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으면서 느끼는 바가 많은 책이었습니다. 로저스 등이 말하는 false self에 관한 얘기를 대중적으로 풀어낸 책인 줄 알았습니다. 심리학 전공한 사람이 쓴 글은 아니니 가벼운 마음으로 읽자고 덤벼 들었다가 이 책의 깊이에 푹 빠져 들지 않을 수 없었네요. 책 읽다가 밑줄 치게 되는 부분, 한 번 더 곱씹어 생각해 보게 되는 부분이 많아서 책 읽는 속도를 낼 수가 없었습니다.
이 책은 취약성과 수치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사회복지학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으로 그녀는 인터뷰 기반의 질적연구를 하다가 이 책을 쓰는 단계까지 이르렀다고 합니다.
저자는 취약성을 "불확실성, 위험, 감정 노출"로 정의합니다. 인간이 경험하는 마음의 문제는 취약성을 드러내기 힘든 사회문화적 요인 때문이라고 진단하는 것 같습니다. 항상 강해야 하고,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더 많은 성취를 하라고 압박하는 사회에서 취약성을 드러내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요즘 사회는 동양이냐 서양이냐를 떠나서 외현적 자기애라든지 반사회성 성격을 지닌 사람들이 득세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기도 하고요(한국은 국회의원 중에 특히 그런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취약성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 한 결과 다른 사람과 이어질 수 없습니다. 이어짐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주고, 서로의 말을 들어주고, 서로를 가치 있는 존재로 여겨줄 때 생기는 에너지다."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을 수 있으려면 자신의 취약성을 오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약해지지 못 하는 사람은 사랑을 할 수가 없죠. 관계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자기의 어두운 부분까지 점진적으로 오픈했을 때, 이런 어둠이 상대방에게 받아들여지는 경우 우리는 상대와 이어짐을 더욱 공고히 유지할 수 있습니다. 관계의 깊이가 깊어지는 것이죠.
하지만 내가 중요히 여기는 다른 어떤 사람으로부터 자신의 취약성을 공감 받지 못 할 때 우리는 수치심을 느끼게 됩니다. 즉, 나의 특정 행동뿐만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 자체가 뭔가 문제가 있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죠. 수치심은 "관계의 끊어짐을 두려워하는 마음"이라고 이 책에서 정의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 둘은 연관이 있는 별개의 개념 같습니다. 즉, 발달 과정에서 볼 때, 내게 중요한 엄마나 아빠와의 관계가 끊어질 것을 두려워하는 까닭에 심지어 그들이 반복적으로 정서적 학대나 방임을 일삼더라도 그들 탓하기보다 자기 탓하기 쉽습니다. 자기가 나쁜 아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하면서 수치심을 느끼죠. 이렇듯 관계의 끊어짐과 수치심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자신의 취약성이 공감 받지 못 하고(심리학적인 용어로는 타당화validation라고 합니다. 내적 경험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타당화되지 못 하는 것이죠.) 내게 중요한 다른 어떤 사람(그게 부모든 연인이든 자녀든 스승이든..)과 끊어짐을 경험함으로써 스스로를 수치스럽다고 느끼게 됩니다.
수치심은 인간의 아주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감정입니다.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반사회성 성격장애나 악성 자기애적 성격장애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느끼는 감정이지만, 이 느낌이 일시적인가 혹은 아동기-청소년기-성인기를 관통하는 감정인가 하는 것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일시-지속의 스펙트럼에서 지속에 해당할수록 수치심을 방어하기 위한 노력이 성격의 중요한 특성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저자는 세 가지 방어 노력을 "갑옷"으로 표현합니다. 심리학에서 "갑옷"이라는 말을 처음 쓴 것은 아마 Wilhelm Reich일 것입니다. 저는 이런 용어를 낸시 맥윌리엄스가 쓴 정신분석적 진단에서 알게 됐는데요, 라이히는 성격갑옷(character armor)이라는 개념은 다음과 같은 뜻을 지닌다고 합니다.
He meant that we all have coping patterns stylistic character defenses that we develop throughout our life.. (중략) Reich called our habitual demeanor, stance and attitude character armor.
성격갑옷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위 인용한 문장(출처)을 읽어보면 그냥 '성격'으로 봐도 무방합니다. 정확히는 defense mechanism인데 그 사람이 어떤 방어를 쓰느냐가 성격 구분에 중요함을 고려할 때 성격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다만 갑옷이라는 말을 덧붙임으로써, 한 때는 기능적이었으나 변화된 상황에 맞지 않게 무분별하고 경직된 방식으로 사용하여 삶의 어려움을 초래하게 된 대처 양식임을 강조하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상담의 주요 목표 중 하나는 자기 성격의 특정한 측면이 어떤 때 기능적이고 어떤 때 기능적이지 않은지 분별할 수 있게 도움으로써 성격적 융통성을 기르게 하는 것이죠. 갑옷을 벗게 하는 것입니다.
저자가 말하는 갑옷 또한 라이히의 개념과 일치합니다. 저자는 세 가지 갑옷을 이야기합니다. 1. 기쁨 차단하기 2. 완벽주의 3. 감정 마비시키기입니다. 하나하나 살펴볼까요.
저는 기쁨 차단하기와 완벽주의가 거의 같이 움직이는 상관 높은 개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기 존재가 불충분하고 무언가 심각한 결함을 지닌 것 같다고 느끼기 때문에 매사 완벽을 기함으로써 수치심을 차단하려 합니다. 매사 완벽을 추구하며 통제감을 한껏 발휘하고 있을 때는 스스로가 유능해진 것 같고 불확실성에 기인하는 불안감을 덜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어는 사소한 실수나 경미한 사고나 타인의 건설적인 비판에도 한 사람을 쉽게 무너뜨리는 가짜 유능감 가짜 통제감 가짜 안전감에 연관되기 쉽습니다. 무엇보다 늘 최악의 시나리오를 떠올리며 대비하려고 하다 보니 삶에서 기쁨이나 감사함을 느낄 겨를이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늘 살얼음판을 걸으며 기쁨을 차단하는 삶이 얼마나 괴로울까요? 물론 이런 방어가 성격이 되는 수준에 이르면 괴로움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 더 문제입니다.
그 다음으로 감정 마비시키기를 살펴볼까요. 다른 사람과 친밀한 유대 관계를 맺는 것이 어렵거나 자신이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수치심에 시달리거나, 삶에서 통제감을 발휘하기 어렵거나 이 중 둘 혹은 셋에 해당할 때, 우리는 불쾌한 감정을 마비시키려 합니다. 가장 흔한 방법이 중독입니다. 술에, 일에, 관계에, 쇼핑에, 게임에, 도박에, 먹는 행위에, 자해나 자살시도에 중독됩니다.
이 책은 사실 저자가 삶에서 경험한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노력한 결과일 수 있습니다. 심리학에 속한 많은 사람들이 자기 문제와 관련하여 연구합니다. 우울한 사람은 우울을 연구하고 감정 표현이 잘 안 되는 사람은 감정표현불능을 연구하고 완벽주의가 심한 사람은 완벽주의를 연구하고 뭐 이런 식이죠. 자기애가 강해서라기보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자기와 관련 있는 주제를 연구할 때 동기부여가 가장 잘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취약성을 드러내서는 안 되는 텍사스 어느 집안에서 자라나서 완벽해지기 위해 꽤 노력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저자 자신이 이런 갑옷 때문에 삶이 괴롭다고 느껴 왔고 그런 경험담이 책의 곳곳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공감과 연민으로 이 책을 읽게 됩니다.
이런 까닭에 갑옷을 벗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저자의 답이 매우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딱딱한 심리학 교과서의 추상적인 얘기가 아니라는 것이죠. 더욱이 저자는 질적 연구를 위해 각계각층 수백명의 사람을 인터뷰하였습니다. 그 인터뷰들 역시 이 책의 자양분이 되었기 때문에 책에서 말하는 갑옷 벗기 해법이 큰 설득력을 가질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에게 친절하고 자신의 취약성을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누군가와 나누고 타인의 취약성 또한 받아들임으로써 긴밀한 유대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노력하고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아주 상식적이고 피상적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말이지만 이런 말조차도 살아 숨쉬게 하는 저자의 치열한 고민과 실천에 약간의 감동마저 하지 않을 수 없네요. 지금 내 존재 그 자체로도 이미 충분하다라는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내게 중요한 사람과의 유대 관계가 매우 중요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게 가족일 수도 있고 신일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가 될 수도 있겠죠.
이 책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을 믿고 세상에 뛰어들라고 반복하여 강조합니다. 관람석에 앉아서 논평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경기장 안에서 직접 뛰는 선수가 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죠. 시도 했다가 망하면 어쩌나, 누가 나를 비판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들 때문에 좀 더 진취적으로 행동하지 못 할 때가 많은 게 사실입니다. 근본적으로 우리 진짜 모습을 보여주기가 두려운 것이죠. 하지만 경기장 안으로 뛰어들어 취약해지고 반복해서 실패도 해보는 것이 삶을 더 충만하게 사는 길이 아닌가 싶어집니다. 이 책 읽고 나면 용기가 생깁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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