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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일상

사랑니

by 오송인 2018.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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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를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습관을 들였어야 했는데, 무서워서 안 가다 보니 금니를 씌운 곳에 다시 충치가 생겨버렸다. 금니를 씌워도 충치가 다시 생길 줄은 몰랐는데.. 치과의사의 잘못인지 내가 관리를 제대로 안 한 탓인지 둘 다인지 뭔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3~4만 원으로 커버할 수 있는 것을 사오십만 원이나 쓰게 생겼다.


어제 상태를 확인하러 치과에 갔더니만 밖에서만 봐서는 모르겠고 금니를 열어봐야 알 것 같다는 답이 돌아온다. 최악의 경우 임플란트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사랑니 네 개를 모두 발치하는 것이 좋겠다는 소견이다. 왼쪽 사랑니와 오른쪽 사랑니 모두 별다른 아픔도 없고 충치도 없어서 그냥 안 뽑고 살아 왔는데 이번에 가보니 양쪽 모두 충치가 생긴 상태였다.


수술 동의서 서명하기 전에 간호조무사(그냥 일반직원일 수도)가 설명을 하는데,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신경을 잘못 건드려서 평생 불구가 될 수도 있다는 대목을 짧고 명확하게 설명한다. 불구라는 단어를 쓰진 않았지만 불안한 내 귀엔 그렇게 과장되게 들렸다. 엉겁결에 전자패드에 사인을 하고, 마취가 효과를 보이기를 기다리는 동안 겁이 나서 검색을 시작한다. 다들 괜찮았는지? 수술동의 서명 전에 통상적으로 하는 얘기라 너무 겁먹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 중론인 것 같았다. 눈 딱 감고 수술에 임했다. 발치하는 것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한 15분 정도 걸린 것 같다. 오른쪽 윗니 아랫니만 뽑았고 왼쪽 사랑니 두 개는 다음에 뽑을 예정이다.


15분이 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다 끝나고 나니 30대로 보이는 의사양반에게 '감사합니다'가 절로 나왔다. 수술 과정에서 통증은 거의 느끼지 못 했다. 소리가 무서웠을 뿐. 수술 후 두 시간 정도 지나자 마취가 풀려가며 먹먹한 통증이 살살 밀려왔다. 머리도 살짝 아플 정도였다. 너무 피곤해서 그냥 잤다. 자고 일어나니 통증과 두통은 거의 사라져 있었다.


왼쪽 사랑니 뽑을 생각을 하니 갑자기 급 피곤해진다. 금니 썪은 것도 열어봐야 되고.. 돈 나갈 생각을 하니 피곤함이 배가되는 기분이다. 아내는 쓰지 않는 멀티탭은 늘 전원을 차단해 버릴 정도로 검소한 사람인데 아내한테 괜히 미안한 마음도 들고 그렇다. 원래 치과 들렀다가 안과 가서 다래끼도 째고 올까 했는데 피곤해서 말았다. 다래끼 째본 분은 알겠지만, 치과 신경치료에 버금가는 짜릿함(?)을 맛 볼 수 있는 상당히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건강 하나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20시간 동안 서울에 있는 다섯 개 산을 연달아 타고 그럴 정도의 자신감이 있었는데. 이젠 아내뿐만 아니라 나도 내가 약골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나의 평생 친구 디스크도 그렇고 두 달에 한 번 정도는 발생하는 다래끼도 그렇고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치과적 문제도 그렇고.. 난 건강한 사람이야 so 이런 병에 걸려선 안 돼 라고 생각한다면 참 인생살기 피곤해질 것이다. 그냥 '좀 불편하지만 어쩌겠어 죽을 병이 아닌 것만 해도 다행이지'라는 생각으로 천천히 치료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지나치게 통제 소재가 내부에 있는 사람들에게 질병은 통제 소재가 외부에도 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사건으로 작용한다. 세상일이 어떻게 다 내 마음대로 되겠는가. 그런 유아적 전능감을 치료하는 최고의 약은 죽지 않을 정도의 질병이 아닐지. 이렇게 또 삶의 균형을 맞춰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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