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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심리학/심리평가

평가자로서의 태도

by 오송인 2019.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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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ya Meher

 

내담자나 환자가 지닌 문제가 무엇인지 기술하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 성격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 한 결과 증상이 초래되는지 기술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이런 기술이 가능하려면 병리를 병리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환경에 적응한 결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록 현재 적응적이지 않다 하더라도 말이죠.

어떤 증상 혹은 성격적 특성은 그 자체로 abnormal하지 않습니다. 과거에 적응적인 기능이었고 현재도 특정 상황에서는 적응적으로 기능하지만, 다른 대부분의 상황에서 적응적으로 기능하지 못 하는 상태가 abnormal하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치료에서는 적응적으로 기능하는 측면은 잘 살리되 적응적으로 기능하지 못 하는 측면에 변화를 주는 것이 필요하겠죠. 

수퍼비전에서 강조하는 것 중 하나는 환자의 문제가 무엇인지에 집중하기 전에 환자의 무엇이 잘 기능하고 있는가를 보라는 것입니다. 인지적으로든 성격적으로든 강점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고유의 강점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러한 렌즈를 환자 이해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병리를 병리 그 자체로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paranoia는 뒤집어 말하면 신중하다는 것이죠. MMPI-2에서 4번과 9번이 동시에 상승한 경우라 하더라도 third scale로서 6번이 상승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 양상이 다릅니다. 6번이 상승하면 충동적인 행동의 가능성이 줄어듭니다. 6번이 지닌 신중함의 특성 때문이죠. 반대의 가능성을 한 번 볼까요. TCI에서 자율성이 높으면 긍정적인 성격 특성일 것 같지만, 주지하다시피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연대감이 받쳐 주지 않으면 권위주의적인 성격 특성이 되기 쉽죠. 

이렇듯 강점과 약점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입니다. 그것이 놓이는 맥락에 따라 앞면이 될 수도 있고 뒷면이 될 수도 있습니다. 환자의 약점을 통해서 병리를 통해서 강점과 가능성을 볼 수 있는 눈을 키우고 이를 치료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전문가'라는 타이틀이 적합하지 않을지요.

이 글을 쓰는 저도 계속 노력하는 부분입니다. 지향점이긴 하지만 늘 이런 태도를 행동으로 보여주기란 쉽지 않죠. 특히나 바쁠 때는. 의식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정보가 너무 많을 뿐만 아니라 자율성을 발휘하기 어려운 수련생 시절에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개인이 지닌 강점과 가능성을 보지 못 할 때, 심리평가가 내담자나 환자에게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그 보고서를 쓰는 사람에게도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병원 수익 증대에는 도움 되겠네요. 기왕이면 수익 증대에 기여하는 동시에 환자를 보는 냉철하지만 공감적인 시각을 견지하는 것이 전문가로서의 발전에 필요해 보입니다.

 

덧. 이와 같은 맥락에서, 수퍼바이저라면 수퍼바이지가 보완해야 할 점뿐만 아니라 그가 지닌 강점이 무엇인지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해서 피드백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테고요. 그게 수퍼바이저의 역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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