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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서평

어떻게 일할 것인가 / 아툴 가완디

by 오송인 2019.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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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툴 가완디는 인도계 미국인입니다. 외과의이자 공중보건 정책 전문가라고 하는데 스탠퍼드에서 학부를 옥스퍼드, 하버드 의과대학 등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엄친아입니다. [나는 고발한다 현대 의학을], [어떻게 죽을 것인가], 그리고 오늘 소개할 [어떻게 일할 것인가]를 쓴 저자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우선적으로 성실에 관한 책입니다. 자소서에 높은 빈도로 등장할 것만 같은 단어지만 그렇다고 이 단어를 용감하게 적어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단어가 바로 성실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머리가 아무리 좋아도 성실하지 않으면 말짱 꽝입니다. 사회에서는, 굳이 선택을 하자면, 머리 좋은 사람보다 성실한 사람을 선호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성실에 여러 의미가 있을 테지만, 저자의 정의를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실수를 줄이고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세세한 것까지 충분히 배려하는 자세, 그것이 바로 성실이다.

 

"정확한 진단과 뛰어난 기술, 환자와 공감할 수 있는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입니다. 이 책이 한 사람의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의료 현장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단 한 번의 실수로도 치명적인 결과를 낳게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는 의료 현장의 의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세세한 것까지 충분히 고려하는 태도일 수 있습니다.

 

의료 행위라고 하면 고독하면서 지적인 소임이라고 흔히들 생각한다. 그러나 제대로 된 의료란 까다로운 진단을 내리는 것이라기보다 모두가 손 씻기를 확실히 실천하는 것에 더 가깝다.

 

의료진이 손을 잘 씻는 것만으로도 병원 안에서 전염이 확산될 가능성을 크게 낮출 수 있다는 사실이 자명한데도, 이것이 잘 되지 않아 어떻게 하면 손을 잘 씻게 만들 수 있을지 여러모로 고심하는 병원측의 노력을 보면, 아는 것과 실행하는 것은 정말 별개의 문제임을 느낍니다. 이런 면에서 성실은 우리가 기본적으로 아는 세부 사항을 잘 실행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도 보건 당국에서 소아마비가 발생한 지역에 4만 명의 인력을 투입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전염성 강한 소아마비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애쓰는 장면에서도 성실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2003년에 저자도 이 '소탕작전'에 직접 참여하게 되는데, 이처럼 자신이 목도한 것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기본적인 원칙을 세세하게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니 저자의 주장이 꽤 설득력 있게 느껴집니다.

 

전투 현장은 치명적인 손상을 입은 환자가 많을 수밖에 없는 환경인데, 이러한 현장에서도 사람을 살리는 기술의 발전보다 중요한 것이 기존의 기술을 잘 활용하는 것임을 역설합니다. 일례로 걸프전에서 방탄조끼를 잘 착용하는 것만으로도 전사자 비율이 순식간에 감소했다고 하네요.

 


이 책의 두 번째 장은 '올바름에 관하여'입니다. 즉, 의사로서의 윤리의 문제를 다룹니다. 기억에 남는 부분이 의료 과실로 인한 소송에 관한 것입니다.

 

야구에서 아무리 유능한 선수라 하더라도 일 년에 한두 번은 실책을 하게 돼 있습니다. 확률적으로 그렇죠. 마찬가지로 저자는 "의사도 반드시 실패한다"고 말합니다. 그 실패가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경우가 있고, 뉴스에서도 심심치 않게 의료 과실에 관한 뉴스를 볼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의사도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환자의 생명을 잃게 되는 경우가 반드시 있다고 한다면, 애초에 국가적인 기금의 형태로 이러한 사고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유족에게 하는 것이 더 나은 방식 아니겠느냐고 말합니다. 소송을 거는 입장에서도 손해고 그 소송을 디펜스 하기 위해 매년 개인적으로 보험료를 내는 의사의 입장에서도(미국은 그런가 봅니다 한국은 어떤지...) 손해이기 때문에 그렇게 낭비되는 돈을 국가적 기금의 형태로 돌리자는 것이죠.

 

돈으로 유족들의 마음을 위로할 수야 없겠지만 그나마 이런 방식이 기존 방식보다 나아 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의료소송에서 승소하기란 어려운 일이고 승소하더라도 비용이 크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이 그저 울분을 삼킬 수밖에 없는 상황에선 말이죠.

 

윤리에서 돈에 관한 부분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한국은 의료 항목에 대한 급여체계가 정해져 있습니다. 국가가 국민으로부터 거둔 건강보험료를 어떻게 의사와 병원의 의료 행위에 대한 보상으로 지급할지에 대한 명문화된 규정이 있다는 것이죠. 위내시경 한 번에 얼마, 주사 한 번에 얼마 이런 식으로 디테일하게 가격 합의가 돼 있고, 이렇게 급여처리가 되기 때문에 건강보험료를 낸 사람의 의료비 부담이 다른 나라에 비해 적은 편이라 할 수 있죠.

 

하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은 모양입니다. 보험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더 많고 이런 사람들에게는 치료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고 자비로 의료비를 충당할 수도 없는 가난한 사람이 치료 받겠다고 찾아왔을 때 그 사람에게 어떻게 해줘야 하는 것일까요? 저자가 딱히 해법을 제시하고 있지 않지만 복잡한 의료보험 제도에 관한 이런 질문은 의료인들이 피해갈 수 없는 질문일 것 같네요.

 


올바른 가치관 가지고 성실하게 살아나가면 좋겠지만 인간은.. 아니 저는 그렇게 바른 사람이 못 됩니다. 일적인 측면에서도 그런데, 양심을 내세우다 보면 밥줄이 끊기니 비윤리적인 행동과 적당히 타협하기도 하고, 불의를 못 본 척 넘어가기도 하며, 일이 많을 땐 세세하게 신경 쓰기보다 대충 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어떻게 '더 낫게' 일할 것인가(책의 원제가 better입니다) 하는 질문을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날마다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공 서적을 꾸준히 읽고, 특히 제 주업무인 정신과 환자 심리평가와 관련하여, 알던 부분도 다시 한 번 책을 펼쳐 정확하게 짚고 넘어갈 때가 많습니다. 환자 반응이 규준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 참고하기 위해 구글에서 규준 자료를 찾기도 하죠. 오늘은 매일 쓰다시피 하는 치매 선별 검사(K-MMSE) 시행 방식에서 제가 잘못 알고 있었던 부분이 있음을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매뉴얼에 정해진 방식대로 검사를 실시하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에 처음에 잘못 학습한 방식으로 계속 해왔다는 게 좀 부끄러웠습니다.

 

사소하다면 사소하고 중대하다면 중대한 이런 오류들을 계속 정정해 나가고, 상담 실전 경험을 비롯하여 새로운 심리학적 지식을 업데이트해 나가는 것이 전문가가 지녀야 할 성실성이자 윤리적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태도를 견지하지 않고 기계처럼 찍어내듯이, 혹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사주 보듯이 심리평가하거나 상담하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습니다. 매너리즘에 빠졌다가 탈출했다가를 반복하게 될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본인이 일에 흥미를 유지하며 번아웃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전문가로서의 성실성을 견지하는 것이 좋죠.

 


이 책의 에필로그가 제일 와닿았는데 일에서 무언가 가치 있는 차이를 만들어 내기 위한 다섯 가지 방법입니다.

 

하나. 즉흥적인 질문을 던져라. <-- 환자에게 심리평가와 전혀 무관한 질문을 하나 던지면 환자의 개인적인 측면을 알게 되기 쉽고, 이는 환자를 기억하기 쉽게 하는 한 방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루에 한 명 혹은 두 명의 환자를 계속 기계적으로 보다 보면 1주일 정도 뒤엔 환자 얼굴이 기억 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의외의 질문을 통해서 환자를 마음 속에 더 잘 새길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질문을 던지면 기계에서 기계 냄새가 덜 난다."

 

둘. 투덜대지 말라. <-- 동료에게 이런저런 직장생활의 ()같음을 투덜거렸던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좋은 얘기도 한두 번인데 하물며 안 좋은 얘기는 더 말할 것도 없겠습니다. 일에서의 사기만 저하시킬 뿐이죠.

 

셋. 수를 세라. <-- 수술 도구를 꺼내지 않은 상태에서 봉합했다는 끔찍한 얘기가 '세상이 이런 일이' 같은 프로그램에 종종 등장하죠. 저자는 수술 도구가 몸에 들어간 환자와 들어가지 않은 환자의 차이를 살펴봤더니 주로 응급수술이나 수술 도중 암 등을 맞닥뜨린 경우가 많음을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끔찍한 일이 아니더라도 일과 관련한 데이터들을 수치화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작업인 것 같습니다. 전 실적뿐만 아니라 한 편의 심리평가 보고서를 완성하기까지의 평균 시간을 수치화하는데요. 이 병원 재직 동안 총 400명 정도의 환자를 봤고 각각의 심리평가 보고서가 나가기까지 걸린 시간은 3.73일이네요. 품이 최고로 많이 드는 종합심리평가 보고서는 140편 정도인데 평균 6.43일 걸렸습니다. 이렇게 수치화를 하다 보면 "분명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하니 좀 더 세부적으로 수치화해 볼 여지는 없을까 궁리해 봐야 하겠습니다.

 

넷. 글을 쓰라. <-- 이 부분은 저자의 말을 옮겨 옵니다.

 

의료는 소매업과 같다. 의사들은 한 번에 한 명씩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러한 까닭에 고되고 단조롭다. 좀 더 큰 목적의식을 잃어버리기 쉽다. 하지만 글쓰기는 그런 순간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문제를 헤쳐 가게 해준다. 더없이 분노에 찬 외침이라 할지라도 글 쓰는 사람은 어느 정도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무엇보다, 아무리 소수라 할지라도 독자에게 여러분의 생각을 전할 때 자신이 더 큰 세상의 일원임을 확인하게 된다. (중략) 독자는 곧 사회다. 활자화된 언어는 그 사회의 일원이라는 사실, 그리고 사회에 뜻있는 기여를 하겠다는 의지의 선포다.

 

다섯. 변화하라. <-- 부족한 부분을 인식하고 해법을 찾으려 노력하라는 말은 전문가로서의 성실성을 지속하라는 말로 들리네요.

 

외과 의사의 이야기지만 어떻게 하면 생명의 불씨를 살리는 일을 더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하려는 노력에서 다른 직군들 역시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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