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임상심리학/정신병리

[정신과 임상심리전문가의 정신장애 이야기 #23] 양극성 장애

by 오송인 2018. 11. 30.
반응형

https://www.ted.com/talks/helen_m_farrell_what_is_bipolar_disorder/transcript?language=ko#t-333547


일전에 알바로 계약 맺은 곳에 양극성 장애 원고 제출하기 위해 공부하던 중에 본 유용한 영상이다.


양극성 장애의 핵심만 간명하게 추려서 설명하고 있다.



문제제기 / 원인 / 사례 / 치료 / 에필로그 처럼 짜여진 틀에 맞춰서 쓰는 작업이고 내용에 관한 레퍼런스 제시가 필수라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오늘 오전 및 4시 이후부터 11시까지 작업해서 끝냈다. 10시간 정도 걸린 것인데 10만 원 받고 쓰는 글이니 시급 만 원이다. 서면 계약한 게 없어서 더 할지 말지 고민된다. 이런 고급 지식을(!) 이렇게 헐값에 파느니 스팀잇에 공짜로 공개하는 게 정신건강에 도움 될 것 같다. ㅎ


오늘 양극성 장애 공부하면서, 신경전달물질이나 유전에 관한 연구, 약물치료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찾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스팀잇에는 오늘 공부한 내용보다 내가 이 장애에 관해 주로 생각했던 내용들을 자유롭게 써보고자 한다. 자연스럽게 생각의 흐름을 이어나가기 위해 존댓말은 생략합니다.



양극성 장애는 예전에는 조울증이라고 부르기도 했고 여전히 조울증이라는 용어도 많이 사용된다.


양극에서의 두 극단은 바로 조증삽화와 (우)울삽화를 뜻한다.


조증삽화라고 하면 엄청 들뜨거나 기분 좋은 상태만을 떠올리기 쉬운데 그런 상태도 있지만 짜증이나 분노가 우세한 상태도 있다. 과대망상이 심해서 나는 하나님 다음 가는 고수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건 정신병적 조증삽화에 해당한다.


기분이 들뜬 상태가 일주일 이상 지속되긴 하는데 중간중간 우울해 보이기도 하는 상태, 즉 microdepressions가 섞여 있는 경우(혼재형)도 있어서 여러모로 복잡하다.


조현병처럼 양극성 장애 역시 원인이 한 가지가 아니고 증상도 다양해서 같은 양극성 장애 환자라도 저마다가 다르다.


또한 이 장애가 주요우울장애가 속한 기분장애(mood disorder, 혹은 정동장애affect disorder, 다 같은 말이다)에 속해 있지만 기분의 불안정성이 핵심이 아니라 인지적인 기능 저하가 핵심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양극성 장애의 핵심은 조증과 울증의 결합이지만 파고 들면 그렇게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병원에서 양극성 장애를 지닌 환자분을 만나면 정서적인 문제보다 인지적인 문제가 더 심각해 보일 때가 많다. 둘이 불가분의 관계긴 하지만 굳이 우위를 두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성격이나 정서 상태의 스케치뿐만 아니라 사고장애 감별에도 탁월한 로르샤하 검사에서 양극성 장애를 지닌 사람은 매우 많이 '깨진다'.


사고 내용이나 과정, 형태 모두에서 문제가 시사되기 쉽다는 것이다. 이런 인지적인 문제가 종합하여 현실 판단이 잘 안 되는 모습으로 나타나기 쉽다.


특히 조증 상태에서 가진 재산을 전부 쏟아 부어 무리하게 사업을 벌린다거나 할리우드 스타가 되겠다고 미국행 비행기 티켓을 산다든가 암호화폐로 세계 최고 부자가 되겠다며 데스크탑 수십대를 사들이는 등 누가 봐도 크레이지한 모습이 발생하기 쉬운데, 이런 것이 현실 판단 능력의 저하라는 것이다.


과대한 목표를 추구하고 자신감 넘치는 것이 극에 달하면 피해망상도 생긴다. 앞서 언급한 정신병적 조증삽화인 것이다. 예를 들어, 자신이 하나님 다음 가는 고수라서 악마가 자신을 죽이러 올지 모른다는 등의 얘기를 할 수 있다.


이렇게 심하지 않다 하더라도, 즉 일상생활이나 직업기능에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평소에 비해 말이 많고 기분이 업돼 보이고 잠도 안 자고 무언가 과제를 해결해 내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몰두하는 경우에는 조증 삽화를 의심해 봐야 한다. 경조증(hypomanic) 삽화의 단계일 수 있고 여기서 더 발전하면 조증으로 간다. 경조증과 조증을 나누는 구분은 증상이 나타난 일수와 일상생활에서의 기능 수준인데 애매한 부분이 많다. 실제적으로는 사후적인 판단을 할 때가 많은데 입원을 할 정도면 조증, 하지 않고 그럭저럭 살고 있으면 경조증에 해당한다.



양극성 장애는 주요우울장애를 포함하고 있지만 주요우울장애보다는 조현병과 사촌지간이다. 정신장애를 발생시키기 쉬운 유전자를 찾아내는 일에 선진국들이 2000년대 이후부터 열을 올리고 있는데, 연구를 자세히 살펴본 것은 아니지만 내가 알기로 양극성 장애와 조현병이 양극성 장애와 주요우울장애보다 더 많은 유전자 지표의 중첩을 보인다. 임상적으로도, 만개한(full-blown) 양극성 장애를 지닌 환자는 조현병을 지닌 환자보다 더, 매우, 심해 보인다.


유전 vs 환경 논쟁은 심리학 안에서 늘 뜨겁다 못해 식상하게 느껴지는 주제지만, 양극성 장애는 조현병처럼 환경보다 유전적 소인이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정신장애로 임상가들이 대개 인식하고 있다. 또한 조현병처럼 뇌의 기능적 및 구조적 이상이 크기 때문에 이에 대한 약물치료적 개입이 일차치료(first-line treatment)로 권고된다.


양극성 장애를 지녔거나 의심되는 사람은 반드시 지역사회 정신건강증진센터나 정신과를 찾아야 한다. 약물치료는 주로 기분조절제나 항정신병 약물이 병합치료로서 사용된다. 기분조절제의 종류는 리튬, 발프로에이트, 카바마제핀이 있다. 이건 약의 성분명이고 제약회사에 따라 브랜드명이 다르다. 쿼티아핀, 아빌리파이, 지프라지돈, 리스페리돈 같은 항정신병 약물은 정신병적 조증 삽화뿐만 아니라 양극성 장애 치료 전반에 활용된다. 항정신병 약물인데 정신과 근무하며 주워들은 바에 따르면 기분조절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양극성 장애는 조현병처럼 재발이 잦다. 우울증 재발이 잦고 조증 재발도 그보다 덜하긴 하지만 어쨌든 빈번하다. 약물치료의 효과 유지 및 재발 방지에 심리치료가 도움이 될 수 있다. 어떻게?


모든 심리치료에는 증상에 관한 심리교육이 들어가는데, 조증이든 우울증이든 어떤 환경에서 발생하기 쉽고 어떤 증상들이 나타나며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은지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은 천지차이가 있다. 이 병이 언제 어떤 식으로 올지, 조증으로 올지 우울증으로 올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지만, 그것이 왔을 때 그것에 휩쓸리지 않고 보다 적절하게 대처할 가능성을 심리교육이 증가시킨다. 조증 상태에서 약물치료를 거부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런 가능성도 심리교육을 하면 아주 조금은 낮출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증상에 대한 가족들의 이해는 환자를 비난하기보다 환자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높인다. 이처럼 존재의 문제라기보다 의학적 질병의 문제로 보게 되는 것이 재발 방지에 유용하다.


보다 근본적으로 양극성 장애는 주요우울장애보다 더 깊고 진한(?) 슬픔에 연관되는 것일 수 있다. 이들이 과대하고 오만하고 때로는 무모하고 때로는 피상적이고 과도하게 사교적으로 보일 때 이 점을 항상 염두에 두는 것이 심리치료에 도움이 될 것이다.


조증인 사람들의 과거력을 살펴보면, 이들은 우울한 사람들에 비해서 훨씬 더 뚜렷하게, 아동기에 외상적인 분리를 겪고 그것을 정서적으로 처리할 기회가 없었던 패턴이 반복되었음을 볼 수 있다. - 정신분석적 진단, 355쪽.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에 우울한 감정이 없는 것마냥, 오히려 즐겁고 행복해서 미쳐버리겠다는 식으로(그러다가 실제로 크레이지 하게 되는..) 행동해야만 하는 것일 수 있다. 큰 좌절감이나 열패감이 반복돼 온 까닭에 과대하고 현실불가능할 정도의 목표를 세우게 되는 것일 수 있다. 낸시 맥윌리엄스의 말대로 현실이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에 현실을 부인해야만 하는 것일 수 있다. 심리치료는 이런 부분을 다루는 데 도움이 된다.


뭔가 더 할말이 있을 것 같지만 피곤해서 이쯤에서 마무리한다.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었기를.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