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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여행

하회마을

by 오송인 2014.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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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여행은 나쁘지 않았다. 별 기대없이 갔고 바람 쐬고 온 것으로 만족한다. 하지만 하회마을은 볼 게 없다. 부용대도 그냥 그랬다. 다만 부용대로 넘어가는 배에서 일하는 아저씨의 긍정성이 놀라웠다. 관광객을 한 명 한 명 챙기면서 사진은 어디서 찍는 게 좋은지 알려주고 사진 안 찍고 있으면 추억 담아가야지 뭐하는 거냐고 귀엽게 재촉하시는데, 그렇게 다른 사람의 즐거움에 일조하는 데서 큰 보람을 느끼는 것 같았다. 강을 오가는 단순 반복적인 일에서도 기쁨과 의미를 찾을 줄 아는 건강한 사람 같았고 잊지 못할 인상을 남겨주었다. 


다른 에피소드도 있었는데 SBS 방송팀이 김동현, 혜은이 부부와 부용대에서 하회마을 쪽으로 강을 건너려 했다. 하지만 배에서 일하고 있던 다른 아저씨(선장?)는 이 배는 왕복으로만 이용 가능하고 편도로는 탑승할 수 없다고 강경하게 나왔는데, 권위적인 대상이라 여겨진 것에 대한 분노가 느껴졌다. 방송팀에서 하회마을 사무국에 전화해서 선장 아저씨에게 사무국과 통화해 보시라고 전화기를 건낸 것도 화근이었다. 핸드폰을 넘겨 받은 선장 아저씨는 서류 좋아하시니 서류 가져오라고 성을 내셨고 결국 김동현 아저씨도 같이 성을 내며 언성 높이다가 배를 안 타고 먼 길을 돌아가는 것으로 귀결됐다. 


이 사건을 두고 배에 있던 한 엄마가 아이의 질문에 답하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대여섯 살 정도 되는 아이가 '엄마 선장 아저씨 왜 저 사람들 안 태워줘?'라고 엄마에게 물었는데 엄마는 선장 아저씨 기분이 안 좋아서 태워주기 싫었나봐 라고 대답했던 것이다. 배삯이 3000원이었는데 현금이 2000원밖에 없어서 선장 아저씨한테 사정했을 때 처음에 안 된다고 거절했던 일도 있고 해서 나는 원래 저렇게 과도하게 원칙 중시하고 화가 많은 사람이겠거니 성격에 귀인하고 있었는데 그 엄마가 심리평가로 밥 벌어 먹고 사는 나보다 객관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었다. 



부용대에서 바라본 하회마을


부용대에서 나와 별신굿 탈춤공연을 봤다. 안동여행의 백미는 무료로 진행된 이 탈춤공연이었는데 하회마을이 세계문화유산이라기보다 이 탈춤공연이 세계문화유산이었다. 풍년을 기원하며 신을 기쁘게 하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별신굿'이었고, 사물놀이패의 흥겨운 장단과 어우러져 큰 감흥을 안겨 주었다. 특히 백정이 나오는 씬에서 함께 등장한 소가 '불알'을 흔들며 관객에게 오줌(물총) 세례를 퍼붓는 대목에서 모든 관객들이 빵빵 터졌다. 백정이 제일 앞에 앉아 있던 날 가리키며 쓸개 없게 생겼다고 소 잡아서 떼어 낸 쓸개를 사라고 할 땐 얼굴이 새빨개지기도 했다. 





집에 오는 길에도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 세상에 버스를 잘못 타서 상주까지 갔다. 정신하고는..; 기사 아저씨한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어보니 난 모르겠다며 안동에서 상주까지 버스비는 끊어오라고 해서 어쨌든 나의 과실이니 울먹이며 표 끊어서 드렸다. 다 합쳐서 버스비 28000원을 날린 것인데 정서조절하느라 애먹었다. 처음엔 호흡에 집중했고, 괜히 아저씨한테 화가 났지만 '저 아저씨 자기 일에 충실한 것뿐이고 결국 내 잘못 아닌가 돌이킬 수 없는 일 받아들이자'며 상황을 수용했다. 불쾌한 감정은 오래 가지 않았다.  


안동에서 상주까지 가는 한 시간 반 동안 죽음의 수용소를 다 읽었다. 자기를 초월(특히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핵심이라는데 그래서 뭐 어쩌라구 소리가 절로 나온다. 다만 선택과 책임이라는 자율의 문제는 울림이 있었다. 상황을 변화시킬 수는 없어도 상황을 대하는 태도는 변화시킬 수 있고, 바로 이 지점에 침범할 수 없는 인간의 존엄성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일요일엔 광화문 스폰지하우스에서 아녜스 자우이의 해피엔딩 네버엔딩을 봤다. 이 영화는 그녀의 전작인 나에게서 온 편지보다 재미가 없었다. 나에게서 온 편지의 따뜻한 유머도 별로 찾아볼 수 없었다. 비추. 영화가 끝난 후 교보에 들러 사려고 했던 책들을 훑어 봤다. 첫 번째가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였다. 책이 쉽고 재미있어서 선 자리에서 꽤 읽었다.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여자를 인격이 아닌 몸으로 보게 되는 건 섹스만이 유일한 정서 표현의 수단인 남자의 보편적 비극이라는 것. 대개 친밀감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막무가내로 성적인 접촉을 시도하게 되는데(극단적으론 성폭력) 자신이 원하는 게 섹스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친밀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남자는 많지 않은 것 같다. 결국 감정표현불능이 문제다. 감정을 잘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광폰지에 걸려 있던 포스터. 제목이 호기심을 자아낸다.


열심히 봤던 다른 책은 [다이어트 진화론]인데 이 책의 저자는 트위터와 블로그도 열심히 하는 코치 D라는 분이다. 이 책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헬스장의 머신이 돈벌이 수단일 뿐 운동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음 속으로 '좋아요'를 백 번쯤 눌렀다. 그리고 운동은 고강도로 이틀 정도만 하면 되고 휴식도 운동의 일환이라는 점을 다시금 되새겼다. 운동하는 날을 대폭 줄일 생각이다. 다른 유용했던 정보는 벌크업을 하려면 8~12회 정도 반복할 수 있는 무게로 하고, 근육 크기가 아니라 스트렝스를 키우고 싶으면 5회 안팎으로 들 수 있는 무게를 택하라는 것이었다. 또 고강도 운동은 운동 후에도 체지방을 분해시키기 때문에 굳이 달리기 할 필요 없다는 주장도 설득력 있었다. 여자들도 마찬가지다. 스쾃이나 밀리터리 프레스 등 스트렝스 키우는 운동을 하고 러닝머신은 버리는 게 좋다. 이런 운동하는 게 라인 살리는 데도 훨씬 더 효과적인데, 근육 나올까봐 무서워하는 게 태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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