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하우스 모모에서 타르코프스키 회고전 중인데 공짜다. 일요일까지 하니까 관심 있는 분은 아트하우스 모모 홈페이지 들어가 보시길.
무료이긴 해도 이런 난해하고 심오한 예술영화가 매진될까 싶어서 넋 놓고 있다가 거의 제 시간에 갔다.
의외로 매진돼 있었으나 표를 받아 놓고 안 오는 사람들이나 반환되는 표가 있어서 운 좋게 영화를 볼 수 있었다.
20대 초반에 어둠의 경로로 보고 거의 10년만에 스크린으로 다시 보는 거였는데 여전히 난해했다.
지루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는 것이 20대 초반에 봤을 때와의 차이라면 차이다.
줄거리야 뭐 인터넷 조금만 뒤져보면 나오는 것이니 생략하고, 굉장히 종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는 영화라 여겨졌다.
거두절미하고, 주요 등장인물 세 명이 목숨을 걸고 탐사를 가는 '구역'이라는 장소는 주인공의 설명에 따르면, '더이상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상태에 처해 있지만 겸손함을 유지하는 사람'(기억에 의존하는 거라 정확하진 않다)에게 그 사람의 무의식적인 소망을 들어주는 신성한 곳이다.
과학자가 왜 목숨 걸고 여기까지 왔는지에 관해서는 영화 말미에 밝혀진다. 스포일인데.. 그는 한 사람의 무의식적 소망이 실현됐을 때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자각하고 있고, 이에 '구역'을 파괴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좀 모호하다. 작가는 무언가 희망을 잃어버렸고 낙담해 있는 상태 같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겸손함을 유지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여기서 말하는 겸손함은 신성한 '구역'에서 자신의 의지를 내려놓고 주인공의 가이드를 따르는 것이 아닐까 하는데, 작가는 주인공의 가이드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하기도 한다. 그는 단지 소설을 쓰기 위한 어떤 영감을 얻기 위해서 '구역'에 들어왔던 것일까? 소망을 이루기 위해 왔다고 보긴 어려워 보인다.
과학자와 작가 모두 주인공이 생각하는 그런 의도(소원을 이루기)를 가지고 온 것은 아닌 것 같으나, 주인공은 이전에도 그랬듯이 '잠입자'로서 과학자와 작가를 구역의 핵심 장소로 인도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영화 말미에 가면 주인공의 가이드를 완전히 무시하고 과학자와 작가가 합심하여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키려 한다.
그들은 구역이라는 장소가 지닌 초월적인 힘을 실제로 느끼고 두려워하며, 그래서 더욱 그 장소를 파괴하려 한다.
하지만 결국 그러지 않는데, 이는 구역을 신성시하는 주인공의 태도가 타인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것임을 깨닫게 되기 때문인 것 같다. 주인공은 다른 사람의 소원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순수한 마음에서 잠입자 역할을 하고 있고, 무엇보다 그 역할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찾았다고 고백한다. 이 말이 과학자를 감화시킨 것 같다.
신성한 힘을 두려워하는 마음보다 주인공에 대한 연민이 더 컸달까.
절망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과학자가 그랬던 것처럼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듣고 그 사람의 심정을 상상해 보는 능력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또한 궁극적으로는 주인공이나 과학자 모두가 그랬던 것처럼 다른 사람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이 신성의 발현 아닐까도 생각해 보았다.
이런 해석은 영화 속에서 작가의 역할을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감독의 의도와는 관련 없는 자의적 해석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구역(구역이라는 말을 신으로 대치해도 될 것 같다)을 경외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다른 인간을 compassion을 갖고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라고 마음대로 결론 내렸다. 이런 것이 신적인 것이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지점 아닐지.
덧. 연민 때문에 구역을 폭파시키지 않았다는 생각에는 충분히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작가는 물론이거니와 과학자조차 자신의 욕망, 즉 무의식적 소망에 대해서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구역의 핵심 장소에 폭탄을 가지고 들어갔는데 그의 무의식적 소망이 전혀 다른 것이었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의 소망에 대한 확신이 투철해 보이는 주인공과 대비되는 점인데, 이는 영화를 전혀 다른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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