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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여행

폭우로 중도 하산한 지리산 종주 후기

by 오송인 2015.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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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날 총 거리 20km, 평균 속도 2.2km/h, 총 시간 13시간 38분.

하루 20km 이상의 산행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대장님을 잘 만나서 호강하면서 산행했다.



지리산 다녀왔다. 화엄사에서 천왕봉 찍고 중산리로 하산하는 종주 코스를 간 것이었는데, 태풍 찬홈의 영향으로 지리산에도 폭우가 내려서 예정대로 벽소령 대피소에서 1박을 한 후 다음 날 매섭게 내리는 폭우를 뚫고 음정으로 두 시간만에 하산 완료했다. 


작년 11월에 소개팅으로 만났던 사람 중에 산과 백패킹 좋아하는 A라는 분이 있다. 산이 좋다 보니 A의 소개로 가입하게 된 네이버 등산 동호회 활동을 열심히 하게 됐고, 결국 A가 리딩하는 벙개에 참여하여 지리산까지 다녀오게 됐다. 일정에 필요한 모든 준비물을 꼼꼼하게 알려주고 식재료도 철두철미하게 계산해서 챙겨오는 것을 보고 놀랐다. 삼프터 때 A가 선약 위에 나와의 약속을 또 잡아서 삼프터가 무산된 비하인드가 있는데, 알고 보니 정말 계획적이고 배려심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필요 이상의 무게로 배낭을 꾸려가서 A에게 근심걱정을 안겨 주었다. 화엄사에서 시작할 때 배낭 무게가 14.8kg으로 체력만 믿고 너무 무식하게 배낭을 꾸려간 것 같다. BPL(백패킹 lite)에 반하는 BPH(백패킹 헤비)의 대명사로 동행했던 사람들에게 각인됐다. 안나푸르나에서 포터나 할까.. 창피했다. 아이스팩에 바나나 한송이 등등 이딴 걸 왜 꾸려 갔는지.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ㅋ 다음에는 무겁게 가져가더라도 과일 같은 건 버리고 막걸리 같은 걸로 꽉 채워 갈 생각이다. 술이 잘 팔림. 아무튼 배낭도 무겁고 노고단까지 올라가는데 초반에 몸이 안 풀려서 죽을 맛이었다. 다행히 노고단 대피소에서 아침 먹고 나서부터는 몸이 풀려서 산행에 별 무리가 없었다. 이 때부터는 거의 선두였다. 


걷고 걸어 연하천 대피소 도착한 직후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는데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며 밥 먹으니까 좋았다. 대피소가 공사 중이었고 사람도 많아서 시끄럽고 정신 없고 난민이 된 것 같았으나 A가 꼼꼼하게 준비한 식단 덕에 정말 맛있게 밥 먹었다. 


올 초 지인들과 덕유산에 갔을 때 장비 있는 사람이 없어서 그냥 다들 전투 식량 챙겨갔는데, 이번에 확실히 느낀 것은 먹거리도 잘 준비해 가면 산행의 즐거움이 배가 된다는 점이었다. 이번 산행에서는 나 빼고 모두 백패킹을 하는 사람들이었고 장비도 다들 갖추고 있어서 저녁에는 돌판에 소고기까지 구워 먹었다. 고기를 정말 질리도록 먹었다. 술도 주량에 비해 많이 먹었는데 그래서인지 같이 간 일행 말에 따르면 누운 지 오 분도 안 돼 코 골았다고 한다. ㅎ 종주 때 대피소에서 이렇게 꿀잠 잔 것도 처음이었다. 늘 다른 사람들 코 고는 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잤는데 이번엔 내가..


다음 날 음정으로 하산하는 길 위에서 계곡의 물이 불어나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장관을 여러 번 목도했다. 팬티까지 젖을 정도로 비 맞으면서 가도 좋았다. 음정에 거의 다 도착하니 택시들이 올라오고 있었고 그 중 한 대를 잡아 타고 터미널에 왔다. 터미널 근처 사우나에서 몸을 풀고 중국집 가서 고량주, 이과두주로 다들 얼큰하게 취할 때까지 달렸다. 


C가 A로부터 소개팅 얘기를 들었는지 술 취한 상태에서 A와 내가 소개팅으로 알게 된 사이임을 폭로했는데 이 때부터 다들 A와 나를 엮으려고 해서 살짝 불편하기도 했다. A와 친한 것도 아닌 상황에서 그러면 더 어색해지는 법인데. ; 암튼 고터 도착해서 맥주로 마무리. 물 탄 맥주 세 잔에도 취할 정도로 몸이 피곤했고 집에 와서 짐도 못 풀고 뻗었다.


산은 혼자 가는 것보다 여럿이 같이 가는 게 좋다. 진작에 사람들하고 같이 다닐 걸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번 주 주말에는 주왕산 간다. 이번에는 28명 정도 참석하는 산행인데 이번에도 A가 리딩한다. 대단한 체력의 소유자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멋있음. 아무튼 이렇게 많은 인원이 가는 산행은 좋아하지 않지만, 산을 보고 간다. 후미에서 천천히 경치 구경하며 가야지. 기대된다.



@노루목 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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