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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서평

어떻게 죽을 것인가 / 아툴 가완디

by 오송인 2016.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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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곳이 우리 엄마가 원하는, 혹은 좋아하거나 필요로 하는 곳인가? 하고 생각하는 자녀는 드물어요. 그보다는 자신의 눈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지요. 자녀들은 스스로에게 이런 식으로 묻는다는 것이다. 이곳에 엄마를 맡겨도 내 마음이 편할까?"


어떻게 죽을 것인가, 168-169쪽.



병원이나 요양원 시설이 아무리 좋아도 매일 똑같은 시간에 기상해서 약을 먹고 식사를 하고 취침해야 하는 그런 군대 같은 환경에서는 사생활을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최소한 그런 환경은 안전을 보장해 준다. 급작스럽게 증상이 나타났을 때 신속하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늘 곁에 있다는 것은 분명 자식들에게 큰 위안이 된다.


저자는 현대의학이 안전에 치중한 나머지 한 개인이 자기 삶의 마지막 페이지들을 써나갈 수 있게 돕는 것에 대해서는 무지했음을 지적한다.


저자의 주장은 간단하다. 몸과 정신이 쇠약해져서 말을 잘 안 듣는 지경에 이를 때조차도 가능한 한 환자가 자기 삶의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게 도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많은 실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아울러 시스템의 뒷받침뿐만 아니라 평소 환자에게 물어보아야 할 질문들이 있다고 책의 여러 대목에서 재차 강조한다.


저자가 말하는 호스피스 캐어 같은 시스템이 국내에 얼마나 보급돼 있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나는 이 질문들에 좀 더 눈이 갔다. 질문은 다음과 같다.


현재 가장 두렵고 걱정스러운 게 무엇인지, 남은 삶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무엇인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포기할 수 있는 것과 그럴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이런 것들을 환자와 상의하는 것은 죽음을 앞둔 환자가 존엄을 유지하면서 죽어갈 수 있게 상호의사결정하는 데 있어 기준이 되는 바, 환자와 보호자가 용기를 가지고 이런 것들에 대해 얘기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질문은 보다 구체적인 것일 수도 있다. "스스로 음식을 먹지 못할 경우 관이나 정맥 주사로 영양 공급을 받기를 원하십니까?"(274쪽)와 같은.


책을 읽다 보면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지에 관해서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가령 며칠이나 더 연장될지 모르는 수명을 위해 공격적인 수술을 받기보다는 그런 치료를 포기하고 얼마 남지 않은 생이라도 최대한 의식이 분명한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또 나처럼 삶에 대한 통제력을 중시하는 사람에게 사지마비가 와서 똥 싸고 뒤처리도 할 수 없는 지경이 된다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도 생각했다.(하지만 어떤 사람은 사지마비가 와도 축구경기를 보면서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만 있다면 그걸로 만족해 할 수도 있다. 책에 그런 사례가 나온다. 물론 축구를 즐기지 않는 사람의 은유적 표현이었으나.)


사람은 저마다의 가치와 목표를 선택하며 평생 살아간다.


죽음을 앞두고서도 이런 작업이 지속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는 것, 누구나 자기 삶의 주도권을 잃지 않은 채 죽음을 맞을 수 있다는 것, 하지만 현대의학은 이런 문제에 대해 이제 갓 눈뜨기 시작한 신생아와 같아서 앞으로도 수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할 수 있다는 것, 그게 이 책이 전하는 요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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