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임상심리학/심리평가

이혼소송

by 오송인 2018. 2. 23.
반응형

프로이트가 말했다고 하는 반복강박은, 이 개념이 씌인 책을 직접 본 적이 없고 몇몇 교과서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접했습니다. 제가 이해한 바로 반복강박은 원가족 안에서 기능적으로든 역기능적으로든 정서적으로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던 주요타인과의 관계 패턴이 현재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반복되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그 관계 패턴이 주로 역기능적일 때 반복강박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 같은데요. 예를 들어 친부로부터 학대 당한 여성이 자신에게 정서적/신체적 폭력을 가하는 남편과 살게 되는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이 여성이 그런 남편인 줄 알았다면 결혼을 하지 않았을 테죠. 이런 배우자를 무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과정에 대해 세밀하게 그려내는 것은 어려운 면이 있을 것입니다. 다만 원가족과의 관계에서 풀지 못 한 숙제를 현재 배우자와의 관계로 가져와서 해결해 보려 하는 무의식적인 시도라는 것이 이러한 현상에 대한 하나의 가설이라 할 수 있겠네요.


부부는 각자가 파트너에게 스스로의 엄빠처럼 굴기도 하고 엄빠의 모습을 배우자에게서 보려 하기도 합니다. 여자 입장에서 한 번 볼까요. 엄마처럼 살지 말아야지 다짐하며 살았는데 돌아보니 나 또한 엄마 같은 삶을 살고 있더라. 아빠 같은 남자랑은 결혼하지 말아야지 했는데 아빠 같은 남자와 결혼해서 살고 있더라. 저는 아들을 둘 키워요. 제 아들하고 남의 집 아들(=남편). 남자 입장에서도 이런 얘기는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엄빠를 비롯한 원가족과의 관계가 현재 결혼 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것을 의미하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어린이집 들어가기 전까지는 원가족이 세상의 전부입니다. 세상은 어떤 곳인지, 나는 어떤 사람이고 다른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다른 사람과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인지 등등 원가족 안에서 우리가 성격이라고 부르는 것의 prototype이 다 형성이 됩니다. 따라서 원가족과의 관계에서 불화가 심한 경우 현재 결혼 생활에서도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큽니다. 


원가족과의 관계에서 불화가 있다는 것은 자기, 타인, 세상에 대한 지각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경직돼 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상황이 달라졌음에도 달라졌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예전 틀을 그대로 지금 관계에 가져다 쓰니 파트너가 보기에는 고집 세고 자기중심적이라 느끼게 되는 것이죠(물론 다른 파트너도 똑같이 느낍니다). 배우자는 서로를 비난합니다. 저 사람 성격에 문제가 있다고. 이혼의 가장 빈번한 사유로서 '성격차이'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차이가 다름을 인정한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은 옆집 누렁이도 아는 사실이죠. 상대방에 대한 비난을 에둘러 말하는 것이죠. 나는 멀쩡한데 너가 문제가 있다. 설령 이혼 후에 한참 시간이 흘러 자기 문제를 인식하게 되더라도, 이혼까지 가는 과정에서는 감정이 격화돼 자기 문제를 보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누차 강조하지만 유유상종이라고 부부도 끼리끼리 만나게 돼 있습니다. 성격 발달 수준이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서 지지고 볶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쌍방과실이라고 예전에 어떤 인디밴드 노래를 본 것도 같은데. 촌철살인이죠. 성격 발달에서의 미숙함이 두드러질수록 부부싸움이 나면 나는 멀쩡한데 너가 문제가 있다 라는 가정을 서로가 갖게 되니 싸움이 더 악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합의점도 찾을 수 없는 평행선을 그리게 됩니다. 아마 부부 각자의 부모님 관계도 비슷했을 것입니다. 배운 게 도둑질이죠. 갈등 해결의 다른 옵션을 상상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부모와 내가 맺었던 관계 양식뿐만 아니라 내가 지각한 부모님의 부부관계까지 현재 결혼생활에서 재상영됩니다. 부모와의 관계가 좋지 않고 부모님 서로 간의 관계도 좋지 않았다면 결혼생활은 재앙이 될 가능성이 높겠죠. 


그토록 사랑스럽고 아름다웠던 내남자 혹은 내여자와의 관계가 재앙 수준으로까지 치닫는 것을 보며 당사자들은 어떤 심정일까요. 감히 그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느냐마는 분노, 배신감, 자기자신이나 상대방에 대한 연민, 체념, 허탈, 공허, 슬픔 등등 무수히 많은 감정들이 밀려올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그 감정들이 통합되지 못 한 채 산산조각난 마음 여기 저기에 파편처럼 흩어져 있을 테죠.


어떤 통계 자료에 의하면 한국 사회에서 세 커플 중 한 커플은 이혼한다고 하네요. 생각보다 높은 비율에 놀라게 됩니다. 요즘에는 가사조사관 제도도 있고 이혼 전에 숙고하는 시간을 줍니다. 법원에서 판사가 심리평가를 명령하면 외부 병원에 의뢰되기도 하죠. 그런 케이스를 저도 처음 맡게 됐습니다. 그래서 좀 생각이 많아지다 보니 이렇게 몇자 적게 되네요.


이혼 여부에 대한 결정은 판사가 할 것입니다. 제가 남편분이나 아내분에게 도움 드릴 수 있는 부분은 이혼을 하느냐 마느냐와 관련된 것이 아닐 것입니다. 두 분에게도 이 사실을 확실히 했습니다. 다만 원가족과의 관계와 그 안에서 벌어졌던 역할극이 재현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고, 가해자가 없는, 모두가 피해자인 그런 상황이라는 것 정도를 알려드렸습니다. 상대방의 부정적인 측면에 너무 몰두돼 있어서 상대방의 좋은 점이 무엇이었기에 결혼까지 했는지 탐색할 수 있게 도왔습니다. 그리고 이혼을 원하지 않는 당사자에게 상대방의 감정이나 판단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비난할수록 더 악화될 뿐이니, 상대방을 정말 놓치고 싶지 않다면 그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시라고 당부 드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면 현실을 수용하고, 답답하고 속상하고 화나고 슬픈 마음을 애도하는 게 중요하며, 상담심리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아보는 것도 하나의 선택일 수 있음을 알려드렸습니다.


이런 말들이 공감적으로 들렸는지 비공감적으로 들렸는지 도움이 됐는지 안 됐는지는 그 분들이 판단하시겠죠. 두 분 모두가 자신의 행복을 증진시킬 수 있는 선택을 하기 바라는 마음이 큽니다.   



이하 2018.02.28 덧붙임.


프로이트가 말한 반복강박을 투사적 동일시의 관점에서 설명할 수도 있겠네요. 예를 들어 자기를 가해했던 대상을 내면화하지만 이런 내적 특성을 인정하는 것은 어렵죠. 그래서 인정하기 어려운 자신의 내적 특성(가해자로서의 공격성)대로 상대방이 행동하게끔 만드는 무의식적인 과정이 투사적 동일시입니다. 이렇게 되면 인정하기 어려웠던 그 내적 특성을 통제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사실은 통제할 수 있다게 되었다고 착각하는 것에 불과할지라도.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