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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심리학/상담 및 심리치료

공감과 지지가 능사는 아님을

by 오송인 2018.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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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 대부분의 문제가 쌍방과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선하고 악한 그런 관계는 없죠. 상담에 오는 내담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담에 와서 신나게 남편 탓을 하는 내담자가 있다고 할 때, 내담자 말만 들으면 남편이 정말 XDR@#입니다. 하지만 내담자가 묘사하는 남편의 모습과 실제 남편의 모습 사이의 괴리가 어느 정도인지는 상담이 몇 회기는 진행이 돼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나중에는 남편이 정말 그렇게 나쁜 AS#@$#라기보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데는 내담자의 역할도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죠. 


자주 드는 예 중에 하나인데, 알코올 남용이 심한 남편이 있습니다. 무직에 집에서 술만 먹습니다. 기초수급비로 나오는 얼마 안 되는 돈도 모두 술 먹는 데 탕진해 버립니다. 초등학교 다니는 두 자녀에게는 걸핏하면 폭언이 이어집니다. 와이프에게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반면에 엄마는 어떻게 해서든지 아이를 제대로 키워보려고 애씁니다. 시에서 운영하는 상담소에 아이를 보내기도 하고, 저소득층 자녀를 대상으로 하는 자치단체의 멘토링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SES가 낮은 계층이 주로 이용하는 건강가정지원센터나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런 경우입니다. 이런 엄마가 상담소에 오면 상담자는 처음에는 남편이 @#$고 내담자가 희생자인 것처럼 느끼기 쉽습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이러한 관계 패턴을 형성하는 데 내담자가 어떻게 기여했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내담자가 남편 탓을 신나게 하고 있지만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데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 이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것인지, 혹은 남편이 술만 먹으면 개가 되지만 술 안 먹을 땐 여리고 보호해줘야 할 것 같은 모습을 보이고 부부관계에서 찰나의 해빙기가 찾아오는지, 혹은 남편이 @#$일수록 그런 남편에게 헌신하는 자신의 도덕적인 우월함에 도취하기 쉬워지는 것인지, 실제로 '선한' 내담자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염려 섞인 관심이 쏟아지며 남편으로부터 정신승리할 수 있게 되는지 등등에 관한 가설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죠.


내담자가 어떤 경우이든 간에 각각의 경우에는 장점과 단점이 존재합니다. 아무리 피학적으로 보이는 행동이라 하더라도 그 기원을 따지고 들어가 보면 그 행동이 기능적으로 작동하던 순간이 있게 마련입니다. 문제는 이제 더는 그런 행동이 기능적일 수 없는 상황에서도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 다른 행동의 가능성을 보지 못 한다는 것이죠. 이 때 상담자의 역할은 현재 남편과의 관계에서 사용하는 대처 전략의 득과 실을 알 수 있게 돕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내담자에게 무조건적인 지지와 공감을 보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런 현실을 만들어내고 있는 스스로의 선택을 직면시키는 것이 중요할 수 있습니다. 상담에서의 대전제 중 하나는 '다른 사람 바꿀 생각하지 말고 너 자신을 바꿔라'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직면은 내담자에게도 불편하고 상담자에게도 불편하죠. 상담자 역시 다른 사람의 관심과 인정이 필요한 사람인지라 다른 사람에게 듣기 싫은 얘기하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내담자에게 잘 보이려 하는 것만큼 내담자에게 해가 되는 일이 없죠. 특히나 위에서 언급한 내담자처럼 피학적인 방식을 대처 전략으로 하는 경우에는 더 그렇습니다. 상담자가 내담자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기고 뭐라도 하나 더 해주려 하기 쉽죠. 몸이 너무 피곤해서 못 오겠다며 당일 취소가 반복돼도 한계 설정을 명확히 하지 않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얼마나 집에서 힘들고 피곤하면 못 올까 염려하게 된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런 반응은 주변 사람들의 일반적인 반응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아이고, 불쌍해라!"로 들릴 수 있는 의사소통을 하는 대신에, "어쩌다 자신을 그 지경에 처하게 했어요?"라고 재치 있게 물어야 한다는 뜻이다. 치료자는 내담자가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항상 기억하고 이를 강조해야 한다. 자기패배적인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온정을 이끌어 내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자신의 무력함을 입증하는 길뿐이라고 믿어 왔다. 그러므로 자아 구축을 촉진하고 환자를 유아화하지 않는 이런 낯선 치료자의 반응은 이들을 성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이 기회를 이용해서 치료자는 내담자의 정상적인 분노 표현을 환영하고, 이들의 부정적 감정이 이해 가능한 것임을 보여 줄 수 있다. - 정신분석적 진단, 389쪽.


재치 있게 물어야 하죠. 직면도 세련된 방식으로 해야 하는데 이런 건 교과서에서 가르쳐 주는 게 아니라 애로사항이 있네요. ㅎ 어쨌든 인용한 문단의 요지는 내담자가 무력한 존재로서의 자신을 어필하려는 관성에 제동을 걸고, 자기주장하거나 부정적 감정을 표현할 때 상담자가 이를 두 팔 벌려 환영해야 한다는 것 같습니다. 상담자 역시 내담자를 어린아이 다루듯 하지 않으려면 자기주장할 필요가 있죠. 상담에 무단불참할 경우 내담자가 처한 상황이라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며 관대하게 넘어갈 것이 아니라 엄격하게 한계를 제시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내담자가 처한 상황에 속 시원하게 솔루션을 내줄 수는 없지만 상담자가 긍정적인 모델링 대상이 될 수는 있을 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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