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치 상권을 힘들게 다 읽었다.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은 언제나 쾌보다는 불쾌에 가까운데 이름도 잘 안 외워지는 많은 등장인물과 어느 한 장면도 허투루 지나칠 수 없는 치밀함 때문에 그렇다.
뇌에 부하가 너무 많이 걸리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백치 미쉬낀 공작은 누군가의 말을 빌리면 일종의 실험적인 인물이다.
현실에서는 절대로 존재할 수 없는, 모든 것을 관용과 이해로 받아들이는 그런 신적인 캐릭터다. 자신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는 무한 사랑에 어떤 사람들은 그를 백치라고 놀려대기도 한다.
이러한 인간이 현실 속에 들이닥쳤을 때 주변 인물들의 반응이 흥미로운데 크게 보면 미쉬낀을 극도로 미워하거나 미쉬낀의 태도에 감화 받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다.
아.. 감화 받은 척하면서 미쉬낀의 관용과 이해를 이용해 먹으려는 작자들도 등장한다.
이런 인간들 때문에 미쉬낀도 의심이 많아지고 그렇게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수치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상권에서 미쉬낀은 끝까지 다른 사람에 대한 믿음을 견지하며 미쉬낀을 이용해 먹으려 했던 사람(껠레르)에게조차 그 사람의 입장에서 그의 선의를 읽어내려고 무진장 애를 쓴다.
이런 태도의 근본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인간관이 깔려 있다고 보았다.
가장 선한 생각을 할 때조차 가장 저열하고 더러운 생각을 동시에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인간이라는 이해 말이다.(물론 반대도 가능하다.)
작가의 이런 인간관이 미쉬낀에게 그대로 투영돼 있기 때문에("두 생각이 한꺼번에 떠오를 때가 종종 있는 법이에요. 나는 끊임없이 그걸 체험해요" 열린책들 세계문학판 11쇄 478쪽) 미쉬낀이라는 캐릭터는 다른 인간을 함부로 심판하지 않는다.
미쉬낀이라는 캐릭터를 보면서 인간의 양면성, 특히 자신의 더럽고 추악한 모습, 그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 대한 신뢰의 기반이 되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해봤다.
상대방도 나와 같이 좋은 면 나쁜 면 다 가진 인간일 뿐이다 라고 생각하면 최소한 한 번은 속아줄 수 있지 않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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