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머리 부여잡고 거의 다 읽었다. 500페이지쯤 되나..
그리스도적인 주인공으로 인해 주변 인물들이 개과천선하게 된다는 그런 뻔한 이야기가 아니라 좋다.
오히려 주변 인물들의 말로는 하나 같이 좋지가 않다.
선한 영향을 받았던 사람도 결국에는 인간 본성의 어두운 그림자를 떨쳐 내지 못하고 미쉬낀을 만나기 전보다 더 안 좋게 돼 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주인공은 끝까지 다른 사람에 대한 심판을 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심지어 살인을 저지른 누군가를 위로하려고 애쓴다.
주인공 미쉬낀과의 대조를 통해서 인간 본성의 이중성을 세심하게 부각시킨 것까진 좋았는데, 이런 위로를 보면서 이폴리뜨나 가냐가 그랬던 것처럼 미쉬낀에 대한 이질감을 많이 느꼈다,
인간을 심판할 수 있는 것은 신뿐이다 라는 신념에는 공감이 되지만, 지하철에서 새치기만 당해도 당장 상대방을 인간 이하의 저질로 판단하는 게 범인의 마음인 것이다. 스포일이긴 한데..
하물며 자신이 연민의 마음을 가지고 있던 여자를 죽인 남자를 위로하는 장면은 도저히 이해불가인 것이다.
이런 면에서 이 소설은 모순적이다.
즉, 인간이 최고로 선한 생각을 할 때도 최고로 '개같은 생각'을 하는 존재라는 이해가 있음에도 미쉬낀이라는 '인간'을 창조해낸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미쉬낀과 같은 이상적 태도에 도달하진 못하더라도 그런 이상을 지향하기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이상을 지향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 걸까.
예를 들어 자신의 이익이 타인에 의해 명백하게 침해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미쉬낀처럼 타인을 용서할 수 있을까? 한 번 정도는 용서해 주는 것이 미쉬낀과 같은 종교적인 삶을 지향하는 태도인 것일까? 아니면 최소한 두 번은 용서해야 하나?
내게 해악을 끼치는 사람이 있다면 한 번은 용서해 주고, 그 다음부터는 거리를 둔다라는 것이 할 수 있는 최선 아닐까 싶다가도, 거리를 둘 수 없을 정도로 얽혀 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라는 문제가 남는다.
이상을 현실에 적용시켜 보려고 애쓰는 사람은 당장 많은 번민에 부딪히게 마련이다.
미쉬낀도 이런 번민에 시달리긴 하지만 그는 현실에 있을 법하지 않은 인간이고 그래서 결국 그리스도가 갔던 길을 간다.
우리 범인들도 그의 길을 따라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삶의 극히 일부분에서 그런 숭고함이 잠깐씩 빛을 발할 뿐인 것은 아닐지.
더욱이 이 소설은 그런 숭고한 태도가 멸시와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다분하며, 좀 나은 상황이라고 해봤자 백치 취급을 받는 것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야말로 고난의 길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그 길이 인간이 걸어야 할 길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놓친 부분이 많아서 한 번 더 읽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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