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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일상

기복신앙

by 오송인 2015.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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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나 정서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 아닌 누군가를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욱이 기도의 팔할은 기복신앙적인 요소가 많다고 여겨진다. 누구누구 잘 되게 해달라는 내용의.


그런데 무엇이 잘 되는 것이고 못 되는 것인지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신밖에 없음에도 기도 내용에는 이미 그것에 대한 기도 행위자의 판단이 깔려 있다.


예를 들어 자식이 좋은 대학 가는 것이 잘 되는 것이고, 연봉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것이 잘 되는 것이다.



기복신앙적인 측면은 영적인 각성 수준으로 보자면 아기가 걸음마 떼기 시작하는 측면에 가깝고 통과의례 같은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비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인간이 기복신앙적인 태도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생각한다면 종교라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 될 때가 많다.


종교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나라를 위한 것일 때가 많다.



유일신이 있다고 믿으며 유일신에게 가는 여러 종교적 장치들의 건강한 측면을 인정하지만,


알라나 예수 등으로 이름 붙여진 하나님은 인간의 욕망이 투사된 허구일 때가 많으며 이 허구로 인해 수많은 정치적 분쟁과 테러와 사상자가 발생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너희들이 찾는 그런 하나님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있다면 아마도 욥에게 그랬듯이 이해불가한 엄청난 고난을 선사하며 그럼에도 나를 믿겠느냐고 물어볼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난 가운데 함께 하며 위로를 건내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믿음이라는 단어의 무게에 합당하지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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