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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심리학/정신병리

[정신과 임상심리전문가의 정신장애 이야기 #24] 경계선 지적 기능과 정신 건강(Borderline Intellectual Functioning and Mental Health)

by 오송인 2019.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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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 연재글을 빙자한 유투브 영어 듣기 공부입니다. 힘을 좀 빼고 써볼까 합니다.


201*년에 수도권에 위치한 모 보육원 아이들 40명 정도를 대상으로 종합심리평가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종합심리평가에는 표준화된 지능검사가 포함되는데 지능검사 결과에서 경계선 수준의 전체지능을 지닌 것으로 나타나는 아이의 비율이 높다고 느꼈습니다.


경계선 수준의 전체지능이라 함은 DSM-IV(IV인지 IV-TR인지 헷갈리지만..)에서 IQ 71부터 84까지로 정의내리고 있습니다. 전체 인구가 100이라면 그 중 70명 정도는 IQ 85에서 115 사이에 위치하게 됩니다.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표준화된 웩슬러 지능검사 평균이 100, 표준편차가 15를 고려할 때 그렇습니다. IQ 84 이하는 100명 중 15명, IQ 115 이상도 100명 중 15명 정도입니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전체 인구에서 15% 정도는 IQ 84 이하라는 의미입니다. 15명 중 일부는 경계선 수준의 지능을 가질 테고 또 일부는 그보다 더 낮은 지적장애 수준의 지능을 가지게 될 테죠. 정확히 말해 100명 중 13.59%가 경계선 수준의 지적 능력상에 위치하게 되고 2.27%가 IQ 70이하 구간에 위치하게 됩니다. 100명 중에 13~14명입니다. 여러분이 살아오면서 경계선 수준의 지적 능력을 지닌 사람을 한 번쯤은 반드시 만나 봤을 것이란 이야기입니다.


보다 와닿게 말씀드리면 2017년 한국 인구가 5147만으로 나오는데 14%로 잡으면 720만 명 정도가 경계선 수준의 지적 능력을 가졌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습니다. 물론 통계라는 게 확률적 수치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이것보다 훨씬 적을 수 있겠죠. 그렇다 하더라도 100만 명은 족히 될 것 같습니다.


지적장애 수준의 지능이라 하더라도 실제 사회적 수행이 경계선 수준의 지능을 지닌 경우보다 나을 때가 있습니다. 오버랩되는 구간이 분명 있죠. 지적장애 판정은 단순히 지능만 가지고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물론 공무원들은 점수만 보는 게 문제지만) 지적장애 수준의 지능으로 나왔다 하더라도 경계선 지적 기능으로 명시돼 심리평가 보고서가 나갈 때가 간혹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을 논외로 하면 어쨌든 지적장애 수준의 지능을 지닌 사람들은 정신건강에 관련된 기관의 레이더에 포착되어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의 돌봄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하지만 경계선 수준의 지능을 지닌 사람은 이런 레이더의 사각지대에 위치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문가가 아니고서야 이 사람이 조금 뒤처지는 사람인지(혹은 일부가 표현하듯 느린 학습자인지) 아니면 정신건강 서비스의 집중적인 지원을 받아야 되는 사람인지 판별하기 어렵습니다. ADHD나 정신병 같은 정신장애가 수반되는 경우 전문가들조차도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정신장애 때문에 지능이 경계선 수준으로 과소 측정된 것인지 아니면 증상과 관계 없이 원래 지능이 경계선 수준인 것인지 머리를 싸매야 할 때가 있죠. 전문가도 종종 식별이 어려운데 하물며 비전문가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비전문가의 경우 경계선 수준의 지적 능력을 지닌 초등학생에게 나타나기 쉬운 외현화된 문제를 지적 능력의 문제로 보지 못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신과 환자나 비환자를 대상으로 웩슬러 지능검사를 하다 보면 가끔 'IQ 두 자리로 나올까봐 무섭다'는 식의 얘기를 듣게 됩니다. 사실 IQ 80부터 119까지가 평균 수준입니다. 평균하 수준과 평균상 수준으로 세분화하고 평균하와 평균상이 능력상의 큰 차이를 보이기 쉽다 하더라도 어쨌든 IQ 두 자리도 평균 범위입니다. 요는 지적 수준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미흡하다 보니(전문가들 책임이 큽니다..;) 초등학생이 외현화된 문제 행동을 보일 때 그것을 지적 능력의 부족으로 연결짓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지적장애 수준의 지능일 경우에는 비전문가의 눈에도 이미 초등학교 1~3학년 때부터(혹은 어린이집/유치원 때부터) 다른 아이들과 뭔가 다르고 발달상에서 뒤처져 있음이 발견되기 쉽지만, 경계선 수준의 지능을 지닌 아이들은 이 시기에 뭔가 크게 뒤처져 있다는 인상을 주지 못 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아이가 지닌 경계선 수준의 지능이 정신건강 기관의 레이더에 걸리는 것은 언제쯤일까요? 중학교 1학년입니다. 이 때부터 학업 문제, 또래관계 문제, 정서적 어려움 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학업의 양이나 수준이 질적으로 달라지기 때문에 좌절이 오게 되고, 이런 것이 다른 아이들의 눈에 띄기 쉽고, 또래관계 역동에서 먹잇감이 되기 쉽습니다. 특히 도덕발달 수준이 아직 미흡한 상태에서 물리적 힘의 우위에 따른 권력관계가 형성되는 남학교에서 심하죠. 정서행동발달 선별검사에서 스크리닝 되기 이전에 이미 담임 선생님의 눈에 포착돼 위클래스나 위센터를 통해 정신과로 연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라면 그래도 다행입니다. 청소년기에 경계선 수준의 지적 능력이 전문가에 의해 식별되면 정신과적 및 심리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그나마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보다는 성인기에 정신과적 문제로 인해 심리평가가 의뢰됐다가 지적 능력상의 어려움이 드러나는 경우가 더 많아 보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경계선 수준의 지적 능력을 지닌 아이는 초등학교 때 지적 능력에서의 어려움이 잘 눈에 띄지 않다가 중학교 들어와서 여러 어려움을 보이게 되는데, 이런 어려움들이 주변 사람의 관심을 받지 못 한 채 그저 또래와 잘 어울리지 못 하는 아이, 눈치 없는 아이, 산만한 아이, 반 꼴찌, 뒤에서 잠만 자는 아이, 다른 아이들에게 잘 이용 당하는 아이 등으로 비춰지기 쉽습니다. 중학교 때 식별되지 못 하면 고등학교 가서는 더 식별되기가 어려운 게, 다들 아시다시피 고등학교 교육 과정 자체가 대입에만 온 관심이 쏠려 있다 보니 뒤처지는 아이들까지 챙길 여력이 없습니다. 따돌림이나 괴롭힘 가능성은 중학교에 비해 낮아지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어찌 됐든 '없는 사람' 취급 받기 쉽죠. 지적장애를 지닌 아이들처럼 도움반 생활을 할 수도 없습니다.


학교 다니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생각에 고등학교 중퇴를 하는 경우도 많을 것 같습니다마는, 그래도 어떤 아이들은 꼬박꼬박 학교를 가서 고졸이라는 학력을 들고 사회로 나오게 됩니다. 하지만 대학을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취업을 할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성인기에 이들은 연이은 취업 실패를 경험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데 부모 슬하에서 생활할 수 있는 경우라면 그래도 다행이지만 부모 또한 가난과 질병에 노출돼 있는 경우에는 두려움과 절망감, 무력감 등을 경험하면서 알코올 중독과 같은 정신과적 문제를 경험하기 쉽습니다. 술로 사회적 고립이나 불안 우울과 같은 정서적 어려움을 잠시 잊으려 한다는 것이죠. 사회는 점점 더 전문화돼 가고 있고 복잡해지는데 이들이 발 붙일 곳은 마땅치 않습니다. 범법으로 인해 처벌 대상이 되거나 정신과적 질환이 수반되지 않고서야 누구도 이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을 가능성이 높죠. 강연자도 이런 부분을 보다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Increased risk of

  • Experiencing physical problems
  • Poverty, socio-economic disadvantage
  • Poor parenting
  • Difficulties with activities of daily living, psychosocial problems
  • Ending up in the criminal justice system
  • Problematic alcohol/drug use
  • Mental health problems

Higher risk for all psychiatric disorders, Especially:

  • Psychotic disorders
  • PTSD
  • Personality disorders
  • Problematic alcohol/drug use

성인기에 발생하는 이런 risk를 고려한다면, 경계선 지적 기능을 지닌 사람을 조기에 선별할 수 있는 검사 도구를 개발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할 수 있습니다. 이들을 돕기 위해 가장 중요한 부분은 말할 것도 없이 이들을 잘 식별해 내는 것입니다. 식별을 해야 서비스를 제공하든 치료를 하든 할 테니까요. 동영상 말미에 저자가 강조하는 것도 이 부분입니다.


웩슬러 지능검사는 숙련된 전문가가 사용해야 정확한 결과를 낼 수 있습니다. 대학원에서 웩슬러 검사로 6개월 정도 공부했던 게 기억이 나네요. 간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검사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이론뿐만 아니라 임상 경험이 뒷받침 돼야 합니다. 하지만 이처럼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선별용으로는 부적합합니다. 이러한 고민을 네덜란드 연구자들이 한 것 같습니다. 2016년에 보다 쉽고 빠르게 경계선 지적 기능을 선별할 수 있게 SCIL이라는 14문항짜리 질문지를 만들었네요. 이 질문지를 벤치마킹해서 한국 실정에 맞게 선별 도구를 개발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황순택 등이 개발한 경계선 지적기능 선별 검사가 출시되었네요. (2019.12.12 덧붙임.)]


동영상에서 강연자는 경계선 지적 기능을 지닌 사람을 선별한 이후에 어떻게 개입할 것인지 개입 전략의 다섯 가지 핵심 요소를 언급하고 있는데, 개입 전략은 경계선 지적 기능을 지닌 사람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환기된 이후에 생각해 봐도 늦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네덜란드에 비해 한국은 갈 길이 멀게 느껴지네요. 다만 2017년 12월 말에 한국에서도 보건복지인력개발원이라는 기관에서 경계선지적기능아동 자립지원체계연구 보고서를 출판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이 글 초반에 보육원 얘기를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보육원 아동을 대상으로 경계선 지적 기능에 관한 연구가 진행된 바 있네요. 이런 시도는 고무적으로 여겨집니다.


힘을 빼고 두어 문단 적는다는 게 생각보다 길어졌네요. 경계선 지적 기능이 정식 진단은 아닙니다. 경계선 지적 기능은 동영상의 강연자도 말하고 있지만 장애가 아닙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아동기부터 시작되는 심리사회신체적 어려움들이 많고, 이에 환자가 경험하는 어려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계선 지적 기능도 유의해야 한다고 명시하는 심리평가 보고서가 나갈 때가 많습니다. 경계선 지적 기능은 장애가 아니지만 사회적인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 개인 내적 취약성입니다. 스스로가 경계선 지적 기능을 지녔다고 말하는 사람이 쓴 국민청원글 한 편을 링크하며 마무리합니다.


경계성 지적장애도 장애라고 인정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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