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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심리학/상담 및 심리치료

피학성 성격

by 오송인 2019.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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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학성 성격 읽었어요. 우울성 성격과 어떤 점이 차이 있는지 이전에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는데 지금은 좀 들어옵니다. 우울성 성격과 달리 분개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다른 사람과의 연결에 대한 희망을 완전 놓지 않았다는 차이가 있겠고, 근본적으로는 자기패배적인 방식으로 관심과 도덕적 우월감을 추구하기 때문에 우울성 성격에게 하듯이 온정적이고 지지적인 방식으로 치료하면 치료가 더 수렁에 빠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겠네요.


치료자가 피학적으로 치료에 헌신하다가 변화하지 않는 내담자에게 초조감과 짜증을 느끼며 거절과 같은 방식으로 가학성을 행사하기 쉬운 역동이 흥미롭습니다. 치료자가 자기 이익과 관심에 충실하게 행동함으로써 자기패배적인 방식으로 행동하면 득이 될 게 없음을 알릴 뿐만 아니라 좋은 역할본보기가 될 필요가 있겠습니다. 또 이런 치료자 행동에 내담자가 분개할 때 이를 호기심어린 관점으로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표출해도 안전하다는 것이 도덕주의로 자신의 분노를 애써 방어하지 않아도 됨을 체득하게 한다는 점에서 내담자에게 또 다른 교정적 정서경험이 되겠네요.


ref)
정신분석적 진단 12장


관련 글) 관계 양상의 반복과 피학증에 관해



이하 어떤 질문에 대한 답글



자기패배적 성격의 핵심은 제가 생각할 때 자신에게 즐거움보다는 고통이 될 수 있는 일이나 관계를 지속적으로 추구한다는 데 있습니다.


자기패배적이란 말의 정의를 내리기에 앞서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지 발달적 기원이라 할 만한 것을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스킵하시고 구분선 아래부터 읽으셔도 무방합니다.)


이렇게 하는 데는 어릴 때 부모와의 관계에서 경험한 관계 틀이 작동하게 되는데, 예를 들어 매일 꾸중을 듣는 아이라 하더라도 몸이 아플 때만큼은 부모가 정성껏 보살펴 주게 된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 나중에 연인이나 배우자와의 관계에서도 이런 경험이 반복되기 쉽습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첫째, 그러한 관계 경험밖에 해보질 않아서 다른 관계(예를 들어, 상호 온정적인 포근하고 지속적인 유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없고, 그런 걸 안다 해도 자신이 살아온 삶과는 너무나도 이질적으로 느껴져서 그런 상대방에게는 끌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둘째, 통제-숙달 이론이란 게 있는데 사람은 자신이 경험했던 과거 외상 경험을 현재 시점에 재현하여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무의식적 노력을 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정서적/신체적 학대에 노출됐던 아이가 그런 학대를 일삼는 사람을 배우자로 고르는 것은 그런 비정상적인 관계를 정상적인 관계로 역전시키고자 하는 강한 욕구가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패턴은 모두 의식되기 어려운 것이라 정상적 관계로 역전시키고자 하는 바람은 충족될 수가 없죠. 의식되지 못 한 것을 컨트롤할 수는 없으니까요.




이런 이유 때문에 즐거움보다는 고통을 추구하게 되고 그래서 자기패배적 성격의 원래 명칭이 피학성 성격(Masochistic Personality)이 됩니다.


매저키스트란 말이 일상에서는 사디즘과 대비되는 말로서 고통을 통해서만 성적 쾌락을 느낀다는 말로 이해될 여지가 있어서 이것보다 포괄적인 개념으로서 '자기패배'라는 말을 쓰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인용한 책의 저자가 지적하듯이 매저키스트가 고통 그 자체를 추구한다고 오해될 여지가 크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매저키스트는 고통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고통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고 여기는 관심과 돌봄을 추구합니다. 이게 핵심입니다(!).


그래서 자기패배적 행동이 무엇인지는 그 스펙트럼의 극단으로서 정의내리는 게 이해가 빠를 것 같네요.


자기패배적 행동은 1) 다른 사람에 대한 과도한 헌신처럼 자기를 잃어버리면서까지 헌신이나 평화와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고(도덕적 매저키스트) 2) 자해나 자살시도, 알코올/약물 중독/일중독처럼 누가 봐도 명백하게 본인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행동에는 늘 연속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는 강도의 차이라는 것이 존재해서 jaebin90님이 말하는 것처럼 고통스럽지만 참아야해 라며 무언가 장기적 목표를 위해 현재 만족을 인내하는 사람도 매저키스틱한 면을 지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건 누구나 지닐 수 있는 면이죠.


자기패배적 행동이 성격이 되려면 그러한 행동이 그 사람 일상생활의 모든 선택과 판단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의식적 힘으로 작용해야 합니다. jaebin90님이 잘 이해하신 대로 정도가 심할 때 쓰는 학문적 표현이죠.




치료에서 치료자가 내담자나 환자에게 가학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스스로의 신체적/정신적/경제적 안녕을 포기하면서까지 자기패배적 행동을 하는 내담자와는 정반대되게, 치료비를 제때제때 받고 정해진 날짜에 치료를 쉬고 휴가를 가며, 치료자가 짜증이나 화가 생길 정도로 내담자의 사정과 편의를 봐주지는 않는 등 치료자가 내담자의 안녕뿐만 아니라 자신의 안녕에 동등하게 충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그 자체로 치료적인 효과가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행동해도 하등 문제될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기패배적 행동을 통해 얻으려 했던 것(즉, 관심과 돌봄, 공감과 연민)을 똑같이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자기패배적 성격을 지닌 사람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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