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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아마 다섯 번째로 읽는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인 것 같다. 도스토예프스키 자체가 문장이 잘 읽히는 작가는 아닌 것 같다. 러시아 사람들도 도스토예프스키를 많이 읽진 않을 것 같음. 그만큼 작가의 입을 통한 직접적 심리묘사나 행동을 통한 간접적 심리 묘사의 디테일이 남다르다. 의식의 흐름으로 체감 A4 다섯 장쯤 끌고 갈 때도 있음. 차고도 넘칠 정도의 복잡성에 머리가 빙글빙글.. 감정은 대체로 복합적이게 마련인데 그런 걸 잘 드러낸다. 예를 들어 제일 사랑하는 사람인 가족에게 제일 모진 말을 하기도 했다가 그런 자신을 책망하기도 했다가 다시금 사소한 일에 열폭하는 그런 인간적인 속성들.
고통스럽지만 두꺼운 책을 다 읽게 되는 건 단 한가지 이유 때문이다. 상황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매우 궁금하게 만든다는 것. 이건 단점이기도 한데 내가 읽은 도스토예프스키 네 작품 중 두 번 읽고 싶은 책은 없었다. 결말을 아는 추리소설을 굳이 한 번 더 읽지 않는 것과 비슷하달까. 더욱이 분량 빡쎈 건 차치하더라도 뭔가 와닿는 포인트가 없었음. 놓친 게 많은 것 같고 디테일에 대한 이해를 더 해보고 싶어서 거의 3달에 걸쳐 억지로 두 번 읽은 적은 있긴 하다(죄와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 하지만 지금도 이 두 작품에 대해 얘기해 보라고 하면 별로 할말이 없음..;
다만 이번 작품에선 백치로 등장하는 미쉬낀의 성격에서 부러운 점이 많다. 누가 봐도 성숙한 인간의 표본이라 할 만한 캐릭터이다. 이를 테면, 폭력에 폭력으로 대응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경멸이나 조소를 받을 때조차 그 사람이 '타고난' 개객끼라서 그런 게 아니라 그렇게 행동하게 만든 환경적이고 상황적인 요인들이 있을 거라 여기는 부류이다. 현실에선 찾아보기 힘든. ㅎ 더욱이 얼굴만 봐도 그 사람의 본질이 어떤 것인지 유추해 낼 수 있는 초능력 같은 섬세함을 지닌 사람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읽어내고 그걸 선한 방향으로 이용하기 때문에 미쉬낀을 만나는사람은 누구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를 좋아하게 된다. 이하 그의 성격의 단면을 볼 수 있는 문장 발췌
"제 생각에 장군님과 저는 생김새나 환경이 아주 다르고, 공통점도 별반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습니다. 공통점이 없다고 여겨지는 것일 뿐이지, 실제로는 안 그런 경우가 많기 때문이지요. 그런 건 다 인간의 게으름에서 비롯되는 겁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대로 서로서로를 분류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백치, 열린책들, 세계문학판 11쇄, 48쪽.
한 사람을 온전하게 이해하고자 노력해 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얘기 같다. 그런데 11쇄나 찍었네.. 의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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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어떻게 비폭력으로 대응하지? 난 이 부분이 와닿지 않았다.
지난 토요일에 헬스장에 갔다. 동사무소 헬스장이고 탈의실이 좁다. 성인 두 명이 들어서 있으면 꽉 차는 그런 탈의실인데 운동을 하다가 핸드폰을 탈의실에 있는 사물함에 두기 위해 탈의실 문을 열었다. 아저씨 두 명이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그런데 그 중 덩치가 산만하고 배도 산만큼 나온 아저씨가 내게 한소리를 했다. "사람들 좀 빠지고 나서 들어오면 안 돼요?" 짜증섞인 말투였다. 나는 약간 벙쪄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물함에 핸드폰을 두고 나왔다. 그런데 이게 생각할수록 빡치는 것 아닌가. 이런 씨발라먹을 놈 어디다 대고 짜증이지? 니 마누라한테나 짜증 부려라 이 개객끼야 라고 말하지 못하고 쭈구리처럼 그 상황을 벗어나기 바빴던 자신이 약간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내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했다. (역시 난 배운 사람! ㅎ) 그 상황에서 내가 똑같이 화를 냈다면 어떤 식으로든 상황이 좀 꼬였을 게 분명하고 심각하게는, 그 개객끼가 선빵을 날리기라도 했다면 난 뼈를 추리지 못했을 것이다.(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키가 180쯤 되고 100kg 이상 나갈 것 같은 거구였다 ㅎ)
어른인 척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 중 하나는 상대방의 분노 반응에 똑같이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반응해서는 원하는 결과를 얻어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열에 아홉은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물론 연애관계에서는 이게 잘 안 됐다. 거의 낙제점.) 똑같이 화내지 않았다고 해서 자신을 한심스럽게 여길 필요는 없다. 똑같이 반응하면 똑같이 개객끼가 되는 것일 뿐. 하지만 모욕을 당하고서도 미쉬낀처럼 상대방의 상황을 고려하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기에 성격에 귀인했다. 이는 그 전에 그 개객끼가 헬스장 기구를 수리하러 온 기사에게 짜증내던 광경을 본 적이 있기에 한결 수월한 작업이었다. 기구의 어떤 부분을 반대 방향으로 끼워 놓은 것을 발견한 개객끼는 일면식도 없는 수리 기사에게 짜증 발사하며 개매너 시전.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는 더 예를 갖춰서 공손하게 말하지 않나? 그 광경을 떠올리며 그 거구의 개객끼는 투덜이 스머프처럼 본래 짜증이 많은 인간이구나 생각하니 화가 좀 가라앉았다. 만약 그 개객끼가 나를 살짝 밀치기라도 했다면 상황이 어떻게 됐을까? 질 게 뻔한 게임이었어도 난 맞대응했을 것이다. 폭력에 비폭력으로 대응하는 게 가능한가? 아직 백치 전체 분량의 절반도 못 읽어서 미쉬낀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도스토예프스키는 가능하다고 보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어느 미치광이나 바보가, 아니면 미치광이인 척하는 악당이 뺨을 때리면, 뺨을 맞은 사람은 평생 치욕을 안고 살면서 피로써 명예를 회복한다든가, 아니면 상대방이 무릎을 꿇고 빌어야만 그 불명예를 씻을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내 생각에 그건 실로 어리석고 독단적인 짓이에요."
같은책, 187쪽.
미쉬낀 같은 성격의 임상가가 되고 싶지만, 임상가 모두가 미쉬낀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을 필욘 없는 것 같다. 성격이 좀 좋지 않더라도(음.. 나도 좋은 성격은 못 되는 것 같다.. 약간 스키조이드하고 약간 옹고집이고.. 잘 웃는 만큼 잘 빡치고.. 이하 생략) 임상가의 성격 팩터보다는 내담자에게 관심을 기울이려고 노력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봄. 누가 봐도 별로인 임상가도 어떤 내담자에게는 최고의 치료자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최고의 선물이자 누군가에게는 최고의 개새끼다. 내가 개객끼라고 욕한 그 배불뚝이 아저씨도 가족들의 두터운 신임과 사랑을 받고 있는 아빠일지 모를 일. 나를 개객끼로 여기고 있을 사람은 누군지 문득 궁금해진다. 민폐 안 끼치려고 노력하면서 살아 왔다고 여기는데 그건 내 생각일 뿐.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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