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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서평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 스콧 스토셀

by 오송인 2019.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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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책 중 가장 재미있는 책이다. 참고문헌 페이지 빼고 443페이지에 달하는, 대중서 치고는 방대한 분량인데 저자가 글을 잘 써놨고 번역도 무척 잘 돼 있어서 술술 읽힌다. 2015년에 1판 1쇄가 나온 이후 작년 5월 1판 4쇄까지 나온 것을 보면 책이 꾸준히 팔리는 모양이다.


한글 제목을 잘 뽑은 책은 아니다.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 별로 안 땡기는 제목이라 서점에서 이런 책을 봤다면 그냥 지나쳤을 법하다. 하지만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심한 불안에 시달려야 했던 저자의 불안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저자는 현재 <애틀랜틱>이라는 오래된 시사주간지의 에디터로 근무 중이라 하는데, 방대한 심리학, 정신의학, 생물학, 유전학 자료들을 그 자신의 자서전적 기억과 버무릴 줄 아는 재능이 있는 사람이다. 꽤나 재미있는 책이 나왔다.



불안은 심리적인 문제 즉 소프트웨어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유전적인 문제, 하드웨어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정신과 몸을 무자르듯 구분할 수 없는 게 사실이고 그래서 치료도 대체로 병행치료가 대세이다. 대부분의 정신장애는 약물치료뿐만 아니라 심리치료가 요구된다.


하지만 어느 나라건 간에 약물치료 영역과 심리치료 영역의 알력관계가 있어서 이 둘의 연합이 잘 이뤄지는 곳이 드물고, 특히나 한국은 정신과에서 약물치료 이외에 심리치료를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닌지라 애석한 점이 있지만, 병행치료할 때 효과가 가장 좋다는 게 정설이다(여담이지만 현재 근무지에서 심리치료에 대한 권한을 준다면 직장 만족도가 배는 높아질 것 같다. 하지만 그러기 어렵게 만드는 병원장과 심리학자 간의 이해관계 충돌이 존재한다).



저자는 1970년 초 정도에 태어난 것 같은데, 1980년경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한다. 정신분석, 인지행동치료, 온갖 약물치료, EMDR, 노출치료, 가족치료 등 안 받아 본 치료가 없을 정도이고, 정신약물과 심리치료 발전의 산 증인으로 보인다.


이 모든 치료에도 불구하고 공황발작, 특정공포증, 강박증, 범불안장애, 우울증 등을 포괄하는 저자의 심한 불안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팍실 같은 약을 써서 증상이 드라마틱하게 개선됐다가도 비행 시 기체 요동으로 야기된 불안으로 인해 약물 효과가 완전히 사라지고 이전의 불안이 되살아 난다. 약물치료 하는 중에 심리치료를 받기도 하고, 심리치료자의 권유에 따라 약을 끊고 심리치료만 받아보기도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저자의 불안 감소를 지속시킬 수 없었다.


저자는 35년에 가까운 치료사를 회고하며 자신의 병이 발현하는 데 유전이 영향을 미친 것도 맞지만(이를 알기 위해 외할아버지를 통해 외증조부의 치료 기록까지 알아낸다. 어머니를 비롯하여 가족 중에 정신과 환자였던 사람이 많다. 자기 유전자 분석도 해본다) 부와 모의 갈등, 모의 양육 방식에서의 문제(정서적 친밀감은 드물게 보여주면서 과잉보호하는 방식) 등 환경적인 요인, 살아오면서 경험하게 되는 무수히 많은 심리적 상처들 모두가 병의 발현 및 지속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뻔한 얘기지만, 조금은 덜 불안하게 살려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몇십 년 동안 동원해 본 이의 말이라 울림이 크다.



프로작을 비롯하여 불안 및 우울 치료에 널리 쓰이는 SSRI 계열의 약들조차, 그 효과에 대해 합리적인 의구심을 갖게 하는 연구결과들이 산재해 있다. 효과가 있다 한들, 많은 신경과학적 연구들이 효과가 발생하는 메커니즘을 밝히려 애쓰고 있음에도 어느 약 하나 제대로 메커니즘이 밝혀진 게 없다. 메커니즘, 우리 말로는 '기전'이라고 하는데 약물치료의 기전으로 얘기되는 것들은 거의 모두가 가설의 형태다.


심리치료도 별반 다르지 않은데 인지행동치료쪽으로 무작위 통제 시행을 통한 효과성 검증 연구가 많이 축적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를 실제 치료 장면에 일반화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특정 심리치료 때문에 나은 것인지 상담자가 유능해서 혹은 내담자가 치료될 준비가 돼 있어서 혹은 그냥 시간이 흘러서 좋아진 것인지 모른다. 특정 심리치료 때문에 좋아졌다 한들 그 효과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는지 등등 질문을 하면 할수록 우리는 정신과 몸으로 이루어진 마음에 대해 여전히 잘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직해 보인다.


정신의학이나 심리학 모두 본격적인 역사가 100년 남짓이고, 향정신약물은 50년대 말을 그 시작점으로 하면 60년 정도의 역사를 지닌다. 다른 학문에 비해 역사가 짧으니 아는 게 많지 않은 게 당연해 보이고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이만큼이나 발전한 게 대단해 보이기도 한다.


저자는 자신의 불안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모두의 문제, 선천적 기질과 후천적 경험 모두의 문제라고 보기 때문에 앞으로의 삶에서도 약물치료와 심리치료와 그밖의 모든 의미있는 노력을 기울일 것 같다. 치료 실패라 할 만한 경험도 무수히 많지만, 원인 이해와 치료에서의 발전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저자가 치료를 포기할 것 같지 않다. 스스로가 약물치료와 심리치료 각각이 지닌 장점과 한계점을 계속 공부하는 가운데 치료 노력을 꾸준히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주머니에 늘 불안약을 넣어 다니는 사람이지만 불안의 기능적인 측면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해 온 것 같다. 특히 이 책의 후반부에는 불안이 적응과 창조성에 도움이 되는 면이 있음을 강하게 어필하고 있고, 무엇보다 불안이 인간 실존의 근본 바탕일 수도 있기 때문에 이를 없애려는 노력은 불안을 가중시킬 뿐이라고 말한다. 보다 정확히 말해, 적응적이지 못 한 불안의 측면은 치료를 통해 변화시켜야 하겠지만 이를 위해 적응적인 면까지 없애서는 안 된다고 본다.


정도 차이일 뿐 인간이라면 누구나 불안을 경험한다. 심리학 연구자들은 자기 문제를 연구 주제로 다룰 때가 많은데 내 석사 논문 주제는 사회불안이었다. 어렸을 때 어땠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청소년기의 나와 지금의 나는 수줍음이 많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나에게 가장 스트레스가 되는 상황은 어떤 뚜렷한 목적이 없는 사교적 현장에 아는 사람 한 명 없이 홀로 남겨지는 것이다. 그 정도로 생긴 것과 다르게 수줍음이 많다. 약간 달리 표현해 보자면, 불안민감성이 높고 위험 회피 기질이 강하다. 불안 수준이 높은 사람은 대체로 장이나 위가 과민하기 마련인데, 난 장이 안 좋고 신경성 위염을 달고 산다. 저자처럼 사소한 자극에도 편도체가 과잉활성화되는 쪽에 속한다.(저자처럼 심한 수준은 아니지만.)


이런 특성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 불안 수준이 높은 사람은 자기 자신과 자신이 처한 환경에 민감하다. 타인이 보내오는 반응에 대해서도 민감한 편이라 상담자로서 직업적 역량을 발휘할 때 도움이 된다. 반응에 공감을 잘할 수 있느냐 못 하느냐는 좀 다른 문제지만, 어쨌든 다른 사람이 보내오는 전파를 수신할 수 있는 장치가 좀 더 잘 발달해 있다. 불안민감성이 낮은 사람이었다면 아마 내 직업이나 삶이 많이 바뀌었을 것 같다.


경험하지 않았어도 될 많은 불편을 불안으로 인해 경험해야 했고 지금도 경험하는 중이다. 삶은 늘 변화하고 내가 처한 상황도 계속 변화하고 특히 내 직업과 커리어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 환경 변화가 큰 시기로 여겨지기 때문에 불안하다. 공부 자체는 즐겁지만 이 직업의 전망이 어두울 수 있다는 생각에 불안하고 우울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가 자기 불안 경험을 돌아보며 최종적으로 말하고 있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생각만큼 나약한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434쪽)


앞으로도 힘든 날이 많겠지만, 늘 그랬듯이, 전전긍긍하던 일들이 어느 순간에는 잘 마무리 돼 있을 것이다. 척추 신경통증으로 인해서 일을 못 하게 될 정도로 극심하게 소진되는 게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시나리오인데 설령 그런 일이 발생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식으로든 잘 버티면서 삶을 이어나갈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왠지 회복탄력성이 더 강해지는 기분이다(마지막 챕터 주제가 회복탄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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