꽤 누워 있었다. 여치 비스무리 한 것들과 호랑나비들이 "너 어디서 왔니?"라며 깝죽거리고 있었다.


이후 저구까지 3km 남았다는 이정표의 말에 불신이 커진 데다가 갈래길이 나왔는데 어디로 가라는 건지 방향 표시가 제대로 돼 있지 않아서 또 감에 의존해서 쭉 걸었다. 다행히 1km를 걷든 10km를 더 걷든 상관 없을 것 같아질 무렵 저구마을이 보였다. 가장 가까운 마트에서 포카리스웨트 500ml를 사서 원샷하고, 부족한 감이 있어서 연이어 물 500ml를 반쯤 원샷했다. 


이후 근처 식당에서 알밥을 매우 맛있게 먹고, 명사 해수욕장에서 쉬었다. 물이 투명해서 바닥이 다 보였고 시원했다. 한 가지 다소 안습이었다면 산 지 2달밖에 안 된 핸드폰을 물에 빠트렸다는 것 정도? 다행히 기계는 멀쩡했다. 약간 상태가 안 좋아진 부분도 있는 것 같다마는.. ㅜㅜ 외국인 부부의 아이들이 신났다고 해수욕을 즐기고 있었고, 텐트 치고 쉬는 가족 단위 사람들도 꽤 있었다. 수영을 할 수 있었다면 나도 바닷물에 몸을 맡겼을 텐데, 수영도 못하고 안 그래도 탄 살, 화상 수준이 될까봐 포기했다. 약간 아쉬웠다.


이후 근포-다포-홍포 마을로 이어지는 길을 계속해서 걸었다. 오후 1시를 넘어가면서 아스팔트 도로 한가운데 내리쬐는 햇볕은 살인적인 수준이었고, 모자 하나에 의지해서 죽기야 하겠어 라는 심정으로 되는 대로 걸었다. 그러던 중, 홍포 마을 가는 길에 들른 길가 수퍼마켓 의자에서, 사이클 타는 50대 아저씨하고 어떻게 말을 트게 되서 얘기를 20분 정도 나누면서 쉬었다. 거제도에 있는 삼성 조선에서 몇십 년간 일하셨고 울트라 마라톤을 종종 하는 분이었다. 추석에 집에만 있기가 갑갑해서 나오셨다는데, 내가 맞장구를 좀 쳐주니까 신나서 본인 얘기만 늘어 놓는 모양새가 그도 나처럼 외로운 사람 같았다. ㅎ 하지만 사과도 얻어 먹고(와~ 꿀맛!) 술이 약해서 막걸리 권하시는 건 정중히 사양했다. 다소 과경계적인 성향이 있어서 낯선 사람에게 먼저 말 거는 스타일이 아닌데, 길은 경계심을 풀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말을 먼저 건 것도 나였다. '젊은 사람이 이렇게 혼자 여행하는 거 보니 대견해 보이네' 라는 격려의 말을 뒤로 한 채 다시 걸었다.  


홍포에서 여차로 가는 길이 아주 유명한 무지개길 드라이브 코스인데, 절경이었다. 상투적인 표현인 '숨이 막힐 것 같이 아름답다'는 말이 이해가 됐다. 아~ 하는 외마디 탄성과 함께 호흡이 잠시 정지하고 온 시신경이 쾌감에 젖어드는 그런 느낌이랄까. 핸드폰 배터리가 나가서 풍광을 담을 수 없는 게 아쉬웠지만, 그만큼 열심히 기억 속에 담았다. 나중에 차 사면 가족들 데리고 다시 와야지 다짐했다. 


다시 한참을 걸어 망사해수욕장에 도착했고, 둥글둥글 '몽돌' 위에 앉아서 트래킹을 마무리 했다. 생각해 보면 올해 참 많은 것들을 해냈고, 많은 것들을 경험했는데 왜 그렇게 마음 한 구석이 허전했을까 싶다. 어쩌면 평생 안고 가야 할 구멍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가감없이 30km를 9시간 동안 걸었다. 발에 물집이 잡힐 것 같았고, 얼굴은 결국 화상 수준으로 타버렸다. 하지만 젊은 날의 치기랄까. 그런 게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자신에게 주는 선물인 거다. 


누군가가 말했다고 하지. 그 도시를 그 풍경을 온전히 느끼려면 걸어봐야 한다. 길에 대한 예의는 걷는 것에서 완성된다. 문득 걷는 것이 인생이고 인생이 걷는 것인 그런 삶이 살고 싶어진다. 아마도 그렇게 될 것 같다. 난 언제나 내 꼴리는 대로 살아 왔고, 그것에 책임져 왔고, 후회는 조금 뿐이었다.




 

     













산허리에 난 길이 내가 걸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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