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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서평

아이와 통하는 부모는 노는 방법이 다르다 / 로렌스 J. 코헨

by 오송인 2019.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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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원제가 Playful Parenting입니다. 이 책이 표방하는 것은 육아도 즐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즐거울 수 있을까요. 아이와 함께 즐기는 놀이를 통해 부모도 즐겁게 육아할 수 있음을 여러 구체적 사례를 제시하며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이 키우는 부모라면, 아이 나이에 상관없이 한 번쯤 읽어보실 것을 강력 추천합니다.



퇴근 후에 집에서 아이와 즐겁게 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나 직장에서 스트레스 잔뜩 받고 녹초가 되어 집에 오면, 아이가 강아지새끼마냥 달려와도 몸은 아이를 안아주지만 마음은 침대를 향해 있을 수 있습니다. 저녁을 먹고 아이와 놀더라도 내일 해야 할 업무나 처리해야 일들에 신경이 팔려 놀이에 집중이 잘 안 될 수 있죠.


제 딸은 탑쌓기와 까꿍놀이, 말타기(제가 말로 빙의합니다. 이히잉~), 제 책상에 앉아서 책상 위에 있는 물건들 하나하나 이리저리 옮기기, 연필이나 색연필로 A4 용지에 그림 그리기, 창문 밖에 지나가는 사람이나 빠방이(자동차) 바라보기, 침대 매트리스 위에서 방방 뛰기, 공 주고 받기, 아빠와 냉장고 앞에 나란히 서서 기도하는 흉내 내기(성당에 자주 가니 이제 이런 것도 놀이가 됩니다) 등등 무수한 놀이를 즐깁니다.


저녁을 먹고 놀이터에 가기도 하는데 놀이터에서 아빠와 미끄럼틀 타는 것을 좋아하고 그네도 타고 시소도 타고 산책 나온 강아지와 인사도 하고, 놀이터에서도 노느라 굉장히 바쁩니다. 해가 다 저물어서 집에 가려고 하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려대는터라 아빠인 저도 마음이 좋지 않아지는데 아직까지 먹을 것으로 유인하는 것 말고 보다 효과적인 놀이터와의 작별의식을 찾지 못 했습니다. 아는 분 비법 전수 좀 부탁드려요.


지금 21개월밖에 안 됐는데도 이 정도입니다. 아이들은 눈 떠서부터 자기 직전까지 하루 일과가 온통 노는 것이고, 혼자 노는 게 어려워 꼭 상대 플레이어가 있어야 하니 엄마와 아빠가 떨어져 있기 어렵습니다. 떨어져 있으면 엄마나 아빠를 놀이에 초대하죠. 이 초대를 거절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심리학 전공자로서(전공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놀이가 아이의 인지, 도덕, 성격발달 등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기란 어렵기 때문에 아이의 초대를 대체로 수락합니다.


내 마음에 여유가 있고 아이와 놀기를 원할 때 노는 것은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여기서 관건은 아이와의 놀이가 지루하거나 피곤하게 느껴질 때조차 어떻게 놀이에 집중하느냐일 것입니다.



저는 저자가 말한 여러가지 방법 중에 두 가지가 마음에 남습니다. 하나는 '과장'이고 다른 하나는 '역할바꾸기'입니다. 과장은 말 그대로 오두방정 호들갑을 떠는 것입니다. 아이 앞에서 바보 삼룡이로 빙의하여 슬랩스틱을 좀 보여주면 제 딸이 정말 미친듯 웃어댑니다. 웃기기가 정말 쉬운 딸입니다. ㅎ 한편 역할바꾸기를 통해 아이의 감정을 극적으로 대리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를 좀 더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달에 제가 열심히 놀아주니 딸은 자기가 눈 떴을 때 아빠가 없는 게 슬퍼졌나 봅니다. 제가 퇴근하고 집에 가면 저를 반가워 하는 것 같으면서도 왠지 좀 뾰루퉁해 있는 게 보이는데요. 아빠한테 달려가서 안겨야 되나 말아야 되나 주저주저하는 게 느껴집니다. 이런 상황을 처음 경험하다 보니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몰라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옷을 갈아입고 있다 보면 딸이 제게로 옵니다. 그럼 저는 '엄마랑 잼있게 놀고 있었어?'라고 대화의 물꼬를 틉니다. 그럼 딸은 이 말을 신호탄으로 아빠방에서 자신만의 놀이를 시작하고(예를 들어 옷장에 걸린 엄마 치마 하나하나 꺼내보기) 곧이어 아빠를 초대합니다.


아이들이 놀이에 아빠나 엄마(혹은 할아버지나 할머니, 삼촌이나 이모 등 어른)를 초대하는 것은 아이들이 그만큼 '연결'에 대한 욕구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이 연결(원어는 connection이더군요)을 무척이나 강조합니다. 연결이 되지 않을 때 아이들이 고립감을 느끼게 되고 이 고립감에서 소위 어른들이 말하는 '문제행동'이 발생하기 쉽다는 주장을 일관되게 펼치고 있습니다.


딸은 아침에 일어나 아빠를 찾지만(와이프의 전언입니다) 아빠가 없어서 다소간 연결 욕구가 충족되지 못 했을 수 있겠습니다. 엄마가 있지만 엄마와의 연결과 아빠와의 연결이 아이에게 모두 필요한데 하나가 안 되니 퇴근한 아빠를 보며 반가움과 서운함이 모두 들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의 처방은 이럴 때 놀이를 이용하여 재연결을 시도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역할바꾸기가 활용되는데요. 딸이 하는 놀이 중에 하나가 아빠의 출근을 흉내내는 것입니다. 엄마 빽에 이것저것(ex. 탑쌓기 토막들 ㅎ) 담아 빽을 들고 현관문 쪽으로 걸어가는 시늉을 하는데 이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출근하는 딸의 옷을 붙잡고 대성통곡하며 가지 말라고 애원하는 것이죠. 딸이 처음에는 갸우뚱하더니 역할이 전도된 것이 재미있는지 미소를 지을 때가 많습니다. 이런 행위는 일종의 아이 감정 반영입니다. 동시에 딸과 재결합하고 싶다는 의지의 적극적인 표현이기도 하죠. 나이가 좀 더 많은 아이들은 희화화된다고 느껴 기분 나빠할 수도 있을 것 같으나; 적어도 제 딸 나이의 아이들에게는 효과가 있어 보입니다.


딸과 많이 못 놀아주는 날들이 많아지면 딸도 저를 투명인간 취급할 때가 있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가도 아는 척을 안 하고 자기 놀이나 엄마에게 몰두해 있다는 것이죠. 정말 심각한 경우가 아니라면 엄마에게는 이런 반응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엄마는 아이의 요구와 관심사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에 치여 아이 잘 때 들어오는 날이 많은 아빠들은 아이의 외면을 받기 쉽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차리고 아빠가 먼저 아이에게 결합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줘야 합니다. 꾸준히 보여주면 아이는 반드시 아빠의 노력에 반응하게 돼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참 이상하게도 아이들은 언제나 우리의 관심을 바라면서 막상 만사 제쳐두고 함께 바닥에 앉아 놀려고 하면 우리를 밀어낼 때가 있다. (중략) 아이는 고립감의 성에 갇혀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 조금 화가 나 있다. 이때 우리가 전폭적인 관심을 기울이면 비로소 아이는 마음속 생각을 다 보여준다. 말을 통해서가 아니라 놀이를 통해서다. 다시 말해 우리가 곁에 없는 듯이,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구는 것이다. 우리가 다른 일로 바쁠 때 아이는 우리가 자기를 하찮게 여긴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이가 밀어낸다고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다가가자. 286쪽.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지 간에 아이와의 연결을 유지할 수 있는 재미난 방법을 시도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부모-자녀 연결을 통해 아이는 유대감과 자율성을 발달시킬 수 있고, 이는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아이에게 뿌리와 날개를 달아주는 셈입니다. 또한 문제행동으로 여겨지는 것들도 놀이를 통해 대부분 해소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많은 부모들이 재미있게 노는 것도 아이의 행동을 바로잡아주는 방법이 된다는 것을 상상조차 못 한다. 행동을 바로 잡는 것을 너무 심각하고 진지하게만 여기기 때문이다. 믿기 힘들겠지만, 아이들과 놀아라! 389쪽

이른바 문제행동이라고 부르는 수만 가지 행동은 아이들이 지칠 때까지 온종일 뛰어다닐 수 있는 안전하고 재미있는 장소만 주어지면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391쪽

재미는 보상도 체벌도 아니다. 다만 일차적으로 문제의 원인이 되는 부모와 아이의 결합을 회복하는 일이다. 모험을 무릅쓰고 재미있게 하라. 엄격하게 하는 것보다 재미있게 할 때 가치관을 더 잘 가르칠 수 있고 규칙을 더 잘 지키게 할 수 있다. 393쪽


아이들이 보이는 문제행동의 기저에는 고립감과 무력감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부모-자녀 연결이 약해지는 것은 면역력이 약해져 증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듯 고립감과 무력감이 심화되는 데 일조하게 됩니다. 놀이는 연결성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며, 아이의 빈 컵을 관심과 사랑으로 채움으로써 문제행동을 감소시키고 부모가 제시하는 가치와 규칙을 더 잘 받아들일 수 있게 합니다.


어떤 심한 문제행동이라 하더라도 놀이를 통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는 저자의 관점은 문제행동 자체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에 초점을 두는 것과 관련됩니다. 놀이는 관계 회복의 지름길입니다.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당장 재미있게 잘 놀아주는 아빠가 되기란 어렵습니다. 저자 스스로도 아이의 눈높이에서 아이의 관심사와 욕구를 민감하게 캐치하여 놀이로 승화시키기까지 많은 연습과 시행착오가 필요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저는 애석하게도 아빠나 엄마와 재미있게 놀아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집안이 경제적으로 매우 어렵기도 했고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었죠. 이런 개인사가 있다 보니 딸이 태어난 이후 어느샌가 '딸과 잘 못 노는 아빠'라는 자기이미지를 만들어놓고 이 이미지에 부합되게 행동한 것 같습니다. 부모와 재미있게 논 기억이 없으니 나는 딸과 재미있게 놀 수 없을거야,라고 알게 모르게 단정해 버렸다는 것이죠. 심지어 저는 1년 동안 세 아이들의 놀이치료자였던 적도 있는데 말이죠!(맨땅에 헤딩하듯이 놀이치료를 하게 된 것이었다 하더라도..)


요즘에는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딸과 잘 노는 아빠'라는 자기이미지를 암시하면서 그 이미지에 부합되게 행동하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그런 노력을 딸도 느꼈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 출근한 아빠를 찾는 것 아닌가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딸이 조금 더 커서 청소년이나 성인이 되면 아빠와 말하는 것도 어색해 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 이순간은 열심히 놀아야죠. 아이들과의 놀이에 온마음을 쏟고자 애쓰는 모든 아빠들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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