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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심리학/심리평가

단상

by 오송인 2018.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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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M 진단체계를 기준으로 장애를 평가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환자가 지닌 강점을 보는 것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최소한 왜 그 상황이나 시점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최대한 객관적이고 공감적으로 기술하는 것이 필요한데, 객관과 공감을 양립시키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다. 환자가 보고서를 직접 읽는 경우는 정신과 장면에서는 드문 것 같다. 아마 이게 팩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고서 작성 시에는 늘 환자가 이 보고서를 읽는 상황을 염두에 두며 쓴다. 환자가 보고서를 읽었을 때 어떤 심정일까를 염두에 두면 꽤나 참담해진다. DSM 진단체계는 결국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체계다. 어디까지가 정상이고 어디까지가 비정상인지에 대한 논의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지만, 이런 진단체계를 반영하는 심리평가보고서는 필연적으로 환자에게 비공감적으로 다가오는 무엇일 수밖에 없다. 객관적이면 객관적일수록 비공감적일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다. 나보고 비정상이라고 하는데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이를 보완하기 위해 다른 프레임을 잠시 빌려오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그 대안 중 하나가 정신역동적인 사례 이해다. DSM 체계와 어쩌면 대척점에 있는 정신역동적 분석 틀을 끌어와야 하는데, 사실 대학원에서 교과서를 통해 배운 정신역동은 아무래도 살아 있다기보다 죽어 있는 무엇이다. 제대로 배웠다고 보기 어렵다. 제대로 배우지 못 한 것을 끌어오면 안 끌어오느니만 못 한 결과를 낳는다. 결국 상담사례를 정신역동적으로 접근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워크샵이나 수퍼비전 등을 통해 계속 공부하는 수밖에 답이 없는 것 같다. 그렇게 배운 것을 심리평가서 작성에 응용하려는 노력도 필요할 것이고. 


병원에서는 심리평가 결과 전달을 주치의가 하는바 일단 보고서만 올라가면 내 권한을 벗어낫다고 생각하기 쉽다. 안일해지는 것이다. 더욱이 주치의가 심리평가서를 제대로 보지 않고 단지 돈벌이를 위해 낸 것이라고 여길 경우 기계적인 심리평가 보고서 작성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각주:1] 이런 사고 방식으로는 병원에 수십 년을 몸 담아도 실력이 늘 수가 없다. 내가 차린 센터에 온 환자고 이 환자 치료도 내가 직접 해야 되는 상황을 가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정말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고, 그게 실력 향상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딩이 많으면 이런 마음가짐 갖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 마음도 잘 안다.

  1. 병원 '장사'에 이용되는 심리평가의 폐해와 전문가로서의 부끄러움에 대해서는 기회가 되면 나중에 다른 글에서 다루겠다. 정말 양심적으로 운영하면 병원은 망한다. 이건 일차적으로는 구조적인 문제고, 임상심리전문가 입장에서는 윤리적인 딜레마가 걸려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해서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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