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t Stokes
7월17일부터 읽기 시작한 책인데 200페이지 이상 되는 원서로는 네 번째 책입니다(정확히는 198쪽). 글쓰기 치료 방면에서 유명한 학자의 책이라 큰 기대를 안고 보았으나 이 책은 글쓰기 치료가 어떤 식으로 효과를 내는지에 관한 것이라기보다 실제 글쓰기 방법에 관한 책인지라 재미가 반감된 면이 없지 않습니다. 책을 따라 직접 해보면 더 좋았을 것 같지만, 평소에도 글을 많이 쓰고 일기도 쓰고 있기 때문에 해야 할 필요를 별로 느끼지 못 했습니다.
각설하고, 표현적 글쓰기(Expressive Writing)는 트라우마를 지닌 사람을 대상으로 합니다. 책이 세 파트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 책의 첫 번째 파트를 맡아서 쓴 James Pennebaker 박사는 글쓰기의 치료적 효용에 관한 연구를 70년대 후반부터 해온 유명한 학자입니다. 지금도 왕성히 연구 활동을 하는 것 같고요.
표현적 글쓰기의 아이디어는 간단합니다. 글을 통해 내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심리적/신체적 안녕을 가져온다는 것이죠. 트라우마가 심할수록 그것을 자기 안에만 가지고 있으면 병이 더 악화되기 쉽지만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면 보다 나아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트라우마를 얘기한다는 건 쉽지 않기 때문에 표현적 글쓰기라는 수단이 갖는 메리트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알릴 필요가 없습니다. 글을 쓰고 공개하지 않거나 삭제하거나 찢어버리면 됩니다.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관한 상세한 조언이 책의 2/3를 차지합니다. 궁금하신 분은 번역서가 있기 때문에(제목이 '표현적 글쓰기'입니다) 책을 읽어보면 될 것 같고요. 이 상세한 조언을 관통하는 글쓰기 전략의 핵심 몇 가지만 언급하겠습니다.
보다 넓은 맥락에서 쓰라.
트라우마에 관해 써도 좋고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감정적으로 힘든 문제들에 관해 써도 좋습니다. 무엇에 관해 쓰든 핵심은 그 사건에 관해 최대한 다양한 관점에서 보려고 애쓰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일례로, 1인칭 시점/3인칭 시점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8장. Writing to Change Perspectives). '내가 ~했다'라고 쓸 수도 있고 내 얘기를 마치 제 삼자의 일처럼 '그가 ~했다'라고 쓸 수도 있다는 것이죠. 트라우마에 관해 이런 식으로 의도적인 거리두기하는 것은 사건을 조금 더 폭넓은 관점에서 조망할 수 있게 돕고, 이를 통해 그 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새로운 관점이나 의미가 발견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구체적으로 쓰라.
과거 부정적 경험에 관해 곱씹는 반추(rumination)나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과도한 걱정에는 이득이 있습니다. 지금 현재 경험하는 불쾌한 감정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킬 수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는 장기적으로 볼 때 좋지 않습니다. 반추나 걱정을 많이 하면 더 강력한 부정적 감정의 역습에 노출되기 쉽습니다.
반추와 걱정의 또 다른 공통점은 둘 다 흐릿하고 구체적이지 못 한 생각이라는 점입니다(바로 이 때문에 감정 회피가 가능해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표현적 글쓰기는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에 대한 구체화를 가능케 합니다. 이런 구체화는 내적 경험을 회피하지 않고 수용하는 것을 가능케 합니다(그래서 일기도 많은 도움이 되죠).
표현적 글쓰기는 보통 4일에 걸쳐 이루어집니다. 이를 테면 첫째날에 트라우마 경험에 관해 쓰고, 둘째날에 그 경험을 더 깊이 들여다 봅니다. 대인관계, 직업, 스스로를 보는 관점, 스스로가 과거를 바라보는 방식 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관해 기술합니다. 셋째날에는 트라우마 경험과 관련하여 지금 가장 두드러지는 생각과 감정을 써내려 갑니다. 넷째날에는 트라우마 경험을 통해 잃은 것과 얻은 것, 미래에 미칠 여파 등에 관해 기술합니다. 한 가지 트라우마 경험으로 써도 되지만 다른 경험에 관해 써도 상관 없습니다. 요점은 지속적으로 자기를 들여다보며 자기이해를 구체화한다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를 만들어라.
폴 오스터 달의 궁전에서 좋아하는 문장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삶을 써 나가는 작가야. 네가 쓰고 있는 책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그건 원고인 셈이지."
표현적 글쓰기는 트라우마 경험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거기서 출발하지만 쓰다 보면 결국 자기 삶의 이야기로 확장됩니다. 삶은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고정된 실체라기보다 유유히 흘러나오는 이야기에 가깝죠. 그 이야기를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나는 나이면서도 또 다른 내가 됩니다. 과거의 상처 받은 나에서 현실을 수용하고 한계를 자각하고 미래를 모색하는 또 다른 나로 변화될 수 있죠. 이는 심리치료에서 하는 작업과 비슷합니다. 치료자의 역할은 내담자가 자기 이야기를 더 다양한 각도에서 구체적으로, 과거-현재-미래를 연결시켜 쓸 수 있게 돕는 것이죠.
Creating a narrative, including a coherent beginning, middle, and end, is a well-documented part of trauma treatment and holds much promise for benefits from writing about trau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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